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바울서신

법에 대해 죽었다는 말의 의미 - 김홍전 목사

은바리라이프 2012. 10. 13. 11:38


법에 대해 죽었다는 말의 의미

 

    여기서 율법주의라는 것을 생각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만일 그것이 순전히 구약적인 노모스를 준행해야 한다는 노미즘(nomism)이라면 그것은 허다한 미완성의 위치에서 붙들고 매달리는 일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오늘날에는 이미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역사적 계시의 충분한 현현 때문에 우리가 구약적인 율법에 잠재하거나 정체하고 있어서는 아니된다는 것입니다그래서 너희의 의가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보다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하나님 나라에 못 들어간다고 하셨지서기관과 바리새인이 하고 있는 것을 다 폐해 버리고 적당히 네 마음대로 살아도 너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지나가라 그 말입니다지나가는 형적(形跡)인 규범을 세워 주신 것입니다. ‘지금은 이렇게 지내라. 너희들이 완악해서 도달하지 못하니 용허한다. 용허요 묵인이다. 그러나 원칙은 안 그렇다.’ 그런 점에서는 우리의 허다한 많은 생활도 오늘날 하나님께서 용인하시니까 우리가 견디는 것이지, 원칙을 가져다 대신다면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설 데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회의 모든 생활의 형태라는 것은 그것의 역사적인 현실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고 따라서 우리가 나중에 지내 놓고 보면 참 잘못했다고 할 일이 많을 것입니다. 우리는 불과 한 세기를 못 살고 죽지만 10 세기가 지난 후에, 오늘날 20세기를 30세기에 바라본다면 ‘거기에 허다한 많은 오무와 미망이 있구나’ 하고 다시 느낄 것입니다.

...{중략}...

    이와 같이 우리가 오늘날 충만한 거룩한 계시 하에서 법을 볼 때에는 바로 보고 새로운 해석을 해야 합니다이러한 까닭에 예수님의 말씀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다그러나 그것이 미완성이고 충분한 계시가 아닌 까닭에 내가 그것을 완성하려고 온 것이다.’ 하신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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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그 법규를 지키려면 미완성으로 돼 있는 법규를 번문욕례적으로 하나씩 하나씩 지켜 가는 것이 요구되는 것이 아닙니다그런 의미에서는 법에 대해 죽었다는 말이 생긴 것입니다그러나 법에 대해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신 기본법에 대해서 죽었다는 말이 아닙니다하나님께서 내신 기본법에 대해서는 죽지 않았습니다.

    만일 우리가 모든 법에 대해서 죽었다고 한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것도 하나의 법인데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니까 법인데예수님을 안 믿어도 좋다는 이론이 될 것입니다예수님을 안 믿어도 좋다는 법이 있을 수 있습니까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진실히 사랑하고 의지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도 법인데‘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법에 대해서는 죽었으니까 예수님을 진실히 의지하고 살 수 없다.’ 이런 말이 성립하겠습니까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산다는 것도 하나님의 법입니다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법이 있고 분명히 법에 제압돼 있는 것이지 무법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대신해서 모든 것을 이뤘으니 나는 지키지 않아도 좋다.”는 이런 주장이 역사적으로 있어 왔는데그것을 반법주의(antinomianism)라고 하고그런 주장을 펴는 이를 반법주의자라고 합니다. ‘노모스에 대해서 안티(anti) 한다.’ 그 말입니다법이 없다는 말입니다죄는 뭐냐“죄는 불법이라.(요일 3:4) 아니무법(lawlessness)이라는 말이 더 정당한 해석입니다법이 없다고 할 때 그것은 죄라는 말입니다어떻게 법이 없느냐 그 말입니다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법의 개념에 대해서 먼저 알아야 합니다.

 

김홍전: [산상보훈 강해 2: 예수께서 가르치신 율법의 참뜻] 209~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