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 동기와 배경
바울은 에베소에 3년간 머물러 있었는데 몇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고린도 교회를 방문했다. 그는 다시 에베소로 돌아온 후에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음행에 관한 내용의 편지를 보냈는데( 고전 5:9). 이 편지는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고 있다.( 고린도 전전서라고 말함) 그후에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썼는데 그 편지는 고린도 교회 교인이었던 스데바나와 브드나도 , 아가이고 를 통해 바울의 편지가 전달되었다 ( 고전 16:17)
에베소에 있는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형편을 전해 듣고 그것에 대한 답으로 이 편지를 쓴것이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질문한 것에 다한 대답으로 이 편지가 쓰여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 여러곳에서 나온다. “ 관하여 ” ( 고전 7: 1 25, 8: 12: 1, 16: 1, 12)라는 표현의 언급은 이들이 제기하는 문제에 대하여 답변 형식으로 기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바울은 처음의 편지가 크게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교회를 혼란스럽게 되어 사태가 악화됨을 알고 고린도 교인인 스데바나와 브드나도, 아가이고 등 을 통해 교회에 발생되는 문제의 해결책을 말하고 있다. 고린도 교회에 많은 문제들이 생기게 된 이유는 교회 구성원 자체의 배경들이 다양하여 서로의 의견차이가 많았던 것으로 생각된다.이것은 자연스럽게 파당으로 이어져 대립과 의견다툼으로 이어졌다, 또 고린도 교회에 문제들이 나타난 것은 고린도인들의 헬라 사상 때문이다. 기독교의 메시지와 성령의 역사의 오해에서 발생 되었다. 그들은 예수를 영광의 주로만 바라 보았지 십자가의 신앙으로 바라 보지 못했다.
현대적 의미
고린도전서에서 제기되는 교회의 문제는 다원화된 세속화와 잘못된 뉴에이지 영성 등에 대한 교회 내부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오늘날 현대의 교회의 모습과 흡사하다, 영지주의 형태를 지닌 체험중심의 신앙이 현대 교회안에 점차 호응받고 있는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닌 고린도 교회의 상황과 같다. 예수를 구원 사건으로 십자가 신앙으로 바라 보기 보다는 예수를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영광의 주로 이해 하려는 현대교회의 모습은 현대판 고린도 교회라 할 수 있다. 도덕적이고 부도덕적인 것의 행동의 구분은 더 이상 의미가 없고 나타나는 결과로서 신앙이 결정되는 소비자 중심의 인본주의 신앙은 고린도 교회가 겪고 있던 상활과 흡사하다. 고린도 교회가 겪었던 분쟁과 분파 . 근친상간등의 성적인 문제. 성도간의 법정 소송. 음행. 결혼과 독신. 공예배의 질서, 성령의 은사 . 부활에 대한 불신의 문제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고민되는 것들이다.
고린도 교회에 나타난 신학적 이슈들
고린도전서를 이해하는 두 개의 핵심은 십자가( 1: 7-2:16)와 부활( 15:1-58)이다
고린도 교회에서 제기되는 영적인 문제인 성령의 역할과 은사도 결국은 십자가와 부활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2: 6-16). 현대교회에서도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와 부활이 영적인 특별한 체험과 현상을 강조하는 흐름에 의하여 점차 위협받고 있다는 점에서 고린도전서 연구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
1. 영적 엘리트주의
고린도 교회를 흔든 사람들은 자칭 스스로 영적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었다. 영( 프뉴마)이라는 단어가 바울 서신에 24번 등장 하는데 그중에 고린도 전서에 15번 등장하는것 만 보아도 얼마나 영적인 문제가 심각했는가를 알수 있다. 바울서신에 ‘자랑한다’라는 단어가 53번 나타나는데 고린도 전서에 35번이 나온다. 고린도 교회는 스스로 영적이라고 생각하는 영적 엘리트주의 사람들이 자기의 영적인 상태를 사람들 앞에 자랑했다. 고린도 교회안에는 초자연적인 영적 은사에 매력을 느껴 엑스타시 경험을 열망하며 지나치게 자기를 영적으로 높이는 사람들로 인하여 교회 공동체가 분열을 초래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런 영적 엘리트주의에 빠진 사람을 보면서 반대로 영적인 문제에 냉담한 무리가 있었다. 자신도 영적인 혼돈에 빠질것을 염려하여 아예 영적인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2. 종교적 신비주의
고린도 교인들은 세례를 받고 성찬에 참여하는 종교적 의식이 자신들에게 초자연적인 힘을 더해 준다는 왜곡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성만찬은 신비적 체험이라기 보다는 공동체의 하나된 모습을 이루는 화합의 잔치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성찬을 통하여 오히려 분쟁을 일으키는 상황이 되었다. 회개를 통한 변화가 아닌 종교적 행위와 체험을 통한 은혜는 종교적 신비주의 한 형태이다. 현대에도 예배나 기도를 자신의 영적상태와 권위를 확인해주는 것으로 믿는 형태가 종종 있다.
3.특별한 지혜에 대한 문제
영적이라는 사람들의 특징 하나는 신비한 하나님의 계획을 꿰뚤어 본다고 주장한다. ( 고전 2: 6-9) 진정한 지혜는 하나님의 신비에 대한 비밀한 통찰력을 갖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이해이다. 바울은 그들이 특별한 지식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식은 알고 보면 완전한 것이 아님을 지적한다. 바울은 “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 8:2)” 라고 말하면서 진정한 지식은 형제를 사랑하고 공동체의 덕을 세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현대에도 자칭 신령한 은사를 받아 특별한 지혜를 가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교회를 혼란하게 만든다. 자기가 지시한 대로 가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하면서 신자들을 미혹하게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3. 종말론에 대한 문제
고린도 교회의 문제 하나는 종말론에 대한 혼동이다. 종말론의 지나친 강조는 이 세상을 등지게 만든다. 자연의 몸이 없는 상황에서 신령한 몸은 없다( 고전 15: 44) 고린도 교인들 중에는 하늘의 초자연적인 능력과 축복을 소유하고 있기에 세상의 삶을 포기하고 오직 영적 것에만 열심을 다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주의 일에 힘쓰면서 세상의 삶에 충실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하늘의 복을 얻었기에 이 세상에서 아파도 안되고 가난해도 안된다고 말하면서 이적과 은사의 욕구를 불러 일으켜 성공 복음을 강조하는 예들이 있는데 이것도 알고 보면 과장된 종말론의 한 유형이다.
4. 잘못된 자유의 문제
고린도 교인들은 자유에 대한 이해를 왜곡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것은 마음대로 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에 따른 자유이다. ( 고전6;12. 10:23)
고린도 교인들은 성적 타락과 같은 육체적 행위에 자유롭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유에 대한 교만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우상 제물을 먹는 것에 대해서 자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바울은 공동체의 덕을 위해서 자유가 사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때는 자기의 자유로 즐거움을 누리기 보다는 자기가 가진 자유를 형제를 위해 내려놓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말한다.
현대교회에서도 영적으로 충만하면 나는 무엇을 하든지 상관없다고 말하면서 자기를 합리화 하는 위험들이 많이 존재한다. 다른 사람의 상황을 살피지 않고 오직 자기의 만족만을 위해 영적 생활에 몰입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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