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바울

"바울이 아라비아로 간 까닭은?: 갈 1:17

은바리라이프 2010. 2. 5. 16:09

"바울이 아라비아로 간 까닭은?:

갈 1:17을 통해 본 바울의 선지자적 자의식"

김철홍 (장로회신학대학 신약학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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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다메섹 경험 직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않고 곧 바로 아라비아로 가서 그곳에서 약 3년 동안(갈 1:18) 머물렀다.

 

1) 바울은 왜 개종 직후 다른 곳이 아닌 아라비아로 갔을까?

바울이 이사야 서의 특정 구절들을 자신의 다메섹 경험과 연결해서 해석할 때 그는 자신을 이사야서의 "주 의 종(the Servant of the Lord)"과 일치시켰다. 그렇게 함으로 그는 자신을 구약성경의 선 지자들의 전통 위에 세웠다. 필자는 바울이 자신을 사도로 이해하는 것(Paul s apostolic self-understanding) 안에는 선지자적 자의식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보고, 그 한 가지 예로 서 그의 아라비아 선교의 이면에 있는 바울의 선지자적 자의식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보려고 한다.

 

1. 이스마엘의 후손에 관한 이사야서의 예언

바울이 갈 1:15-16에서 자신의 다메섹 경험을 말할 때 그가 이것을 사 49:1, 9 혹은 렘 1:5과 같은 구약성경의 선지자 소명 네러티브를 통해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은 다수 신약학 자들이 이미 동의하고 있는 바다.

이것에 덧붙여 갈 1:24과 2:2에서도 바울은 각각 사 49:3절과 4절을 각각 염두에 두고 있다는 샌드니스(Karl O. Sandness)의 관찰도 상당히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2) 바울의 자기이해에서 이사야 49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넘 의해 강조된 바 있다.

 

3) 그의 논문에서 이미 지적되었듯이 바울이 자신의 소명을 이해하는 것은 갈 1:15-16의 내용에서 끝나지 않는다.

갈 1:17에서 바울이 다메섹 사건 직후 자신이 아라비아로 간 것은 이사야 42장과 연결되어 있다.

 

4) 신약성경의 아라비아는 당시 로마의 행정구역으로서 나바티안 왕국(Nabatean Kingdom)이 있던 곳으로 오늘 날 시나이 반도의 북동쪽 일대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그곳은 황량한 사막이라

 

5) 이사야 42:1의 예언에 따르면 "광야와 거기에 있는 성읍들과 게달 사람이 사는 마을들"과 "셀라의 주민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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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구절에 대한 연구로 Martin Hengel and Ana M. Schwemer, Paul between Damascus and Antioch: The Unknown Years

2) Karl O. Sandnes, PaulOne of the Prophets? A Contribution to the Apostle’s Self- Understanding (WUNT 43; Tubingen: Mohr, 1991), 61-62.

3) Seyon Kim, "Isaiah 42 and Paul’s Cal," in Origin of Paul’s Gospel (Grand Rapids; Cambridge: Eerdmans, 2002), 101-27.

4) Ibid., 103-4.

5) 사도행전 2:1의 “아라비아인들”은 바로 이 나바티안 왕국에 거주하고 있던 사람들이다. 나바티안 왕국에 대 한 더 자세한 정보는 Martin Hengel and Anna M. Schwemer, P aul between Damascus and Antioch: The Unknown Years, 보라. 나바티안 왕국의 역사에 관한 짧은 소개는 Anchor Bible Dictionary, vol 4, 970-73에 있는 David F. Graf의 논문 "Nabateans,"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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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행하신 “새 일”(사 42:9)이 선포되어 그들이 "노래하며 산 꼭대기에서 즐거이" 하나님 을 찬양한다. 그들이 들어야 하는 것은 "주의 종"이 하나님께 받아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다 (parakalei/te to.n lao,n mou, 사 40:1). 여기에서 “게달(rd qe)”은 창 25:13에 따르면 이스마엘의 차 남으로, 게달이란 지명은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또한 게달은 북아랍 족속(North-Arabic tribe)의 하나를 가리키기도 한다.

 

6) “셀라([l;s,)”는 바위(rock)이란 뜻으로 나바티안 왕국의 수 도인 페트라(Petra)의 고대이름이었고, 70인 역(LXX)에서 셀라는 페트라(Pe,tra)로 번역되어 있 다. 이사야 60:7에서는 게달이라는 지명이 다시 한 번 등장하는데, 셀라는 빠지고 그 대신 “느바 욧(tAyb n>)”이 나온다. 창 25:13에 따르면(대상 1:29; cf. 사 21:17; 겔 27:21), 느바욧은 이스마엘 의 장자다. 당시 아라비아에 있던 나바티안 왕국의 이름은 바로 이 느바욧의 이름에서 유래되었 으며, 요세프스는 유대고대사 1.220-22에서 이스마엘의 열 두 아들들이 유프라테스 강에서 홍 해에 이르는 온 지역을 장악하고 그곳을 "Nabatene"으로 불렀다고 증언한다. 간단히 말해 사 42:11, 60:7의 게달, 셀라, 느바욧이란 지명들은 바울 당시의 나바티안 왕국이 있던 아라비아를 가리키는 지명이었고, 이 지명들 중 게달과 느바욧은 모두 아브라함이 하갈을 통해 얻은 이스마 엘의 후손들이었다. 이사야 60장은 종말의 때에 일어날 사건인 모든 열방이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시온을 향해 순례 를 오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두움 가운데 살고 있던 "만민"(사 60:2)에게 "여호와의 영광"(사 60:1)이 시온에 나타난다. 그리하여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사 60:3) 나아온다. 이 때 "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도 나아온다. 창세기 25:1에 따르면 아브라함에게는 사라와 하갈 외에도 "그두라"라는 이름의 아내가 있었다. 미디안은 그녀 를 통해 얻은 아브라함의 아들이다. 에바는 창 25:4에 따르면 미디안의 장자다. 미디안 사람들 은 엘랏 만(the Gulf of Elath)의 주변, 그 동서의 양안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7) 미디안 사람들 은 이스마엘의 후손들(Ishmaelites)와 친화력이 많은 집단이었으며, 창 37:28에서 미디안 사람 들과 이스마엘 사람들은 같은 그룹으로 취급되고 있다. 그러므로 사 60:3은 종말의 때에 이스마 엘 후손들이 혹은 그들과 매우 가까운 이웃인 미디안 사람들이 시온으로 순례 올 것을 예언한 것이다. 이사야 60:7은 "게달의 양 무리"와 "느바욧의 숫양"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와서 그 "제단에 올라 기꺼이 받음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여전히 이사야의 예언은 이스마엘 후손들에게 관심을 집중 하고 있다. 이사야 60:6은 개역성경에서는 히브리어 성경을 기초하여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70인역 에서는 “그들이 주님의 구원을 복음으로 선포할 것이다 (to. swth,rion kuri,ou euvaggeliou/ntai)”로 되어 있다는 점에도 우리는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사야 60:9에서는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시온으로 나아와야 할 특정한 사람들에 대해 말한다. 그들은 곧 "다시스"와 "섬들"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다. 이사야 60장의 예언이 처음에는 이스마엘의 후 손들에게 집중하다가 당시 이방인들이 거주하던 지역으로 그 관심을 돌리는 것도 매우 특기할 만한 일이다. 그렇다면 바울은 이러한 이사야서의 예언을 어떻게 읽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

----------------------------------------------------------------------------------------------------------------------------6) K. Elliger, Deuterojesaja, vol. 1: Jesaja 40,145,7 (BKAT 1/1; Neukirchen-Vluyn; Neukirchener, 1978), 246; cited in Seyoon Kim, Paul and the New Perspective: Second Thoughts on the Origin of Paul’s Gospel (Grand Rapids; Cambridge: Eerdmans, 2002), 103. 7) 출애굽기 3:1에 보면 모세의 장인 이드로도 시내산 근처에서 살고 있었다. John N. Oswalt, The Book of Isaiah: Chapters 4066 (NICOT; Grand Rapids/Cambridge: Eerdmans, 1998), 541.

 

 

- 3 -

은 개종 경험 이전의 바울은 사 60:7의 "게달의 양 무리"와 "느바욧의 숫양"이 언젠가는 예루살 렘의 성전에서 제물로 바쳐질 것이라는 정도의 이해를 넘어서지 못했을 것이란 점이다. 그렇다 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를 받은 바울은 그 다메섹 사건 이후 에 위의 구절들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2. 이사야 66장의 빛 안에서 다메섹 계시를 이해하는 바울 로마서 15:16에서 바울은 그가 자신을 어떤 종류의 사도로 보았는지 그의 자의식의 일부를 노 출한다. 이사야 66:20-21에 나타난 열방이 종말의 때에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온다는 예언이 롬 15:16절의 중요한 구약성경 배경이 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8) 로마서 15:16에서 바울은 자 신을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된 사람이라고 말한다. 바울이 사도라는 호칭 대신 "일꾼(leitourgo,j)"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은 어쩌면 그리 심각한 의미 없이 "사역자"라 는 뜻이라고 간주할 수도 있다. 하지만 롬 15:16에서 바울이 그 말과 함께 i`erourge,w(제사장으로 섬기다), prosfora,(바치는 행위), euvpro,sdektoj(제물로 받아들일만 함), a`gia,zw(하나님을 위해 따 로 구분하다) 등과 같이 제사의 맥락에서 사용되는 언어들을 집중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놓 고 미루어볼 때, 바울이 평범한 뜻으로 "일꾼(leitourgo,j)"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 같지는 않다. 즉 바울은 교회를 새성전으로 보고, 자신을 이방인들을 위한 그리스도 예수의 제사장으로 생각 하고 있는 그의 자의식이 드러난 것으로 보아 큰 무리가 없는 것이다.

 

9) 또한 바울은 롬 15:15에 서 자신의 개종사건을 언급하는 표현인 " dia. th.n ca,rin th.n doqei/sa,n moi u`po. tou/ qeou/" (하나님 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를 사용함으로써, 다메섹 사건과 제사장적 자의식을 연결시키 고 있는데 이것은 곧 그가 사 66:20-21의 예언에 따라 자신을 제사장으로 보게 된 계기가 다름 아닌 다메섹 사건이고, 제사장적 자의식은 그 사건에서 비롯된 것임을 암시한다 (cf. 롬 12:3; 15:15; 고전 3:10; 갈 2:9; 엡 3:2, 7,

(하략)자세한건 첨부파일 참조

바울이아라비아로간이유.pdf

 

바울이아라비아로간이유.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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