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이란 무엇인가
롬 1:16-17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The Gospel)이란 기쁜 소식을 뜻하는 것으로서 해방신학?민중신학?사회복음주의 신학과는 그 성질을 달리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경제적, 정치적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으로 간주하는 해방, 민중신학도 아니며, 부정 부패한 사회의 정의를 구현하고자하는 사회복음주의 신학도 아니다. 복음이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주어지는 복된 소식을 의미하는 것인데, 이에 대해 증거된 로마서 1:16-17의 말씀을 살펴보기로 한다.
1. 복음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임 (1:16)
첫째, 복음은 모든 자를 대상으로 한다. 율법은 유대인에게만 주어진 것이지만, 복음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차별이 없이 만민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과거에는 이스라엘 백성만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행세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복음에 의해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는 아브라함의 혈통으로 난 자라야 구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육신적인 혈통보다는 신령적인 그리스도의 혈통으로 난 자라야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둘째,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실현된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 스스로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잘 믿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항상 믿음의 문제 때문에 불안하게 되고 구원의 확신도 불분명하게 된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밝혀주고 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로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실현된 사실을 믿게 하여 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을 알고 믿게 하는 기본적인 이치이다. 구약의 예를 보면 이스라엘 민족들을 애굽의 막강한 권세에서 해방시켜 구원하신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된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이스라엘을 바벨론의 70년 포로생활에서 구원하신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복음의 주체이신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부활시킨 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이와 같이 복음은 전적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실현 것이지 인간의 의지나 능력과는 무관한 것이다. 인간 스스로 어떻게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될 수 있겠는가? 누가 자신의 생명을 영원한 사망에서 생명으로 회복할 수 있겠는가? 복음이란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시작하여 능력으로 완결되는 것이다.
2. 복음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믿음에 이르게 하는 것 (17f)
먼저 본문은 번역 상에 약간의 문제가 있는데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는 말씀은 ‘의인이 맏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인은 살리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즉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은 죄인은 죽지만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입은 자는 영생한다는 뜻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란 무엇이며 어떻게 믿어지게 하는 것인가?를 살펴 보기로 한다.
첫째,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의(義)란 언약대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믿게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삼으신다는 뜻이다. -벧전 1:21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먼저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 의를 살펴보면 철저하게 하나님의 언약대로 실현되어 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나라의 창건과 포로와 회복의 역사가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언약에 의해서 진행된 섭리 역사이다. 이것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큰 민족을 이루어 주실 것,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살게 될 것, 유다 지파의 홀을 따라서 왕이 출생하여 통치할 것을 미리 언약하신 것에 근거한 것이다. 또한 신약 나타난 그리스도의 사건 역시 구약의 언약과 예언에 근거하여 실현 성취된 사건이다. 그래서 마태복음 1장 1절에서 구약을 대변하는 아브라함과 다윗을 거론하며 그의 혈통으로 오신 예수는 언약대로 오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복음서 전체가 그리스도의 사건에 대해서 구약의 언약대로 성취된 것임을 구약을 근거로 인용하여 증거하고 있다. 이와 같은 배경을 통해서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하나님의 의(義) 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오신 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둘째, 믿음에 이르게 하는 의(義)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하여 언약대로 나타나 의로 오신 예수께서 당신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여 믿음에 이르게 하신다. 여기에서 정리해야 될 것은 예수와 그리스도에 대한 칭호인데, 예수란 ‘자기 백성을 구원할 자’란 뜻으로서 요셉의 아들로 오신 역사적이고 혈통적인 성격을 말하고, 그리스도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히브리어로 메시야이며 헬라어로는 크리스토스라 한다. 이것은 구약의 삼직 즉 선지직 왕직 제사직에서 기인되는 것으로서 실제로 구약에서 기름을 부었던 직책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러한 구약적 의미는 신령하고 완전하며 실체적으로 삼직을 완수하실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인데 그 핵심적인 성격이 바로 구약의 언약을 성취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도를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되는가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육적인 시각으로 볼 수 없는 분이시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어떤 매개체가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義 즉,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가 어떠한 성격을 갖고 있기에 믿음이 생기게 되는가를 알아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그리스도는 아무나 되는 것도 아니고 주관적으로 판단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확실한 표적이 있고 그것은 이미 구약 성경을 통해서 언약되고 예언된 것이다. 예수께서도 이러한 맥락에서 눅 24:44-45 말씀을 통해 --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모든 성경이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고 이 예언의 말씀들은 자신이 성취할 것이라고 증언하고 계신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난 의란 구약의 언약과 예언의 모든 내용을 성취하여 증거 하심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복음이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깨달아 믿음에 이르게 하여 의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삼아 주신다는 것이다.
3. 복음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인이 사는 것 (17ff)
첫째, 믿음으로 의롭게 하심
앞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복음이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아 의인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게 하여 의인이라 선포해 주시는 것이다. 이 말은 예수를 믿으면 완전한 의인이 되어 의인으로 살아간다는 뜻이 아니라, 죄인으로서 죄인 된 삶을 살아가지만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서 죄인을 의인으로 인정해 주신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게 살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죄인을 의인으로 인정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사는 자가 어찌 더 죄를 지을 수 있으리요 라고 바울이 말하듯이 죄를 짓고 안 짓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복음이란 죄인을 아무 공로나 대가없이 의인으로 인정해 주신 다는데 있는 것이다. 성도는 이 감격으로 사는 것이다. 탕자에게 죄를 추궁하지도 않고 도리어 잔치를 배설해 주시는 아버지의 사랑과 긍휼처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에 죄 중에서 잉태하여 죄의 몸을 입고 죄인의 행세를 거침없이 자행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을 의인으로 인정해 주시고 죄를 추궁하지도 않으시며 자학하며 죄책감에 떨고 있을 때 위로해 주신다는 사실 ! 어찌 감격하지 않을 수 있으며 찬송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둘째, 믿음으로 영생을 주심
복음이란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혜를 뜻하는 것으로서 영생에 이르는 복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혹자들은 믿음으로 구원은 받았지만 그래도 행위가 뒤따르지 않으면 구원을 보장할 수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것은 교인들의 열심을 부추기고 교회 부흥을 위하여 조작된 이론이지 성경적인 것은 아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통해서 이미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가 완전히, 영원히 용서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한다. 영생의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은 전적 하나님의 은혜이지 여기에 어떠한 인간의 행위나 업적이 가미 될 수 없는 것이다. 이 말은 설령 성도가 실수하고 범죄하고 나태 한다고 해서 영생의 축복을 상실한다는 말은 결코 아니라는 뜻이다. 만약 구원이 인간의 행동과 조금이라도 연관되어 진다면 이 세상에 구원받을만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도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단언하신 바 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열심과 충성과 봉사를 하느냐는 것 보다 그리스도의 사역과 공로에 대한 내용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사느냐에 달려있다. 모든 행동은 깨달아 느끼느 것에 의해서 좌우되기 때문이다. 얼마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잊지 않고 감격하며 사느냐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날마다 말씀을 상고하고 연구하고 깨달으며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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