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바울

이방인의 사도, 선교사 바울

은바리라이프 2010. 2. 5. 23:29

이방인의 사도, 선교사 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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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9:3~19, 22:17~21, 갈 1:10~24, 고후 11:16~33
바울은 ‘작은 자(者)’라는 뜻이지만, 본래의 이름은 ‘큰 자(者)‘라는 뜻인 ’사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베냐민 지파로서, 길리기아의 다소에서 태어났으며 날 때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것이 훗날 그의 선교여행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행 22:3, 26~28).



전설에 의하면 스데반과는 당대 최고의 가말리엘 문하(門下)의 동문이었다고 합니다. 스데반은 예수님을 보다 일찍 영접하였는데, 바울은 그 특유의 고집으로 인하여 상당한 기간 동안 반대하며 저항하고 있는 모습을 보입니다. 바울이 스데반을 죽어야 한다고 사형언도에 찬성투표를 했다고 진술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그의 집념은 대단하였습니다. 스데반의 순교(AD 30년)이후 이어지는 교회의 큰 박해(迫害)는 바로 바울이 주축이었습니다.



바울은 소아시아의 길리기아 평원에 위치한 다소 출신이었습니다. 당시의 다소는 매우 번성한 도시였습니다. 특별히 교육열이 높은 학문의 도시였습니다(행 9:11, 21:39, 22:3). 바울의 아버지는 로마사회에서 인정받을 만큼 유력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이 나면서부터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그의 아버지가 베냐민 지파의 유대인이면서도 로마 시민으로서의 활약을 한 사람이었음을 알게 합니다.



바울이 언제쯤 예루살렘의 가말리엘 문하에서 들어와서 공부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그가 헬라어에 익숙하고 히브리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을 볼 때 그 아버지의 경건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들을 멀리 떨어진 예루살렘에 유학시킬 정도로 민족주의자이면서도 로마 시민으로서 행사한 것을 보면 그의 가정은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바울은 가말리엘 문하생 중에서 지나칠 정도로 엄격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갈 1:14).

그는 스데반의 순교 장면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스데반의 설교는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성령의 지혜를 힘입어 바울의 심장을 깊이 찔렀습니다.



바울은 애써 그 진리를 거부하면서 오히려 더 힘써 주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갈등을 이기는 길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많은 성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고 다메섹까지도 원정(遠程)을 갈 정도로 교회를 박해하는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이런 열심은 흔히 있는 일이었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믿은 후 복음을 전하게 되었는데, 복음을 전하는 곳에는 유대인 중에서 열심이 특심(特甚)한 사람들이 따라오면서 바울을 핍박한 것을 여러 차례 볼 수 있습니다.



제 1차 전도여행을 다녀왔을 때는 예루살렘에서 수리아 안디옥까지 내려와서 할례를 주장한 할례당들이 있었습니다(행 15:1~2).

제 2차 전도여행 중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에서 바울을 박해하던 유대인들이 베뢰아까지 따라와서 핍박을 하였습니다(행 17:10~15).

바울 역시 본래 열정적인 사람으로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유대교의 율법학자로서 새로 일어난 그리스도교를 유대교의 적으로 보고 교회를 박해하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섰습니다. 그는 살기가 등등하여 그리스도의 도(道)를 좇는 사람이면 남녀 가릴 것 없이 잡아들일 생각으로 다메섹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바울과 그 일행이 다메섹 성 밖에 이르렀을 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이렇게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부르심을 받은 사울(바울의 전 이름)은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습니다.



사울이 다메섹 도상(途上)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바울로 변화된 사건은 의미 깊은 사건이므로, 신약성서에 여러 번 나타나 있습니다. 그 후 그는 다메섹에서 아라비아로, 다메섹에서 예루살렘으로, 예루살렘에서 다소로 전전하면서 많은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결정적으로 다메섹 도상(途上)에서 변화를 체험하지만, 그의 변화는 상당한 시간을 두고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진리의 도(道)를 들은 후에는 곧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지금까지 구약의 율법을 오랫동안 연구해놓은 기초가 있었기 때문에 진리를 바르고 빠르게 파악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신약성경에서 사도행전이라 하면 여러 사도들의 행적(行蹟)이 담겨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베드로와 바울의 행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두 사람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1장부터 11장까지는 대체로 베드로를 주축으로 한 예루살렘과 가이샤랴, 욥바에서의 활동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9장에서 바울의 회심과 함께 이야기는 전 세계로 펴져나가게 됩니다. 9장에서 28장까지는 바울의 행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회심(悔心)한 후에 바나바를 통해 안디옥교회에서 함께 사역을 하였습니다. 그 후 안디옥교회가 바나바와 바울을 따로 세워 세계 전도여행을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바나바와 바울 그리고 젊은 청년 마가 등 선교사 일행은 교인들의 기도와 함께 제 1차 전도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전도단은 안디옥에서 출발하여 구브로 섬을 거쳐 여러 도시에서 전도하며 각 교회에 장로를 세워 교회를 설립하고 안디옥에 돌아와 교인들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였습니다. 교회 안에서 이방인 선교에 대해 율법주의자들의 반항이 있었으나 사도들과 장로들이 모인 예루살렘 회의에서 의장 야고보가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라’고 중재하여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었습니다.



제 2차 여행 때는 바울과 바나바가 마가의 동행문제로 헤어져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와 함께 유럽으로 건너가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고린도 등 여러 도시에서 전도하고 안디옥교회에 돌아와 모든 성과를 보고하고 안디옥교인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제 3차 여행을 시작하기 전, 갈라디아지역 교회가 복음을 배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갈라디아서를 썼고, 그 후에 고린도교회 소식을 듣고 화해의 편지를 써서 디도 편에 고린도에 보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석 달을 머물러 있으면서 로마를 중심으로 하여 세계 전도여행의 꿈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바울이 로마교회의 후원을 얻기 위해 긴 편지를 쓴 것이 로마서입니다. 로마서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가장 조직적, 체계적으로 기록한 글입니다.



위험을 예측하는 교우(敎友)들이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는 것을 만류하지만 바울은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을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행 21:31)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갔다가 체포되었습니다. 세계 모든 민족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신앙의 자유를 위해 일평생 싸우며 헌신한 전도자가 바울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바울은 당시 로마 총독이 주재(駐在)하던 가이사랴에 이송되어 2년 동안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마침내 로마로 재판받기 위해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오래 전부터 계획하던 로마를 향해 출발하지만 계획한 대로 자유로운 몸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죄수(罪囚)의 몸으로 압송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해상으로 가는 도중에 지중해에서 여러 날 태풍에 시달리다가 드디어 로마에 도착하였습니다.



비록 죄수(罪囚)이지만 그는 로마 시민권이 있는 사람으로서 특별대우를 받아 따로 셋집에서 재판 날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재판이 2년씩이나 지연되어 그동안 바울에게 구금(拘禁)상태에서도 상당한 자유가 허락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찾아오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여러 교회에 옥중서신(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을 써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바울의 나이를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대략 예수님과 비슷했을 것으로 봅니다. 그가 다메섹 도상(途上)에서 주님을 만난 후 제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오순절을 지키기 위하여 도착하였을 때는 AD 58년경 이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분봉왕은 헤롯 아그립바 1세였습니다.



주님을 믿지 않고 핍박하다가 주님을 만난 바울은 철학이나 율법에서 듣지 못했던 진리의 도(道)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도(道)를 전하는 전도자(傳道者)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이 직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하였고, ‘내가 이 복음(福音)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救援)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能力)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복음(福音)을 전하기 위하여 바울은 당시의 온 세계를 누비고 다녔습니다. 오늘에 비해 당시 교통 상황은 불편하였지만 그는 소아시아 일대를 다 다녔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그리스 지역인 마게도냐와 아가야, 고린도, 아테네까지 복음을 전하였고, 예루살렘에 가서 체포되고 마침내 압송되어 로마에까지 가서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디모데후서를 쓰고 네로 황제에 의해 67년경에 순교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여정(旅程)은 실로 머나먼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그는 유대인으로서 당대 헬라 철학과 율법을 공부하여 최고의 학문을 배우고, 헬라어, 히브리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또한 로마시민권까지 지니면서 천막을 짓는 기술까지 가지고 있었기에 세속적으로 장래가 촉망되고 보장되는 길이 열렸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부터 그에게는 복음을 위해서 싸우면서 달려가는 고난의 나날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는 동안 감옥에 4번씩이나 갇히기도 했습니다. 빌립보의 감옥에서 한번, 가이사랴에서 2년, 로마 옥에서 2년, 다시 로마감옥에서 순교하기까지 4번이었습니다.

매를 맞은 경우는 수도 없이 많았다고 바울 자신은 고백합니다. 그 때마다 죽을 만큼 충분히 맞았는데도 다행히 다시 살아났습니다. 동족 유대인들에게 맞은 것이 다섯 번이었습니다. 그들의 매질은 39대를 때리는 혹독한 매질인데, 이런 매를 맞으면 거의 죽다시피 되는 매질입니다. 태장(笞杖)을 맞은 것이 세 번이었다고 합니다. 한 번은 돌에 맞아서 죽을 뻔 하였습니다. 배를 탔는데 파선(破船)을 당하기를 세 번 당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로마로 죄수의 몸으로 압송(押送)되어 가는 뱃길에서 ‘유라굴로’라는 하리케인(태풍)을 만나서 14일을 햇빛 한 번 보지 못하고 굶주리다가 마침내는 파선을 당한 경험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멀고 오랜 전도여행에서 강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을 당했습니다. 강도들의 위협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동족들 특히 유대인들을 만나면 반가워야하는데 겁부터 먼저 났습니다. 이방인들의 무법천지 같은 곳을 헤매고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니 그 위험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을 당하였습니다. 거짓형제들의 위험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수고하면서도 굶고, 애를 쓰면서도 춥고 헐벗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번 잠을 잘 수 없는 환경에 놓이게 되었고 주리고 목마름을 당하였습니다. 이런 일은 그만두고라도 항상 무겁게 눌리는 짐이 있었는데 교회들을 위하여 염려하는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건강마저 좋지 못해서 여러 번 몸져눕기도 하였습니다.



바울은 본래 처음에는 철학을 공부하였고, 나중에는 율법을 공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고 나서부터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면 무슨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아무 것도 아님을 바울이 깨닫게 됩니다. 사랑이 없으면 사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바울 사도가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교인들을 향해 권면하면서 그가 배우고 깨달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고전 8:3)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전 13:1~3)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 13:4~7)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전서 13:8~13)



영원하지 못한 것 곧 폐하게 될 것이 있으니 곧 예언과 방언과 지식이요, 영원히 폐하지 않을 것이 있으니 곧 믿음과 소망과 사랑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도 단정한 뒤에 신령한 것을 구한다 할지라도 사랑을 따라 구하라고 권면합니다. 이런 말씀은 바울과 같은 사람들이 깊이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고 체험하고서 오늘의 우리들에게까지 전하는 값지고 귀한 말씀들입니다.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전 16:14)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알게 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인간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신령한 지식은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깨닫느냐 입니다. 그리고 가장 거룩한 의(義)는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같이 하는 일입니다. 또한 가장 큰 은혜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없는 존재일지라도 주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갖고 있었던 바울은 오늘도 살아있는 신앙(信仰)의 용사(勇士)요, 기독교의 위대한 거인(巨人)으로 우뚝 서 있습니다.

주님은 한 사람 바울을 부르셔서 변방 팔레스타인 지역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기독교의 복음이 소아시아와 유럽을 거쳐 전 세계로 확산되는 중요한 초석(礎石)을 놓는 인물이 되게 하셨고,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세계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救援)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참고성구: 행 11:19~26, 행13:2~14:28 (제 1차 전도여행),

행 15:36~18:22 (제 2차 전도여행), 행 18:23~21:14 (제 3차 전도여행), 행 21:27~28:31 (예루살렘에서의 체포와 가이사랴 감옥과 로마 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