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극/바울 주변인물

교회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

은바리라이프 2010. 2. 8. 22:31

교회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
관련성구
사도행전 6:1~15, 7:1~60, 8: 1~3, 11:19
스데반은 ‘면류관’이란 뜻입니다. 스데반은 초대교회가 처음으로 선택한 일곱 명의 집사 중 한 사람으로 매우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는 그의 가족배경에 대해 아무런 기록이 없습니다. 하지만 사도행전에 나타난 그의 내용들을 통해서 그의 인격과 신앙의 위대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일반적으로 일곱 명의 집사를 기록할 때 그의 이름이 맨 먼저 기록되고 있습니다. 집사란 본래 음식 시중을 드는 사람, 즉 종을 의미했습니다.



기독교의 위대한 점은 교회의 직제가 처음부터 섬기는 직분이었다는데 있습니다. 집사(deacon)란 봉사자, 일꾼, 종(servant), 보조자 등의 뜻을 가진 말이었습니다. 초대교회가 이 일곱 집사를 선출하게 됨으로 일대 전환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초대교회가 집사를 세우게 된 근본적인 목적은 구제와 행정의 일을 맡아서 함으로, 사도들이 그 본연의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하자는데 있었습니다.



조직이 커지게 되면 서로 역할을 분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점점 모이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하는 가운데 교회 내의 문제가 생겨났습니다. 이를 해결하고자 교회 조직의 새로운 직제가 필요했고, 서로 역할 분담을 위해 집사들을 선택하게 됩니다.

사도들이 집사들을 선택할 때는 몇 가지 기준을 두었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 행정에 능력이 있는 사람, 지혜가 충만한 사람, 사람들에게 평판이 좋은 사람을 선택하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뽑아서 일곱을 세웠는데, 그 가운데 스데반과 빌립은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팔레스틴 본토(本土)에서 나서 히브리어와 아람어를 쓰면서 헬라화되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었고, 반면에 헬라파 유대인들은 대개 다른 나라 외지(外地)에서 태어났으나 유대인의 피를 가진 사람들로서 헬라어를 익숙하게 사용하고 비교적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당시의 히브리파 유대인들 중에는 헬라파 유대인들을 멸시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자기들의 소유를 팔아서 사도들에게 위탁하여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였습니다. 그러한 구제(救濟)하는 일들을 실제로 사도들이 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헬라파 유대인들보다는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주도권을 가지고 구제를 하였는데,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은 객지에서 왔던 헬라파 사람들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구제 때마다 헬라파의 가난한 사람들을(헬라파 유대인의 과부들) 소외시켰기 때문에 헬라파 사람들이 히브리파 사람들을 원망하였습니다(‘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행 6:1).



이러한 때에 궁극적으로 원망은 사도들에게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이러한 일을 감안하여 행정을 잘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원망을 듣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업무를 설교자들이 맡지 않는 것이 바람직했습니다. 이러한 구제와 행정의 직무를 집사들이 맡아서 봉사케 하고, 설교하고 기도하는 사람들, 즉 사도들에게 무분별한 원망들이 돌아가지 않도록 조직체계를 새롭게 하게 되었습니다.



스데반은 헬라파 유대인으로서 바울과 함께 가말리엘 문하에서 같이 수학하다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바울이 스데반을 처음부터 많이 만류를 했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 진리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 본 스데반이 바울의 만류에 주저앉을 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스데반이 바울을 권하여 주님을 믿으라고 했을 것입니다.

바울의 눈에 비친 스데반은 참으로 구제불능의 이단에 빠진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데반이 교회 내에서는 성실한 인품에 학문과 지혜를 겸비하여 여러 사람들의 신망(信望)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문제와 말썽이 많던 구제 사업을 관리할 일곱 집사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택된 것을 볼 때 많은 성도들의 칭찬을 받던 믿음직한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행 6:5~6).



사도행전 7장에 나오는 스데반의 설교(강화講話)를 들으면, 그의 학문이 깊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학문뿐만 아니라 성령이 충만하여서 역사적 사실과 지혜로 하는 말을 당시의 유대 지도자들과 당국자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스데반의 말을 진실하고 그의 행동과 신앙이 바르고 깨끗했기 때문에 그에게 큰 능력이 있었고 다른 사람들이 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당시의 유대지도자들과 당국자들이 볼 때 사도들보다도 이 스데반이 아주 중요한 인물로 지목되었던 것 같습니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사도들과는 달리 그들의 눈에는 상당한 학문과 식견을 가진 스데반이 예수님을 믿는데 가담하여 백성들을 선동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학문뿐만 아니라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이 민간에 일어나게 됨으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스데반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은 스데반을 모반하여 고소하게 되고 잡아다가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말로서 당할 수가 없을 때 결국은 죽이는 길밖에 없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공회 앞에 세워진 스데반은 목숨을 걸고 마지막 증언을 했습니다. 스데반의 증언은 역사적인 증언이었습니다. 그는 유대 역사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역사의 교훈을 바르게 알고 있었습니다. 스데반은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고 있었습니다.



스데반의 설교에 귀를 기울여보면, 스데반이 조상 아브라함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구원(救援)의 역사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스데반의 설교는 그가 성경에 박식할 뿐 아니라 시공(時空)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철저하게 의지하는 인물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스데반의 순교는 교회 박해의 서곡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오히려 초대교회가 질적, 양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가 돌에 맞아 순교하면서 증거했던 그 설교는 그날 그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스데반 순교의 기사를 읽는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계속적으로 울려 퍼지는 역사적인 복음이었습니다. 스데반이 살아서 복음을 전해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겠지만, 사실은 그가 순교하면서 남긴 이 역사적 설교야 말로 모든 성경에 기록되어 모든 시대 모든 성도들에게 증거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때 일어난 핍박으로 인하여 세상으로 흩어져 나가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스데반은 돌을 들고 흥분하는 무리들 앞에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이를 볼 때 용기 있고 담대한 인물이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던 스데반에게 그의 설교를 듣고 있던 반대자들이 마음에 찔려 이를 갈며 스데반을 향하여 달려들었습니다. 마침내 설교는 중단되었고, 스데반은 돌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지게 됩니다. 스데반은 쓰러지기 전에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고백하였습니다(행 7:56). 그리고 돌에 맞아 쓰러진 스데반은 무릎을 꿇고 ‘주 예수여, 나의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부르짖고 순교하였습니다(행 7:59~60). 이것이 그의 설교의 결말이요, 전도의 승리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원수를 사랑하라는 교훈을 예수님 자신이 십자가 위에서 실행하였고, 예수님께서 실행하신 그대로 스데반이 또한 실행하였습니다. 자신이 죽는 순간에도 원수들을 위해 기도한 점은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한 신앙인임을 보여줍니다.



스데반의 순교하는 장면을 보면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아마도 바울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스데반같이 지독한 이단자는 죽어 마땅하다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바울이 다시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스데반의 그 평화로운 얼굴은 무엇이란 말인가? 정말 스데반의 말이 맞는 것은 아닐까?.... 아니야, 그럴 수는 없지, 이단은 이단일 뿐이지. 아무 것도 아니야! 이러한 이단들은 발본색원(拔本塞源)해서 그 뿌리까지 뽑아 버려야 한다! 무서운 독버섯 같은 것이니까!’하고 마음에 새로운 다짐을 하면서 더욱 부지런히 주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무더기로 옥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마음속에는 분명히 전에 없던 불안과 회의가 구름처럼 일어났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스데반의 설교가 한마디도 틀린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의 설교는 진실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분명한 역사적인 사실이었습니다. 바울도 도저히 반반할 아무 근거나 자료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바울은 스데반의 설교를 부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바울의 마음속에는 계속하여 그러한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올랐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고 더 열심히 교회를 잔멸(殘滅)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양심은 계속 고통을 당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스데반의 설교와 마지막 순교의 모습이 바울에게서 결코 사라지지 않고 계속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분명 누가가 기록했습니다. 누가는 스데반의 순교하는 장면도 보지 못했고 따라서 스데반의 설교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의 그 긴 설교를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 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의심할 나위가 없이 바울이 그날 듣고 고민하고 갈등하고 하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가 누가에게 전해준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다메섹의 그리스도인을 잡으러 가다가 주님을 음성을 듣고 뵙습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라는 주님의 말씀에 바울은 곧장 땅에 거꾸러지고 맙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 과거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바울에게 가장 힘 있는 설교를 한 것은 스데반의 죽음을 무릅쓰고 한 그 설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스데반의 증거가 끝나는 곳에서 이제는 바울의 회개와 함께 바울의 증거가 시작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2장에 보면,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로마 천부장에게 부탁하여 유대인 백성들에게 마지막으로 말할 기회를 얻게 되었을 때, 자신의 회심을 언급하면서 스데반의 순교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말하기를 주님 내가 주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그들도 아나이다.’(행 22:19~20)



스데반은 12사도도 아닌 믿음이 충만한 평신도 집사였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위한 핍박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고 신실한 증거를 하다가 최초의 기독교 순교자가 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스데반의 복음 증거와 더불어 의연한 순교는 복음을 사마리아와 이방인들에게 전파하는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고 그의 순교는 마침내 장차 위대한 이방인 선교사(전도자)로 크게 쓰임 받게 될 바울을 탄생시키는 하나의 거룩한 희생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성극 > 바울 주변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디모데  (0) 2010.06.04
헤롯 빌립 / 헤롯 아그립바  (0) 2010.02.20
최초로 순교한 사도 야고보   (0) 2010.02.08
실천적인 지도자 안드레   (0) 2010.02.08
학문적인 전도자 아볼로   (0) 2010.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