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선교정책과 메시지 그리고 그 영향
Dictionary of Paul and His Letters / Gerald H. Hawthorne
바울의 선교정책은 그의 주어진 생의 내내 이방의 기독교인을 향하였으며 명확히 시작한때는 그의 비젼을 맞추고 그의 삶 내내 로마의 기독교공동체와 나누기에 전력하고 힘썼다.
1. 바울의 선교정책과 메시지
1.1. 사도의 선교
복음의 선포에 있어서 복음을 전하는 지역의 모든 개인에게 선교정책이 정책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지역교회에서 그 지역의 자기 성장으로 봉사가 있는 곳에 필요로 한다. 그의 복잡한 복음화 방법은; 복음 전파가운데, 그는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이름이 이미 있는 곳에는 하지 않는다"(롬15:20-21), 그러나 자신의 근거를 남겼다.
전략계획과 반응은 요구를 짐작한 결합이다. 모든 기획은 "성령의 힘에 의하여"(롬15:19)되었고 성령의 인도는 특별한 연결경험을 통하여, 그의 발걸음은 서방로 에베소와 트로아스와 마케도니아로 전환되었다(행16:6-10). 아마도 바울의 계획을 성령이 막으시고, 또한, 그의 로마방문계획의 거듭된 장애를 교회에 편지하고 있다 (롬1:13-15:22). 이에 반해서, 그는 시간의 또 다른 초자연적 간섭을 말하는데; "사단이 우리를 훼방하였다" 사단의 방해로 돌아서 데살로니가로 갔음을 후에 사단의 힘으로 급히 돌아가게 되었다고 설며하고 있다(살전2:18).
그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는 에게의 동과 서 사역이 완료될 즈음, "나는 더 이상 이 지역에서 사역할 여지가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롬15:23).
그해 동안의 그의 공로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일루리곤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전히 전하였다"(롬15:19)는 데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R. Allen은 주후 47년 갈라디아와 아시아, 마게도니아와 에게 지방에는 교회가 없었다고 기적한다. 그 시기, 십년후에, 그 네 지방은 바울에 의하여 복음을 전파하였고 서지중해에서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반복하여 실시하였다.
바울의 선교사역은광범위하고 집중적이었다. 바울은 중요도시에 위치해있는 주요도로 및 동료사역지나 근접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사역하였다. 한 예로, 에베소 사역에서 바울의 동료들은 아시아의 외각지역에서 사역하고 있을 때 바울은 에베소에서 사역하였는데 "아시아의 모든 거주자들, 유다와 헬라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들었다"(행19:10).
1.2. 교회의 선교
지역교회는 바울을 통한 그들 지방의 회당에서 어떤 민족닮기를 실시하였는데 복음의 율법-자유위에 근거하여, 그 회당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어떤 수단으로든 그들은 다른 종교적인 개인 혹은 단체든간에 다양한 헬레니즘 세계를 닮아갔다. 그러나 바울은 계속적인 목회를 통하여 그들을 보살폈고, 각 교회를 향한 광범위한 그의 사도적 사명를 퍼부었다. 그래서, 몇주후 그는 데살로니가로 떠났고, 그는 젊은 교회를 찬양하며 그는 떠날 수 있었던 이유를 그는 말하기를 "오직 주의 음성이 너로부터 마게도니아와 에게에 들리지 않으나 너의 하나님 안에 믿음이 모든 곳에 펴졌다"(데전1:8).
그러한 교회들은 자연적으로 "담이 있는 정원"이 조성되지 않은 것 처럼 분명한 주변 광야의 침입을 예방함으로써 오히려 주변광야에서 더욱더 많은 사업을 대신하였다.
로마세계는 곧이어 복음화가 가능해졌다. 시간이 때가 이른 것이다. 바울은 그 자신이 주님의 특별한 사역계획안에 있음을 알았다. 그는 오직 이방사역만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위해 더욱 힘써 일하였다"(고후15;10). 그는 사역을 마칠 때까지 오래 살지는 않았으며 그는 사역동안 최선을 다하여 "천국시민"(빌3:20)을 다른이들에게 선포하였고, 그것은 사도적 영역의 분담과 그리스도의 대리로 , 증거와 찬송의 삶이었다. 그 교회는 "세상에 빛나는 빛이었다"(빌2:15); 이와같이 믿는 자들이 증가하면서 "예수의 영광의 그 복음의 빛"를 볼 때가 올 것이다(고후4:4).
1.3. 사도적 권위와 그 교회들
바울계 교회는 어떠한 형상이나 가시적 조직내 함께 연결하는 나타남이 없었다. 바울의 사도됨의 그 권위는 그리스도로 오는데, 모든 교회의 주님이며, 그들을 통하여 전달되고 인정하는 사도권이 있음을 의미한다. 한 예로 바울의 교회는 예루살렘교회의 가난한 이들은 위한 구제기금의 조직으로 불러일으켰다. 그 돌봄과 실천지혜는 개인과 단체교회의 조직간 생명사역에 있어 너무나 분명한 조직내 구조사역의 활동이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히 조직에 작은 염려가 있었다. 그의 염려는 각 개교회의 어떤 회원들은 부근에서 영적 인도자의 자격을 받았는가하는 것이다. 그의 사도됨은 소질개발과 명백한 시간의 과정을 통하여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교회를 서서히 그의 인격을 통하여 지도자 자격을 인정하게 되는데 그들의 주의를 받게 되었다. 고린도 교회는 열심을 다하였는데 그 한 예로 스테파투스의 가족은 말하기를 "섬기는 성도들에게 헌신하라"하였고 "그런 사람들에게 복종하고 모든 일하고 땀흘리는 자에게 따르라"(고후16:15-16)하였다.
고린도의 교인들은 아마도 권위의 자연스러움에 참지 못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개척후 2년 이내에 목회질서를 위하여 감독과 집사를 두었다(빌1:1). 그러나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하기를 바울은 Epaphroditus처럼 존경을 표하는 것을 말하였는데 그들은 그리스의 사역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며 충성할 것이기 때문이다(빌2:29-30).
바울계 교회의 선천적인 공통적 특색이 있는데, 규정으로 나타나는 강요를 시도하지 않았다. 바울은 교회의 다른 곳으로 나가는 이가 없기를 기도하였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하기를 강조하면서 말하기를 "변론가가 있거든 우리는 다른 실천을 인정치 않고 하나님의 교회는 행하지 않는다"(고전11:16) 다른말로, 만약 다른길로 나아가는 자들은 단호히 결정하여 그들이 있음을 인정한다.
지역교회로부터 출교당한 개인은 멀리떨어지게 하는데, 고린도교회에서 근친상간을 행한 사람처럼 공동생활을 타락시키고 복음의 윤리와 그리스도의 이름을 바쁘게 하는 이에게는 맹렬한 방법을 통하여 그의 최후에 구원을 얻게 한다(고전5:5). 그러나 교회의 파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아니라 바울은 "주안에 사도"됨을 "보증"하였던 자기의 영적 자녀들의 파멸은 자기좌절임을 숙고하였다.
내부의 이런 것, 징계, 목회와 그외, 존재와 지시하시는 바울을 향한 실존하시는 성령의 힘을 은연중에도 그는 명백히 언급하지 않고 있다. 만일 그의 회심이 진실이 아니었다면, 단체나 개인적인, 그들을 향한 그의 나아감을 포기할 것이며, 그의 "주안의 길"(고전4:17), 그는 진실로 성령으로 개심하여 사역하였다.
바울계의 공동체는 그의 사역세계에서 끈기있게 견디는 것을 갖추었다. 그들은 음식제한이나 안식일의 준수에 있어그들의 이웃 이교도와 함께 음식을 나누거나 다른 방식의 사회적 섬김에 제한이 없었다(고전10:27-30). 단지 명백한 우상숭배나 성적인 부도덕을 금지하였다. 격리하지 않았으나 그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그들의 이웃사이에 빛나게 하였는데 "세상가운데 빛으로서, 앞으로 생명의 말씀을 소유하여"(빌2:15-16).
1.4. 세례와 주의 만찬
세례와 주의만찬은 교회내 두가지 근본적인 제도로 바울의 "받아들임"은 주앞에 그로부터 주님의 소유에 기초한 교회를 영속시키는 것이다.
세례는 입문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하신 말씀으로부터 추론되는데,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너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행1:5;11:16), 성령세례로 물세례를 교체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다른방법이 실시되었다. 세례는 성령의 선물로 모임으로부터 중요한 것을 습득하게 한다. "한 성령안에서", 바울은 고린도인의 변화를 회심하는데, "우리는 성령으로 하나되며,..그리고 우리는 한 성령으로 물을 댄다"(고전12:13). 세례는 개인적인 체험이 아니다; "그리스도예수와 세례받으므로 그의 죽음과 함께 우리모두가 세례를 받고,....... 하기위하여......우리를 새로운 삶으로 걷게된다"(롬6:3-4).; "누구든지 그리스도로 세례받으며 그리스도를 취하게 된다;....예수그리스도안에서 모두가 하나이다"(갈3:27-28). 세례는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의 모임에 성도로 되어가게 하는데 성령의 역할은 믿음을 통하여 하나되게 하고 다른 사람과 그리스도와 함께 삶을 고귀하게 한다.
바울은 그의 회심으로 주의 만찬의 이해를 떠나지 않았는데, 고린도는 더 각별하다, 그들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을 거짓말쟁이라 책망할 때 행동하지 않았다. 식사때마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다른 것을 함께 섬김으로 축제하였고 그들 교회의 성도는 "주의 식탁"에 외적으로 참여하였으며 또한 자유롭게 이방사원에서 음식을 나누는 것을 느끼며, 효과적으로 거부할 것을 선언하고 있다(고전10:14-22). 또한 게다가, 그리스도안에서의 형제와 자매된 그들의 공동기념식사에 외식적인 경배가 있었으니 가치없는 행동을하거나 하찮은 신을 향하여 그들은 나아가는데, 각별히 가난하거나 혜택받지 못하는 자들로, "주님의 살과 피를 더럽히는 죄"와 그것으로 먹고 마시는 그들은 심판을 가져오고, 축복 받지 못한다(고전11:17-32).
세례도 성만찬 수행도 신성의 적을 예방하는 초자연적인 방법일수 없는데, 어떻게하든지 뿌리고 거두는 법칙을 방해한다. 사람들이 동의하고 하나님이 인정하는 용서의 은혜, 윤리적으로 밀접한 관계로 신뢰의 삶 가운데; 세상사람들은 견고하게 서야하는데 그러므로 넘어지지않게 주의하여야 한다(고전10:11).
2. 바울의 계속되는 영향
2.1. 1세기
바울은 죽음이후 교회의 존경받는 성인이요, 사도이며 순교자이다. 어떤 유대전승에서는 요한의 회상을 참으로 싫어하는데 -한 예로, 영향을 주는3-4세기의 클레멘트문헌이 허위 자취- 그러나 그들의 흐름은 기독교인의 사상에 영향을 주지 못하였다.
로마교회는 바울에 대하여 특별히 강조하는데 왜냐하면 그가 로마에서 그의 생애를 마감하였고 순교로 사도사역을 완성하였기 때문이다. 바울의 장례 기념인 Ostian가에는 로마교인들이 2세기말까지 자부심으로 나아갔는데 이것은 그들 교회의 사도적 권위를 강화하게 되었다. 실제로, 바울은 베드로와 동반하여 공동기금의 사역에 조화를 이루었는데 로마교회에서 바울자신은 비난을 받았다. 그리고 거의 모든교회들과 그의 모임 대부분을 신약에 기록하였다.
그러나 바울의 기록은 경배를 받았는데, 그의 메시지는 다량의 것을 함축한다. 초대 소수의 후바울파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기쁜 체험내에 자유함으로 기쁘게 자유로이 증거하였다.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는 그들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는 들짐승 대적으로 일격을 가할 때 하나님의 최후수락받기를 그는 희망하였다. 그는 헤르메스의 수준보다 더 나아갔으나 그것들을 즐기지 않았는데, 그는 어떤 경범죄나 다른 회복할수 없는 신성면제의 상실을 염려하였다.
바울의 율법-자유복음은 많은 종교적인 사람에게 쉽사리 권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살리며, 그리고 규칙과 규제를 통하여 다른 이들을 살린다. 또한 그는 사도의 말처럼 벌률를 존중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도덕가로 변화된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의 위험을 받아들였다. 2세기의 마감 때까지 우리는 한사람을 알고 있는데 율법의 자유를 통한 바울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마르시온으로, 하르낙은 "그의 이해조차도 그는 잘못이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마르시온은 이단으로 널리 존재하였는데 바울과 정반대의 은혜와 율법사이에 그는 논리적 종결은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구약의 시점에서 구약의 하나님과 함께 그리스도의 복음과는 부적절함으로 폐기하였으며, 아버지의 지금까지의 계시는 알 수 없다 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이단으로 마르시온 자신은 바울의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메시지를 전할 수 없었다. 마르시온은 가르치기를 거절당하였다.
마르시온은 벌률지지와 복음의 윤리뒷바침을 거절당하였다. 터툴리안처럼 도덕적 기독교인은, 마르시온이 죽음이후 세대를 위하여 기록을 남기었는데, 아름다운 글귀로 왜 그리스도인들은 하지 말아야 하는지, 그러한 지지와 방심, 죄의 괴이한 이야기들을 버리고, 마르시온은 오직 대답하기를 "하나님 금지"라는 대답에 터툴리안은 경멸를 쏟아놓았다. 이것은 분명한 바울의 성난질문, "어찌하여 우리는 죄를 짓습니까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아래 있습니까?" 그리고 바울은 반응하기를 "하나님 금지"(롬6:15). 아마도 터툴리안은 잘 알고있으나 토론중의 점수 유혹을 저지하지는 못하였다. 또한 그는 보복의 초청받았음을 주장하는데; "그리고 절제를 위한 유일한 이성은 분노에서 오는 네 죄의 공포인가?"
이것은 경험과 바울의 교회내 은혜회복 복음은 어거스틴의 사상으로 부터 온다. 어거스틴때에, 미란의 그의 친구들 정원에는, 아이들의 노래를 듣는데: "tolle, lege!"("들어라 그리고 읽어라!"), 이것은 우연이 아니었는데, 이것은 바울의 롬13:13-14절말씀으로 그의 눈은 밝아졌고 의심의 어둠에서 그의 영혼은 맑은 빛으로 충만하여졌다(주후386). 다른 기록에 어거스틴의 이전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기록은 있으나 그리 많지 않으며 조직이이고 깊은정도의 것은 아니다. 어거스틴은 그자신을, 바울이 행한대로, 신령한 은혜받을 가치가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의 최고의 고백은(397-401) 은혜에 관한 다소 형식적인 논문들에서, 그의 주장과 체계화 요구한계의 고유의 무기한 자유와 하나님의 은혜의 주권논리가 나타난다.
고백록 조차도, 아무튼, 비바울계에서는 공격한다. 어거스틴의 고백록은 아마도 영적세계의 자기각성 문학으로는 첫 에세이집이다. 어거스틴은 확실히 자신의 여건가운데 바울의 언어가운데에서 표현하는 것을 발견하였지만, 그러나 그러한 이유로 보증되지 않는 경향이 있게되는데 만약 바울이 개심전에 양심의 괴롭힘을 있음을 가정한다면 어거스틴도 같은 종류의 거룩한 양심의 괴로움이 있었을 것이다. 바울은 사실, 암시가 없이 그는 안으로 충돌하였다. 그가 교회의 박해자로 활동할 때 조차 그는 선한 양심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왜냐하면 그는 그가 섬기는 하나님에 신념이 있었다. 후에 그의 신념은, 대신하였는데, 그가 죄없는 과정을 추구하면서 실감하게 될 때 그는 용서의 사람이 되었고 사도로써 부름을 받는 하나님의 은혜를 확대하였다. 또한 어거스틴은 중간연령층의 바울계 부분 중 순결치 않은 이를 향하여 은혜의 교리를 전하였다.
2.2. 이후의 세기
신학적 측면에서, 16세기 유럽에서 재구성되어 전래가 없는 바울계 메시지의 부흥, 이것의 중요한 관점은 아주 작은 것에 있다. 마틴루터는 "하나님의 의"(롬1:17)라는 표현을 통하여 로마의 주장을 터득하였는지, 그의 실망가운데 어떻게 시도하였는지 말해주고 있다. 이것의 의미를 보면 "정의는 하나님에 의하여 불의를 징계하시는 정의와 의로운 행위." 그러나 더나아가서 성서의 연구와 함께 그는 "정의의 진리를 깨달았는데 하나님은 정의로우시며 은혜와 완전한 자비를 통하여 , 그는 우리를 믿음으로 변호하신다." 그 다음에, 그는 말하기를, "나는 나 자신이 부활과 천국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as K. Stendahl은 지적하기를, 루터는 어거스틴 처럼, 바울의 메시지에서 내부갈등으로 구원을 발견하였다. 바울의 투쟁은 영적이었으며 어거스틴은 도덕적이었고 그리고 그들은 바울의 경험을 복사하였다는 주목을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옳은 은혜의 말씀은 넓은 인간 여건의 모든것을 향한다.
이것은 루터의 믿음을 통한 의 이해로 그리스도안에 믿음의 참여에 다른 관점으로 부족한 관계 즉 윤리적 관점을 포함한다.
루터의 발견은 18세기 복음화 부흥에 풍성히 나타나는데, 또한 학문에서 다른 영향은, 바울의 복음의 더욱 포괄적인 번역을 증명하였고, 믿음을 통한 정의의 수용을 통한 "성서적인 거룩"을 고집하였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다른 영향은 1677년 스코틀랜드에서 Henry Scougal에 의하여 작은 책자가 만들어 졌는데 "The God in the soul of Man"으로, 그리스도인의 "하나님과 영으로 연합, 자연신성의 참된 참여, 영의 하나님 형상닮기, 또한, 사도의 수사', '우리안에 예수님을 형성하자'(갈4:19)."
"The God in the soul of Man"를 읽은 조지 화이틀필는 끌리어 1733년 전향이 되었고, 바울의 또 다른 해설자는 촬스와 존웨슬리는 1738년 유사한 경험을 통하여 촉진하게 되었다. 촬스는 처음 읽은 루터의 갈라디아서 2:20절 해설을 읽고 힘을 얻고 집에 왔는데 "나를 사랑하시고 그리고 그 자신을 나를 위하여 내어주셨다"는 말씀이었다. 얼마후 존 웨슬레는 올더스게이스 거리에서,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는 것을 들었을 때 그는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경험을 하였다. 그 말씀을 들었을 때 "나는 예수안에 진리를 느꼈으며, 그리스도의 외로움, 구원을 향한; 그리고 나를 위하여 나의 죄를 위하여, 자신 조차도, 그리고 죄와 사명의 율법으로 부터 구했음을 확신하였다" 바울의 복음은 개인의 삶 가운데 지속적인 생명의 힘이 있으며, 깊고 중대한 사회적인 삶이 있다. 이것은 아마도 모임의 본질적인 2가지구성요소가 바울주의에는 있는데- 처음으로 사용되는 하나님의 칭의 은혜와 그 전진하는 성령의 사역, 믿음 생활속에서 예수그리스도와 같은 닮음- 복음전도 부흥의 특성을 잘조화 시켜야한다; 한곳에 집중하여하는데 균형을 잃은 종교는 다른 것을 생산한다.
20세기를 지나면서 칼 바르트를 생각나게 하는데, 로마서를 읽고 해석하였는데,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생명유지의 로프를 붙잡았다고 느꼈으며, 죽음의 잠에서 깰 벨종과 소음줄이게를 찾았다고 느꼈다. "로마서" 초판이 나왔을 때 1918년으로 카톨릭 신학자(K. Adam)는 말하기를 "신학계에 폭탄을 맞은것 같다"고 하였다.
그 "폭탄"의 폭발력은 바울: 그리고 앞으로의 모든 성령운동을 개관하였고 그리고 다른것도 마찬가지로, 인증된 바울의 음성을 느끼며, 바울의 중요한 서신, 외부의 소리, 그의 효력있는 해방의 메시지는 그 자신의 음성이었다. 죽어서 존재한다, 바울은 계속 말한다.
'성경 > 바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방인의 사도, 선교사 바울 (0) | 2010.02.05 |
---|---|
바울의 선교 : 종말론적 공동체에 참여하라는 초청 (0) | 2010.02.05 |
바울과 선교 (0) | 2010.02.05 |
바울의 선교원리(Paul's Missionary Thought and Work) (0) | 2010.02.05 |
"바울이 아라비아로 간 까닭은?: 갈 1:17 (0) | 2010.0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