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에서 말하는 두 언약, 육신의 자식 언약의 자식
다음 성구는 예수의 부활을 믿어 영원히 산다는 영생을 약속받고 그 약속을 믿는 사도 바울의 말이다.
영원히 산다는 복음을 듣고 믿은 바울은 구약 성경을 들어서 자신이 믿는 믿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영원히 산다는 영생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바울처럼 말할 수 있어야 하며 바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언약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제부터 바울이 말하는 두 언약에 대한 의미를 살펴보자.
바울은 구약의 사건을 들어서 두 언약을 말하고 있다.
[갈4:22-29]
"기록된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 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 노릇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기록된바 잉태치 못한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구로=고생스럽게 수고하는 것, 보통 아이 낳는 수고를 말한다)
[공동번역]
성서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즐거워하여라. 아기 못낳는 여인이여,홀로 사는 여인의 자녀가 남편있는 여인의 자녀보다 더 많으리라."
아브라함은 여종 하갈을 통해선 난 아들 이스마엘과 부인 사라를 통해서 난 아들 이삭이 있었다.
이 일은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사건인데 이 사건은 두 언약을 말하기 위한 비유였다고 바울은 말한다.
두 언약에 대한 비유!!
신약에서 보면 여종 하갈의 아들은 종의 자식에, 안주인 사라가 낳은 아들은 언약의 자식에 비유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신약에서 아브라함의 두 아들을 비유들어서 말하려는 두 언약은 무엇인가?
바울이 남긴 서신서들의 주된 내용은 율법과 믿음이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로워지는 것이 율법과 계명을 지키는 일에 있다는 유대인들의 주장에 대하여 바울은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것으로 인하여 의롭게 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한 뒷받침으로 유대인들이 조상으로 알고 있는 아브라함을 들어서 말한다.
바울의 주장은 예수를 믿음으로 인하여 의롭게 된 사람들은 아브람에게서 난 약속의 자녀 이삭과 같은 사람들이며 율법을 지켜야 의롭게 된다고 말하는 것은 율법 아래서 율법에 얽매여 종살이 하는 종으로 종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과 같은 육신의 자녀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구약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두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관한 내용은 바로 신약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로워지는 자와 율법 안에서 율법을 지키므로 의로워지는 자를 나타내주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약속 받은 자는 이삭과 같은 언약의 자식이요 율법 안에서 의롭게 되려는 사람은 육신의 자식으로 종의 자식 이스마엘과 같다는 것인데 이 말이 사실인 것을 증거해보자.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은 종의 자식이다.
이것을 비유하자면 지금의 아라비아의 시내산이면서 지금의 예루살렘이다.
이 말씀은 종의 자식의 근원을 말하는데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출애급 백성으로부터 시작하여 바울 당시 예루살렘을 중심삼고 살고있는 유대인을 가리킨다.
이들은 왜 종의 자식이 되는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에서 십계와 율법을 받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다.
그러나 그들은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맺은 언약을 어기므로 하나님이 친히 주신 십계 증거판은 깨어지고 사람이 다듬은 돌판 위에 새겨진 두번째 십계를 받아 계명의 종이 된다.
이때부터 바울 당시까지 이들은 십계와 율법의 멍에를 쓴 율법의 종이 되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스스로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고 죽을까하는 두려움이 율법과 계명을 지키게 하므로 두려움의 종이요 율법은 이들에게 멍에이다.
이 두려움은 아담이 불순종하므로 죽을까 두려워하는 두려움이다.
모든 인간은 이 두려움을 안고 태어나므로 이 두려움이 바로 처음부터 있는 죄인 것이다.
예루살렘은 모든 율법의 총 본산이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의 종들이다.
이것을 아브라함에게 두 자식을 들어서 비유 삼아 바울은 말하고 있다.
그러면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는 누구인가?
이삭은 성령으로 낳은 언약의 자식이다.
언약의 자식 이삭을 낳은 것은 사라이다.
사라는 육신의 혈통 아브라함의 피를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삭을 낳았다.
이삭은 성령으로 태어났지 아브라함의 피를 받아 태어난 것이 아니다.
성령으로 태어난 자가 아니면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받는다는 약속의 자녀가 아니다.
시내산에서 송아지와 염소의 피로 언약을 받은 출애급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성령을 따라 태어난 약속의 자식이 아니라 야곱의 열한 아들의 혈통을 따라난 육신의 자식들이다.
이것을 비유하여 신약에서 말하자면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이삭처럼 태어난 사람만이 하나님의 약속을 유업으로 받은 약속의 자녀라는 것이다.
이삭과 같이 성령을 따라 난 자만이 언약의 자식만이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과 계명으로부터 자유한 자라는 것이다.
이 언약의 자식을 낳은 것은 사라인데 그는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의 상징이다.
이는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만이 자유자요 언약의 자식을 낳을 수 있는 어머니이다.이 말에 대한 의미는 무었인가?
예수 안에서 새로운 언약을 받은 자는 약속의 자녀다.
예수 안에서의 언약은 예수가 죽음에서 부활한 것처럼 그것을 믿는 자들도 부활 한다는 언약이다.
영생을 약속받은 자는 성령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누구도 예수처럼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이 없다.
다만 태어난다는 약속만 받았다.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해줄 모태가 바로 성령이며 이 성령은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자유자라는 말이다.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계시록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이다.
이 새 예루살렘은 자유자를 낳는 어머니이다.
바울이 말하는 우리의 어머니는 새 예루살렘이다.
우리는 어머니 새 예루살렘을 통해서 이삭과 같은 언약의 자식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다시 태어나는 것이 부활이다.
본래 죽은 자였는데 산 자로 다시 태어나는 것, 이것이 부활인 것이다. (참 부활에 의미에 대해)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다시 산다는 약속을 받고 죽은 자들은 다시 태어날 것이다.
이 때에는 산 자로 태어나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영생하는 존재가 된다.
산 자로 태어나는 것은 신령한 몸의 존재가 되어 영생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 태어 난다.
죽은 자들이 다시 산다는 약속을 받고 다시 태어 나는 것은 부활이다.
죽은 자가 산 자로 다시 사는 것, 이것이 부활이다.
이 부활은 다른 종교의 단어를 빌리면 환생이 된다. (부활과 환생의 관계)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영원한 신적, 천사와 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 환생하는 것이다.
다시 태어나게하는 태는 성령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약속을 받은 자들의 어머니이며 새 예루살렘이다.
산 자로 태어나는 자들은 아담이 타락하기 전과 같은 생령으로서 육을 입은 자들이다.
그러나 산 영의 산 자들 이므로 육을 벗고 신령한 몸으로 변화를 받아 하늘차원의 존재로 거두어지는 이것이 인간 농사의 끝이다.
육신이 죽어서는 영혼이 하늘 나라에 못간다.
기독교는 하늘나라도 부활도 천국도 지옥도 알지 못한다.
죽은 자는 하늘 나라에 갈 수 없다. 또한 죽은 영혼이 갈 하늘나라는 없다.
언약받은 자가 육신이 죽어 성령을 통해 다시 산 자로 태어나서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다.
이것은 실로 신비하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니 이사야는 누가 이런 일이 일어 날 것에 대해서 알겠는가라고 반문하며 말씀을 남긴다.
[사 66:7-9]
"시온은 구로하기 전에 생산하며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남자를 낳았으니, 이러한 일을 들은 자가 누구이며, 이러한 일을 본 자가 누구이뇨?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순식간에 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구로하는 즉시 그 자식을 순산하였도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임산(臨産)케 하였은즉 해산케 아니하겠느냐? 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생산케 하는 자인즉 어찌 태를 닫느냐?' 하시니라."
[공동번역]
몸을 비틀 사이도 없이 해산하여 진통이 오기도 전에 사내아이를 낳는구나.
누가 이런 말을 일찌기 들어 본 적이 있느냐? 이런 일을 본 적이 있느냐?
사람 살 땅이 어찌 하루 사이에 생겨 나며 한 민족이 어찌 단번에 나겠느냐?
그런데 시온은 몸을 비틀기가 무섭게 자식들을 낳아 놓았구나. "아기집을 터뜨리는 내가 어찌 아기가 태어나게 하지 못하겠느냐?"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아기를 내보내는 내가 어찌 나오지 못하게 막겠느냐?" 너희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사54:1-6. 갈4:27]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 할지어다.
홀로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 들로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니라 두려워 말라 네가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니라 네가 네 청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입어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소시에 아내되었다가 버림을 입은 자에게 함같이 하실 것임이니라 네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태(胎)에는 두 가지가 있다.
혈육을 따라 혈육의 자식을 낳는 육태가 있고 영원히 사는 산 자를 낳는 진리의 태가 있다.
언약의 자식으로 산 자를 낳는 태의 상징으로 성경은 구약의 사라, 리브가, 라헬을 보여주고 있다.
(성령 잉태로 태어난 사람들에 대하여 ) (죽은 자에 대하여)
죽은 여인의 태에서는 남녀 교합으로 죽은 자가 태어날 뿐이다.
성경은 하나님편에서 볼 때 육신이 산 자나 죽은 자를 동일하게 죽었다고 선언하고 있다.
[마8:21-22]
"제자 중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니고데모라는 랍비가 밤 중에 예수를 찾아왔다.
무엇을 질문했는지 왜 찾아왔는지는 기록이 없으나 주님은 그에게 하늘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요 3:3-5]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는 묻는다.
이렇게 나이 먹어 장성했는데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가 다시 태어난단 말입니까?
아니면 이미 어미가 죽어버린 사람은 어떻게 된단 말입니까.
[요 3:6-14]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수 있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육으로 난 것은 육이니 육으로 다시 나서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아니요 성령으로 다시 나야 된다.
성령으로 다시 나는 것은 영이다. 영은 바람과 같아서 눈으로 보아서 알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영은 진리이며 생명이며 사랑이다.
영을 낳아줄 태가 있으니 성령이다.
성령은 언약의 자식을 낳아줄 어머니이다.
처녀 시온은 맏아들을 낳았고 어머니가 되어 수많은 차자들을 잉태하여 해산을 기다리는 거룩한 예루살렘 어머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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