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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렷해지는 징조들 -지진

은바리라이프 2010. 5. 28. 00:01

뚜렷해지는 징조들

-지진

 

아이티의 지진

2010년 1월12일 아이티, 지진으로 땅이 갈라지자 지옥이 열렸다. 아비규환이었다. 포르토프랭스는 먼지구름으로 뒤덮였다. 운 좋은 생존자들은 좋은 운을 기뻐할 틈도 없이 여진과 후속 지진의 위험 속에서 떨었다. 사망자가 30만 명에 이른다고 아이티 대통령이 처량하게 밝혔고, 사람들은 그 말을 반신반의하며 받아들였다. 증거는 대부분 땅속에, 폐허 속에 묻혀있었다.

아이티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연재해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긴 했다. 스콜(열대성폭우)에 마을이 통째로 휩쓸려가는 건 흔한 일이었고, 정부는 대부분의 재해에 무기력하게 수수방관하는 게 고작이었다. 1000배 강했던 칠레 지진이 훨씬 작은 피해를 낸 걸 보면 아이티의 비극은 천재(天災)와 인재(人災)의 합작품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누군가 ‘아이티의 저주’를 언급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아이티의 기구한 역사

아이티의 원주민은 타이노족이라는 인디언이었다. 1492년 콜럼부스가 그곳에 상륙했다. ‘약탈자’로 본색을 드러낸 이 ‘신대륙 발견자’는 25만명의 타이노족 중 절반을 학살했다. 남은 절반도 가혹한 노예생활로 16세기에 멸절됐다. 그러자 유럽인들은 아프리카 흑인을 붙잡아와 히스파니올라섬-이 섬에 아이티와 도미니크공화국이 있다-의 농장을 채웠다.

원래의 주인이 진멸한 땅, 흑인들이 살던 곳에서 끌려와 강제노역으로 신음하던 땅, 독립 이후엔 독재와 부패로 고통당한 땅. 아이티의 역사는 기구하고도 비참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벽력과 지진과 큰 소리와 회리바람과 폭풍과 맹렬한 불꽃으로 그들을 징벌하실 것인즉(사29:6)’

지진은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방법이자 징벌의 한 도구다. 그래서 의아했다. 하나님은 위로와 축복을 받아 마땅한 땅에 왜 이같은 고난을 더하신 것일까? 아이티의 역사를 조금 더 살펴보니 이해의 단초가 보였다. 부두교였다. 부두교는 서부 아프리카의 정령숭배와 주술이 혼합된 토속종교다.

부두교가 지배하는 나라

부두교 주술사들은 카톨릭의 교리와 용어를 부두교 의식과 주술에 차용해 사용한다. 아이티인 대다수가 부두교 의식과 전통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다. ‘아이티인 중 카톨릭 신자 70%, 개신교인 30%, 부두교인은 100%’라는 농담도 있다.

부두교의 주술사들은 1791년에 나라 전체를 걸고 사단과 피의 계약을 맺었다. 이를 ‘부크만 신탁’이라고 부른다. 앞서 말한 ‘아이티의 저주’는 이것이다. 신탁을 주도한 주술사 부크만은 사단에게 제물을 바치면서 나라의 운명을 맡기는 의식을 거행했다. 아이티인들은 그들의 독립이 부두신, 곧 사단의 덕분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로부터 200년, 아이티는 완전히 부두교가 지배하는 나라가 됐다. 사단의 나라는 분열과 반목의 나라다. 아이티는 부정부패와 폭력이 만연한 나라가 됐다. 사단은 아이티인들의 진리를 향한 눈과 귀를 가려 놓았다. 혹자는 아이티가 서구 제국주의의 수탈에 의한 희생양임을 강조한다. 옳다. 그들은 가련한 희생양이다. 그러나 고난 받는 자라 하여 그의 범죄가 의롭다 인정될 수 없다. 우상숭배는 죄다.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가증히 보신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이 오고 있다고 해요.” “하나님을 믿고 기도해야 살 수 있어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으리라. 아이티의 지진은, 도리어 하나님의 자비일 수 있다. 도저히 헤어날 길 없는 사단의 무거운 사슬을 단박에 끊어버린 하나님의 은혜일 지 모른다. 이제 아이티인들은 그들의 질곡이 사단의 종교인 부두교로도, 또다른 혼합종교인 카톨릭으로도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닫고 참다운 믿음을 구하기 시작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아이티가 태어날 것이다.

뚜렷해지는 징조들

포브스紙는 지진의 위험에 가장 취약한 주요 도시 20곳을 선정 소개했다. 네팔 카트만두, 터키 이스탄불, 인도의 델리, 필리핀 마닐라,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 일본 도쿄 등. 묘하게도 대부분 나라가 거의 이슬람, 카톨릭, 불교, 힌두교 등 우상숭배의 국가들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우연히 지진대가 그렇게 분포되어 있었다고 한다. ‘우연히’ 그곳에 자리잡은 사람들이 ‘우연히’ 우상숭배를 자행했다? 참새 한 마리 떨어지는 일도 그분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하다. 우연은 없다. 인간이 ‘지진대’를 깨닫기 수천년 전에 이미 지진은 그분의 도구로 정해져 있었다.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다. “선생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아이티 지진 이후 칠레, 일본, 키르키즈스탄에서 연이어 강진이 이어지고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때의 징조는 날로 뚜렷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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