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신학/문화신학

계속되는 성경 시대

은바리라이프 2010. 5. 27. 23:43

계속되는 성경 시대

 

 

잘 나가는 한국

한국의 국운이 크게 융성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9년 세밑에는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 소식이 우리를 기쁘게 했습니다. 물경 400억불 규모라고 합니다. 400억불은 우리가 즐겨 쓰는 수식어, ‘단군 이래 최대’를 붙이기에 마땅할 만큼 큰 액수입니다.

올 연초에 발표된 통계들도 국운의 상승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지난해 무역수지 흑자규모가 ‘단군 이래 최대’인 410억불을 기록했다 합니다. 어디 이뿐입니까? 글로벌 금융위기도 한국이 제일 먼저 극복했다고 세계가 인정합니다. IMF 학습효과 덕이라고도 합니다. 역시 매도 먼저 맞는 게 낫습니다. ‘단군 이래 최초’로 무역수지 흑자규모가 일본의 그것을 넘어서고, 수출액 규모도 세계 9위권으로 올라섰답니다. 이밖에도 자랑할 거리가 제법 많습니다.

 

요컨대 한국, 지금 잘 나가고 있습니다. 세계가 놀라며 인정합니다. 2차대전 후 식민국이었다가 독립한 나라치고 이처럼 선진국까지 솟아오른 나라가 없답니다. 둘도 없이 한국이 유일하답니다. 식민국도 그냥 식민국입니까. 크지도 않은 나라가 독립 하자마자 둘로 허리 뭉텅 잘리고, 그것도 모자라 한바탕 동족끼리 생난리를 치르는 통에 기진맥진 겨우 목숨 부지하고, 폐허에서 깡통 하나 주워들고 시작한 경주가 아니었습니까.

원체 근면하고 부지런한데다 교육열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뜨거운, 싹수있는 족속이긴 했습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도 여러 번 우리의 발전상과 교육열을 가리키며 ‘한국을 보라’고 하더군요. 어쨌거나 한국, 참 놀랍습니다. 최강대국 대통령도 부러워하는 한국, 거침없이 하이킥입니다.

 

그런데 덜컥 겁이 납니다. 왜 드라마에서 기구한 인생역정을 걸어온 여자가 제법 살만해지고 사랑도 듬뿍 받을 때 남자 품에 기대어 하는 말 있잖습니까. “나 이렇게 행복해도 돼?” 뭐 이런 식의 손발 오그라드는 대사가 문득 생각난다 이겁니다. 한국, 이렇게 잘 나가도 되나요? 우리가 뭘 잘한 걸까요?

 

잘 나가는 이스라엘

남유다의 선지자 아모스가 북이스라엘의 벧엘에 가서 회개를 촉구할 때,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는 이렇게 면박을 줍니다.

“야 이놈아, 누가 누굴 걱정하는 게냐? 우리 이스라엘은 지금 잘 나간다! 우리는 까딱없으니 썩 유다로 돌아가라! 거기서 떡을 먹든지, 예언을 하든지 맘대로 하고, 우리 벧엘에는 얼씬도 말아라!”

 

때는 여로보암 2세 치세, 곧 주전 760년경으로 아마샤의 말처럼 이스라엘은 잘 나갔습니다. 국경도 ‘하맛 어귀에서 아라바 바다까지’ 넓혔습니다. 유다 이북만 놓고 보면 솔로몬 시대를 방불케 하는 판도였습니다. 왕이 선지자 요나에게 이같이 말합니다.

“이 나라가 열린 이래 이보다 더 좋은 시절이 있었소? 입을 것, 먹을 것이 넘치고, 일터마다 이방의 노예로 가득한 이 호시절에 무엇이 더 필요하겠소?”(성극 <니느웨 가는 길>中)

 

여로보암의 시대는 솔로몬의 시대를 방불케 하고, 우리의 시대는 그들의 시대만큼 호시절입니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부자들은 더욱더 부유해지고, 빈자들은 가진 것마저 착취당하고 있습니다. 부자들은 화려하고 값비싼 사치품에 관심을 쏟습니다. 영원한 것을 찾지 않고, 말초적이고 순간적인 만족을 추구합니다. 가난한 자들을 무시하고, 그들의 필요에 무관심하며 어려운 중에 내버려 둡니다. 남자들은 물질과 돈벌이에 몰두하고, 여자들은 쾌락을 삶의 목적으로 삼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법적·경제적 시련을 당하면서 자신들을 지킬 여력도 없이 유기됩니다(암3-8장). 아모스의 외침이 오늘의 우리를 향한 것 같습니다.

 

이 시대 이스라엘의 부흥은 오직 그들의 고난이 심하여 매인 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고, 도울 자도 없음을 여호와께서 불쌍히 보신 덕분이었습니다. 그들이 잘나서가 결코 아니었습니다(왕하14:26). 아마 우리의 부흥도 그러할 것입니다.

 

요나와 로버트 박

이러한 시기에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로 악독이 넘치는 도시였습니다. 로버트 박은 두만강 가에서 기도 중에 영감을 받고 평양으로 갔습니다. 그곳 역시 악독이 차고 넘쳐 곧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곳입니다.

 

로버트 박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러 왔다!”고 외치며 눈 내리는 두만강을 건너갔습니다. 북한 초병들이 그의 담대한 외침에 놀라 어안이 벙벙했다고 합니다. 그의 선포는 얼어붙은 동토에 박히는 작고 예리한 못이 되지 않을까요. 꽁꽁 언 얼음은 둔탁한 망치질보다 별 것 아니게 보이는 촌철(寸鐵)에 의해 더 쉽게 갈라지는 법. 꽁꽁 얼어붙은 사단의 견고한 진(陣)에 균열이 나지 않았을까요.

 

요나의 시대와 로버트 박의 시대가 여러 모로 닮았습니다. 부흥하는 국세, 적성국으로 들어간 선지자... 굳이 차이를 들자면 요나는 니느웨로 가기 싫어 다시스로 달아나다 붙잡혀 갔고, 로버트 박은 자원해서 갔다는 정도입니다. 요나가 성의 없이 외쳤어도 니느웨 시민들이 회개했는데, 요나보다 훨씬 더 진지하고 성의 있는 로버트 박의 선포는 어떤 결과를 불러 올까요?

 

요나서를 보면 모든 일의 성취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로버트 박의 생사와 그를 통한 역사 또한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있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기다립니다. 하나님께서 북한을 어찌 하실지, 사단의 권세를 이제 풀기로 작정하신건지, 이 민족을 어찌 하실지, 그리하여 이 시대를 어찌 움직이실지, 설레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하회(下回)를 기다립니다. 성경의 시대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16:2-3)’

 

10.01 은바리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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