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바울

신학적인 선교사 바울

은바리라이프 2010. 2. 8. 20:52

신학적인 선교사 바울 나의 관심정보

2010/02/08 15:00

 
 

 바울은 '작은 자'라는 뜻이지만 본래의 이름은 '사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베냐민지파로서(빌 3:5), 길리기아의 다소에서 태어났으며 날 때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것이 그의 선교여행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행 22:3, 26-28).

 전설에 의하면 스데반과는 가말리엘 문하의 동문이었다고 한다. 스데반은 예수님을 보다 일찍 영접하였는데 바울은 그 특유의 고집으로 인하여 상당한 기간 동안 반대하며 저항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스데반을 죽여야 한다고 사형언도에 가편투표를 했다고 진술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바울의 집념은 대단한 것이었다. 스데반의 순교(AD 30년) 이후 이어지는 교회의 대박해에는 바로 바울이 주축이었다.

 

 바울은 소아시아의 길리기아 평원에 위치한 다소 출신이었다. 당시의 다소는 매우 번성한 도시였다. 그리고 특별히 교육열이 높은 학문의 도시였다(행 9:11, 21:39, 22:3). 바울의 아버지는 로마사회에서 인정받을 만큼 유력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가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그의 아버지가 베냐민지파의 유대인이면서도 로마 시민으로서의 활약을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한다.

 바울이 언제쯤 예루살렘의 가말리엘 문하에 들어왔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가 헬라어에 익숙하고 히브리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을 볼 때 그 아버지의 경건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아들을 예루살렘에 유학시킬 정도로 민족주의자이면서도 로마 시민으로서 행사한 것을 보면 그의 가정은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가말리엘 문하생 중에서 지나칠 정도로 엄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갈 1:14).

 그는 스데반의 순교 장면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은 것 같다. 스데반의 설교는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성령의 지혜를 힘입어 바울의 폐부를 깊이 찔렀다.

 

 바울은 애써 그 진리를 거부하면서 오히려 더 힘써 주를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였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마음 속에 일어나는 갈등을 이기는 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많은 성도들을 잡아다 옥에 가두고 다메섹까지도 원정을 갈 정도로 그 일에 열심이었다. 유대인들의 이러한 열심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바울이 예수님을 믿은 후 복음을 전하게 되었는데 그러한 곳에는 유대인 중에서 열심이 특심한 사람들이 따라오면서 핍박한 것을 여러 차례 볼 수 있다.

 제 1차 전도여행을 다녀왔을 때는 예루살렘에서 수리아 안디옥까지 내려와서 할례를 주장한 할례당들이 있었다(행 15:1-2).

 제 2차 전도여행 중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에서 바울을 박해하던 유대인들이 베뢰아까지 따라와서 핍박을 하였다(행 17:10-15).

 바울의 나이를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대략 예수님과 비슷했을 것으로 본다.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를 만난 후 제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오순절을 지키기 위하여 도착했을 때는 AD 58년경이었다.

 당시 예루살렘 분봉왕은 헤롯 아그립바 1세(AD ?-?년)였다.

 바울은 결정적으로 다메섹 도상에서 변화를 체험하지만 그의 변화는 상당한 시간을 두고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가 진리의 도를 들은 후에는 곧 전도자가 되었다. 그것은 그가 지금까지 구약의 율법을 오랫 동안 연구해놓은 기초가 있었기 때문에 진리를 바르게, 그리고 빠르게 파악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도행전이라고 하면 여러 사도들의 행적이 담겨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실상은 베드로와 바울의 행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두 사람의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

 1장부터 11장까지는 대체로 베드로를 주축으로 한 예루살렘과 가이사랴, 욥바에서의 활동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9장에서 바울의 회개와 함께 이야기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된다. 9장에서 28장까지는 바울행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도행전 29장은 성경에 없지만 우리 자신이 우리의 현장에서 사역하면서 기록해야 할 부분이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은 끝난 책이 아니라 각자가 이어서 기록해나가야 할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사도행전이 책으로서는 28장에서 끝이 났으나 그 사역은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공자는 얼마나 진리를 사로했던지 "조문도(朝聞道)면 석사(夕死)라도 가(可)하니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도를 듣고 믿었다.

 그리고 그 도는 영생의 도이며 공자님이 그렇게 듣고 싶어하던 그 진리인 것이다.

 바울은 철학에서나 율법에서 듣지 못했던 그 도를 들은 것이다.

 그리고는 이 도를 전하는 전도자의 한 사람이 된 것이다.

 바울은 말하기를 "이 직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하였다.

 "내가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한다"고 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당시의 온 세계를 누비고 다녔다.

 소아시아 일대를 다 다녔다.

 그리고 마게도냐와 아가야, 일루리곤까지 복음을 전하였다.

 마침내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였다.

 다시 풀려나자 그는 그레데로, 다시 에베소로 그리고 마게도냐와 아가야, 니고볼리로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였다. 그리고 다시 체포되어 로마감옥에서 디모데후서를 쓰고 네로 왕에 의하여 67년경에 순교하였다.

 그의 여정은 실로 머나먼 길이었다.

 그는 유대인으로서 베냐민지파의 사람인데 그의 아버지에 의하여 길리기아 다소(타르수스)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헬라인들의 철학에 대하여 공부를 했다. 세상적인 학문으로는 최고 학부를 거친 사람이었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그는 예루살렘으로 와서 바리새파에 소속을 두고 열심으로 율법을 공부했다.

 유대인들이 다 존경하는 가말리엘 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할 때 여러 연갑자보다 열심이 특심한 사람으로 알려질 정도였다.

 그의 장래는 얼마든지 보장받을 수 있을 정도로 박식한 사람이었다.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여 당시의 신분으로서는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는 또한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또 천막을 짓는 기술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만나게 된 날부터는 하루도 편한 날이 없이 이 복음을 들고 달리고 또 달려서, 싸우고 또 싸우면서 천국문이 바라다 보이는 곳, 면류관이 보이는 곳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동안 옥에 갇히기만도 4번씩이나 했다.

 빌립보의 감옥에서 한번 가이사랴에서 2년, 로마 옥에서 2년, 다시 로마 감옥에서 순교하기까지 기록상 밝혀지는 경우만 해도 4번이었다.

 매를 맞은 경우는 수도 없이 맞았다고 한다.

 그때마다 죽을만큼 충분히 맞았는데 용케도 다시 살아났다.

 여러번 맞았는데 죽도록 맞은 적이 여러 번이었다.

 유대인들에게 맞은 것이 다섯번이었다고 한다.

 그들의 매질은 39대를 때리는 혹독한 매질인데 이런 매를 맞으면 거의 죽다시피 되는 매질이다.

 태장을 맞은 것이 세번이었다고 한다.

 한번은 돌로 맞아서 죽을 뻔하였다.

 배를 탔는데 파선을 당하기를 세번을 당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린도후서를 쓸 당시는 아직 로마로 가지 않았을 때였다.

 로마로 가는 뱃길에서 유라굴로라는 허리케인을 만나서 14일을 햇빛 한번 보지 못하고 굶주리다가 마침내는 파선을 당한 경험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바울은 배를 타지 않고 걷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멀고 오랜 여행에 강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을 당하였다.

 강도들에게 위협을 당하기도 하였다.

 동족들 특히 유대인들을 만나면 반가와야 할 텐데 겁부터 먼저 났다.

 이방인들의 무법천지 같은 곳을 헤매고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자니 그 위험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을 당하였다. 거짓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기도 하였다. 수고하면서도 굶고 애를 쓰면서도 춥고 헐벗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여러번 잠을 잘 수 없는 환경에 처하게 되었고 주리고 목마름을 당하였다.

 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날마다 무겁게 줄리는 짐이 있었는데 교회들을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었다.

 누가 약하면 애가 타고 누가 시험에 들면 근심이 되고,

 누가 실족하게 되면 걱정이 되고,

 누가 낙심하면 같이 낙심이 되는 것이 목자의 마음이다.

 바울은 건강마저 좋지 못해서 여러번 몸져 눕기도 했다.

 그가 걸어간 발자취를 더듬어보면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 다소ㅡ예루살렘ㅡ다메섹ㅡ예루살렘ㅡ다소ㅡ아라비아ㅡ다소ㅡ안디옥ㅡ구브로의 살라미ㅡ바보ㅡ밤빌리아ㅡ수리아 안디옥ㅡ이고니온ㅡ루스드라ㅡ더베ㅡ루스드라ㅡ이고니온ㅡ안디옥ㅡ앗달리아ㅡ실루기아ㅡ수리아 안디옥

 

 2. 안디옥ㅡ예루살렘ㅡ안디옥ㅡ다소ㅡ더베ㅡ이고니온ㅡ루스드라ㅡ안디옥ㅡ갈라디아ㅡ부르기아ㅡ드로아ㅡ마게도냐ㅡ네압볼리ㅡ빌립보ㅡ암비볼리아ㅡ아볼로니아ㅡ데살로니가ㅡ베뢰아ㅡ아테네ㅡ고린도ㅡ에베소ㅡ로데ㅡ바보ㅡ가이사랴ㅡ예루살렘ㅡ안디옥

 

 3. 안디옥ㅡ다소ㅡ더베ㅡ이고니온ㅡ루스드라ㅡ안디옥ㅡ갈라디아ㅡ부르기아ㅡ에베소ㅡ드로아ㅡ빌립보ㅡ데살로니가ㅡ빌립보ㅡ드로아ㅡ앗소ㅡ미둘레네ㅡ밀레도ㅡ고스ㅡ로데ㅡ바다라ㅡ바보ㅡ두로ㅡ돌레마이ㅡ가이사랴ㅡ예루살렘ㅡ가이사랴ㅡ시돈ㅡ무라ㅡ그니도ㅡ살모네ㅡ라세아ㅡ뵈닉스ㅡ멜리데ㅡ수라구사ㅡ레기온ㅡ보디올ㅡ로마

 

 4. 로마ㅡ그레데ㅡ에베소ㅡ골로새ㅡ히에라볼리ㅡ에베소ㅡ드로아ㅡ빌립보ㅡ데살로니가ㅡ베뢰아ㅡ아테네ㅡ고린도ㅡ니고볼리ㅡ로마의 마메딘 감옥에서 디모데후서를 쓰고 네로의 칼에 참수형을 당하여 순교ㅡ천국으로 가셨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18장 11절까지 읽고 거기에서 1년 6개월을 체류하는 동안에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를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어서 데살로니가후서도 기록했고 갈라디아서도 이때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바울은 처음에는 철학을 공부하였고 나중에는 율법을 공부하였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고 나서부터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면 무슨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사랑이 없으면 사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고전 8:3).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 13:1-13).

 

 영원하지 못한 것 곧 폐하게 될 것이 있으니 곧 예언과 방언과 지식이요, 영원히 폐하지 않을 것이 있나니 곧 믿음과 소망과 사랑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은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단정한 뒤에 신령한 것을 구한다 할지라도 사랑을 따라 구하라고 권면한다. 이런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고 체험하고 나서 남긴 말씀들이다.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고전 14:1).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고전 16:14).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알게 된 것은 하나님은 인간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신령한 지식은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깨닫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거룩한 의는 이웃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하는 것이다. 가장 큰 은혜는 우리가 사람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