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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함을 잃는 순간 인간은 추락한다[딛전4:7-8]

은바리라이프 2010. 6. 24. 23:24

경건함을 잃는 순간 인간은 추락한다[딛전4:7-8]

 글쓴이 : 조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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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내놓고 높고 험한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얻어지는 것은 돈도 명예도 아닌 공허한 자기 확인뿐이지만, 그것을 위해서 그들은 끊임없이 산에 오른다고 한다. 그런 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강인한 체력과 불굴의 투지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기본에 불과한 것이고, 그들을 진정으로 죽음에서 건질 수 있는 것은 산에 대한 진지함과 경건함이라고 한다.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단독 무산소 등정에 성공했던 라인홀트 메스너는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에서 친동생을 잃는 등 수많은 동료가 산에서 추락사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메스너는 죽은 이들을 애도하기 위해서 {죽음의 지대}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에서 그는 "경건함을 잃는 순간 인간은 추락한다."고 말했다. 높은 산에 오를 때에 가졌던 진지함과 경건함이 산을 정복하고 내려올 때에 잃기 쉽고, 결국 죽음의 계곡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히말라야 산맥에서 8천 미터 이상 되는 열 네 개의 봉우리를 모두 정복한 한국 등반대원들 가운데 77년 9월 15일 한국 최초로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8,848m) 산을 등정한 고상돈 대원이 79년 알래스카의 매킨리(6,194m) 봉에 등정한 후 하산 길에 추락사했고, 95년에 빛고을 브로드피크 원정대가 브로드(8,047m) 봉에 등정한 후 하산 길에 박현재 대원이 추락사했고, 동국대 산악부원 및 산악부원 출신 8명으로 구성된 원정대가 에베레스트 등정을 마치고 하산하던 길에 안진섭 대원이 추락사했다.
인간은 누구나 험한 산을 오르는 등산가와 같다. 체력을 단련하고 기술을 습득하여 목표를 정복하기 위해서 앞만 보고 달려간다. 이 가운데는 실패하는 사람도 있고, 성공하는 사람도 있다. 실패한 사람에게는 좌절감이 어김없이 찾아오고, 성공한 사람에게는 자만심이나 허탈감 같은 것들이 찾아온다. 이 때 찾아오는 좌절감과 자만심을 극복한 사람은 최후의 승리자가 되고, 이를 극복하지 못한 사람은 영영 실패자가 되고 만다. 이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마릴린 먼로와 엘비스 프레슬리는 신경안정제와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고, 휘트니 휴스턴과 디에고 마라도나는 마약중독자였다. 86년에 미국에서 유명한 케이블 TV 설교가 두 사람, 짐 베이커와 지미 슈와거트가 여자 문제로 무너졌다.
마릴린 먼로는 죽기 한 달 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몇 미터 경주인지도 모르고 달려 왔습니다. 힘겹게 달려와 종착점에 도착해보면 그곳은 종착점이 아니라 또 다른 출발점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곤 했습니다. 그리고 종착점이 물거품이란 것을 아는데는 무려 36년이나 걸렸습니다."
이와 같이 한 때 고무풍선처럼 불어나는 인기를 누렸다가 여기 저기에서 새어나가는 바람구멍을 막지 못해서 자신을 파괴하는 병리현상을 '물거품 인기 증후군'이라고 한다. 요즈음 신세대 가수들 가운데 자살이 속출하는 이유도 역시 '물거품 인기 증후군' 때문이다.
그러나 명기나 명창이 인기 때문에 자살했다는 소문은 없다. 옛적에 평양에서는 어느 한 기생이 그림과 글과 시에 뛰어난 삼절로 인기가 오르면 일부러 베옷을 갈아 입혀 부엌일을 시켜 손님과 접하지 못하도록 했다. 인기에서 파생되는 자만심을 꺾기 위함이었다. 옛적에 명창들은 수년간 폭포 곁에서 혹은 동굴 속에서 목에서 피를 쏟으며 혹독한 수련을 했고, 스승으로부터 종아리를 맞아 핏발이 가실 날이 없도록 혹독하게 훈련을 받은 후에 명성을 얻었고, 인기에 연연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거품을 다져 가며 인기를 쌓아 올렸기 때문에 인기 때문에 죽음에 이르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것은 그들이 그 어떤 경우에도 진지함과 경건함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 삶에서 진지함과 경건함을 잃는 사람은 반드시 추락하고 만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다."고 하였다. 이 말씀은 참으로 변치 않는 진리이다. 그래서 필자는 사무실에 "경건함을 잃는 순간 추락한다."는 말을 써놓고 읽곤 한다. 한 시라도 경건함을 잃게 되면 불경스러워지고, 교만해지고, 경망스러워져서 남에게 덕을 끼치지 못하고, 함부로 말을 하게 되며, 생각 없이 행동하게 되어 남에게 상처를 주게된다는 것을 수없이 깨달았다. 나를 해치는 적은 남에게 있지 아니하고 언제나 나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경건함을 잃게 되면 불경스러워지고, 교만해지고, 경망스러워져서 함부로 지껄이게 되고, 생각 없이 행동하게 되어, 자식에게 상처를 주고, 부인에게 상처를 주고, 동료들에게 상처를 주게되어 그들이 마음으로부터 나를 멀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은 하나님 앞과 사람 앞과 자신 앞과 자연 앞에서 진지함과 경건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경건이란 것이 무엇인가? 경건이란 것은 한글 사전에 "삼가 공경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을 겸손히 공경하고, 사람을 겸손히 공경하고, 자신과 자연 앞에서 올바른 자세와 행동을 취하는 태도를 일컬어 경건이라 할 수 있다.
약관의 나이에 세계를 정복했던 알렉산더 대왕이 33세의 나이에 쓰러지고 만 것도 자신의 삶 속에서 진지함과 경건함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알렉산더 대왕은 소아시아, 팔레스틴, 페르시아를 거쳐 인도까지 정복하면서부터 자신을 술의 신 디오니소스와 동일시하기 시작했다. 알렉산더는 인도의 뉘사에서 그리스로 귀환할 때에 여덟 필의 말이 끄는 거대한 마차 위의 누대에서 장군들과 함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술파티를 열었다. 인도를 떠나 페르시아에 도착했을 때에 알렉산더는 장군들을 모아 한 탈란트짜리 금관을 현상금으로 내걸고 술시합을 벌이게 했다. 이 시합에서 포도주 일곱 되(12쿠오트)를 마시고 승리한 한 장군은 금관을 쓰고 사흘을 좋아하다가 죽었고, 이 때의 술시합의 후유증으로 무려 41명의 장군들이 죽었다고 한다.
알렉산더 대왕이 그리스 본토로 개선했을 당시 고린도 회의에서는 그가 그리스 여러 도시국가의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화신으로 숭배할 것을 제안했고, 그리스에는 마침내 미치광이 술잔치 소용돌이가 일게 되었고, 디오니소스의 광신자들이 술에 미쳐 제 아비, 제 어미를 찢어 죽이는 사태가 무수히 발생했다고 전한다. 마침내 알렉산더 대왕도 왕위에 오른 지 13년째 되는 해인 33살에 고열로 신음하다가 갈증을 이기려고 마신 술에 취해 광란하다가 죽었다.
{알렉산더 대왕}이란 책을 쓴 존 M. 오브라이언은 책의 부제로 {보이지 않는 적}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알렉산더 대왕을 쓰러뜨린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알렉산더 안에 있는 보이지 않는 적이었던 것이다. 외부의 칼날에 목숨을 잃지 않는 영웅은 반드시 '자기 안의 적'의 손에 쓰러지게되어 있다. 알렉산더도 그랬다. 오브라이언은 알렉산더를 쓰러뜨린 내부의 적은 다름 아닌 미친 술파티와 힌두교적 허무주의였다고 한다.
잠언 18장 12절에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하였다. 보이지 않은 '자기 안의 적'을 다스리지 못하면 천하없는 알렉산더라 할지라도, 아무리 강인한 체력과 불굴의 투지를 갖춘 등산가라 할지라도, 아무리 유명한 설교가라 할지라도 추락하고 만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결국 인간이 자기를 이기는 길은 경건의 훈련을 쌓는 길이다. 그래서 '군자는 하루 세 번 자기를 반성한다'고 했고, 시편 33편 16절은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커도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 도다."라고 노래하였다.
이런 점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첫째, 하나님 앞에서 경건해야 한다. 하나님을 섬길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일 줄 알아야 한다. 둘째, 사람 앞에서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그들 앞에서 진지하며 경건한 자세를 취할 줄 알아야 한다. 셋째, 자신에게 진지하며 성실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존중할 줄 알며, 귀한 줄 알아야 한다. 넷째, 우리는 자연 앞에 겸허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자연을 훼손하고 더럽히면 반드시 자연은 인간들에게 보복을 해온다. 자연을 업신여기면 자연 또한 인간을 업신여긴다.
바울은 빌립보서 2장 3절 이하에서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고 말하면서 우리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했다. 예수의 마음이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보여주신 가장 고귀한 삶의 방식으로써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는 삶을 말한다. 예수의 마음이란 하나님이 하나님 됨을 버리고 인간과 동일하게 되신 것을 말한다. 예수의 마음이란 예수가 이 세상에 살면서 신분 상승을 꾀하지 않고, 오히려 버림받은 자들의 친구가 되신 것을 말한다.
예수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종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병든 자들과 억압당하는 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돌보셨으며,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다. 예수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쫓아 세상의 명예와 권세보다는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택하셨다. 또 예수는 협동정신과 참여정신으로 생로병사의 모든 고통을 맛보셨다. 이와 같이 예수는 겸손과 순종과 협동 정신으로 생을 마감하셨다. 그 결과 그의 삶은 순간적으로 추락하는 듯 보였으나, 결국에는 승리자가 되셨으며, 만 왕의 왕, 만 주의 주로 높임을 받으시고 경배와 찬양을 받고 계신다.
33세의 짧은 생을 마친 알렉산더와 예수를 비교해 볼 때, 알렉산더는 천하 무적의 군대가 있었음에도 일시적으로 세계를 지배하였으나 마음의 적인 교만과 방탕과 허무를 다스리지 못해 역사의 뒤안길로 추락하였고, 예수는 시골 지방의 뜨내기 교사에 지나지 않았고, 민중선동과 신성모독이란 죄목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일시적으로 패하는 듯 하였으나 겸손과 순종과 협동 정신으로 마음의 적을 다스려 진정한 역사의 주인공이 되셨다.
얼마 전 CNN 방송 회장의 아들 조나단 레빈이 뉴욕에서 자신의 제자에게 살해당한 일이 발생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조나단 레빈은 재벌의 총수의 아들이었지만, "아버지 돈은 내 돈이 아니다."라며, 부와 명예를 포기한 채, 마약과 범죄로 이름난 뉴욕 브롱스의 한 고교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하였다. 그는 재벌의 아들답지 않게 방하나짜리 싸구려 아파트에서 살았으며, 재산은 봉급을 저축한 약간의 예금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적은 월급을 쪼개어 가난한 학생을 도왔고, 성적이 오른 학생에게 야구표를 사주면서 범죄와 싸우며 학생들을 선도했다. 조나단 레빈이야말로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경건을 잃지 않고 마음의 적을 다스렸던 진정한 승자라 할 것이다. 경건함을 잃는 순간 인간은 추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