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바울

바울서신의 심리주의비평적 접근

은바리라이프 2010. 2. 5. 14:23

바울서신의 심리주의비평적 접근

 


                                                                                                                                     박 혁 순

Ⅰ. 들어가며

대부분 기독교인들이 바울에게 붙이는 수사적 칭송은 크게 두 가지가 된다. 대개의 경우 그를 '사도'로 일컫고 존경하는가하면 일찍이 카톨릭 교회에서는 성인·성자의 반열에 올려놓고 숭앙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각들은 바로 바울이 의당 갖고 있을 만한 생물학적 욕망과 인간적 본성, 또는 속됨과 나약함 따위를 짐짓 거세하고 일컫는 것들이다. 그 동안 줄곧 기독교의 실질적 창시자, 전무후무한 열정적 전도자, 최초의 신학자로서의 업적 중심의 평가만 지대할 뿐이다. 이제는 바울이 이 땅에서 헌신적으로 활동하고 간지 벌써 두 밀레니엄이 다 되어가지만 상대적으로 그에 대한 인간학적 접근은 부족하기만 하다.

바울바울서신, 그리고 바울신학에 대한 보다 세밀한 접근과 다각적 연구를 추구한다면 우리는 늘 다양하면서도 도약적인 비평방법이 적용되지 않으면 안됨을 느끼게 된다. 근대에 들어 자유주의 신학이 물꼬를 터준 다음부터야 성서 속의 모든 사건이나 장소, 인물 등에 대해 보다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설명을 요구하게 되었지만 아직은 많은 방법론들이 신학 내적 자족성을 채울 뿐이다.

이에 우리는 여기서 바울에 관한 한가지 준(准)-자연과학적 방법인 심리주의비평 방식을 채택한다. 주지하듯이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정신분석학이 나타난 이후 대부분의 현대 비평은 심리학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1) 이 방식의 이점은 내면세계와 무의식, 복합심리(complex) 등을 분석함으로써 글쓴이와 글의 관계, 창작심리 등을 해명할 수 있고 의식세계의 잠재작용의 원인을 무의식에서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글쓴이의 고차원적인 이데올로기, 사상, 윤리의식까지 질서있게 종합하고 규명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바울서신의 심리주의적 접근은 그의 삶의 태도와 성격, 더 나아가서 신학·사상의 형성과정과 이방전도의 내적 동기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시사해줄 수 있다.

바울에 관한 심리주의비평이 왜 요구되며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점은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

첫째, 우리가 바울 서신을 비평함에 있어서 심리주의적 방법론을 채택할 수 있는 요구와 가능성은 다분히 바울서신 자체가 암시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즉 바울은 친필 서신들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육체의 가시"(고후12:7), "육체의 약함"(갈4:13)으로 인한 육체적 결함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롬7:18,24)하고 술회한 바와 같이,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내면적 갈등 내지 자아의 분열까지 경험하고 있는 자였음을 예의 주시 하면 정신적·심리적 문제를 지니고 사는 '인간 바울'을 새삼 발견케 된다. 단적인 예로 "임박한 환란"(고전7:26)과 "때가 단축되었다"(고전7:29)는 에견이 빗나간 사실만 상기해봐도 예언자적 위상에 흠이 있었다고도 단언할 수 있다. 따라서 그가 결코 반신적(半神的) 인물이나 성인(聖人)일 수만은 없고 우리와 똑 같은 성정(性情)을 갖고 살던 범인(凡人)임을 전제할 때 심리적·정신분석적 접근이 가능한 것이다.

둘째로 이 작업이 보다 용이한 이유는, 바울이 성서상의 그 어느 인물보다 자작·친필 서신을 풍성하게 남겨 직접적인 심리분석의 여지를 준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은 전승 자료를 토대로 가필·편집·왜곡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여타의 텍스트보다 뛰어난 요건이다.) 더구나 친필 서신들 가운데는 신변잡기적 진술이나 고백, 탄식, 원망, 희구, 저주, 환상 등의 정신분석학적 자료와 그 편린들이 풍부하기 때문에 다양한 심리기제(心理機制)를 발견하여 논할 수 있다.

셋째, 비교적 신빙성이 있는, 당대의 증언 및 기록이 그의 행동 및 심리적·사상적 패턴을 일관적으로 증언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데, 사도행전에서 보여지고 있는 가혹한 박해자인 바울이 기독교인 체포를 위해 변방까지 쫓아간 일이나, 바나바와 심하게 다툰 사건, 의회와 고관들 앞에서 변론한 일 등은 그의 서신서에서와 동일하게 그의 적극적이며 공격적 성격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바울의 제2서신서류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제 아래에서는 바울의 성격, 욕망, 자의식, 그리고 내외적 갈등에 직면하여 새롭게 변모했던 일련의 심리 역정을 추적함과 동시에 그것들이 바울의 독특한 신학과 사상, 선교관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 논하고자 한다.

 

Ⅱ. 바울의 심리변화의 추이와 사상적 변모

1. 회심이전 : 거대한 자기애와 자아이상의 소유자

여러 서신서와 사도행전이 시사하듯이 바울의 태생과 자라난 환경은 매우 특별하고 양호하다. 사도행전 23:6; 26:5, 빌립보서 3:5-6에 기록된 자기증거에 의하면 바울은 바리새인 가문에서 났다. 그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에 속했으며, 그의 집단은 순수한 유대교 집단이었다. 그는 바리새파 중에서도 엄격한 파에 속했으며, 예루살렘에서 율법의 대가인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교육을 받았다. (가말리엘은 힐렐의 온건한 교리를 대표하는 베냐민 출신 랍비로서, 바리새주의의 거두였고 당시 유대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인물이었다.) 또한 바울은 번화한 헬레니즘 도시인 길리기아의 다소 출신답게 헬라문화적 소양까지 지니고 있었으며 로마의 시민권도 소유한 상류계급이었던 것이다. 다시말해 출신계급과 학문, 교양, 지위, 국제사회적 감각에 있어서 결코 뒤질 것 없는 유대계의 유망주였던 것이다.

비록 회심사건 뒤 훗날에 진술하는 것이지만, 한때나마 자신이 얼마나 특별하고 존귀한 지위에 있던 사람이었는지 비슷한 어법으로 종종 언급한 바 있다.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히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빌3:5,6)

"…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롬11:1)

"저희가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아브라함의 씨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고후11:22-23)

이상을 종합해 보면 바울은 근본적으로 강한 '자기애(narcissism)'의 소유자였던 것이 분명하다. 회심후 겸허하게 사는 자세를 강조하기 위한 역설적 수사일 수도 있지만, 자신을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고 고백하는 일은 누구 앞에서나 자신을 평가할 때 결코 열등하지 않음을 지속적으로 함의하고 있다. 훗날 스스로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다(고전4:4)거나 자기를 본받으라고 하는 권유(고전4:16)도 (물론 다른 각도로 이해될 수 있으나) 바울의 나르시시즘적 진술의 연속선상에서 파악되며, 자신의 약함과 핍박받는 생애를 열거하면서 "약한 것을 자랑"(고후11:30)하는 태도는 성직자나 정신적 지도자로서 더할나위 없는 '자기 PR'인 것이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전파사역이 무르익어갈 때 쓰게되는 거의 모든 서신서의 서두마다 자신의 '사도'됨을 반복적으로 선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뒤에 더 언급할테지만 회심이후에도 긍정적이고 가치있는 자기평가·자아의식이 이방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자기를 '사도'로 여겨 줄 것으로 기대하게 만든 것이다.

회심 이전에 문제가 되었던 기제는 이렇게 과중한 자기평가와 함께 왕성한 자기실현의 욕구와 '행위주도적 동기'2)를 지니고 살아가는데 있었다. 랍비의 문하생으로서 정적(靜的)인 삶을 살 수 있었던 그였지만 종교적 신념에 의해 기독교인에 대해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공문을 자청하면서까지(행9:1,2) 교회를 핍박·잔해하고(갈1:13), 사람을 죽이거나 결박하여 옥에 넘기는 일(행8:3; 22:4)을 맡아 행했다. 일을 수행하고 완수하는 관계 속에서 바울은 동류(同類)에 의해 칭찬과 인정을 통한 '자아이상(ego-ideal)'의 지속적 충족이나 '정상경험(頂上經驗, peak experience)'을 맛보며 끊임없는 자기애의 심연으로 가라앉았던 것이다.

그런데 정체된 삶을 살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일을 벌리는 그의 행위주도적 동기는 회심 이후에도 줄곧 지속된다. 예를 들면 전도사역 가운데서도 스스로 '장막(천막)'을 만드는 일을 지속하면서 생계를 잇거나(행18:3) 될 수 있는 한 타인을 의존하지 않으려 했던 자세(cf. 행20:33-35, 살전2:9)가 바로 그것이다. 여하튼 이러한 극렬한 적극성과 도전성은 이후 전도사역에 넘쳐나는 자양분이 되기도 했던 것은 사실이다.

2. 회심직후부터 유예기간동안 : 사상적 성장기

바울의 일대기 가운데 합리적으로 설명하기에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사도행전 9장에서 묘사하는 다메섹의 신이체험(神異體驗)이다. 주지하듯이 이 사건을 통해 바울은 골수 바리새인에서 기독교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게 된다. 친히 그리스도를 통한 직접적 계시를 받았고 대화까지 나누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안질을 얻게되어 물리적·육체적 증표 또한 지니게되었다. 그러나 이 체험이 바울의 정신적·심리적 기제에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 만족할만한 해답을 내리기가 힘들다. 이는 사도행전이, 하늘에서 빛이 둘러 비추었고(행9:3) 동행하던 사람들도 역시 '소리'를 들었다(행9:7)고 증언하기 때문이 아니라, 일시적 '환각'에 의해 교양있고 주지적(主知的)인 한 청년이 자극을 받아 생애에 질적인 변화가 초래되었다고 설명하기에는 너무나도 성급하기 때문이다.

굳이 설명하자면 사막 행군 중 작렬하는 태양으로 말미암아 탈진하는 가운데 수반되는 환각증세, 혹은 그가 지녔을지 모를 간질병 또는 긴장성 분열증에 기인하는 '자동현상'3)의 탓으로 볼 수는 있겠다.

여기서 한가지 특기할만한 사실은 바울이 이 회심의 과정에서 모종의 '카타르시스(catharsis)'4)를 통한 과거의 청산과 정서적 정화(淨化) 및 갱생을 맛보았다는 사실이다. 사도행전 9장이나 서신서를 통한 자신의 회고에서도 증언되지만, 바울은 이 경이적인 사건을 통해 과거의 첨예한 내면적 질서가 일순간 와해되고 배설되는 '해제반응(解除反應, abreation)'5)경험을 한 것이다. 더 나아가 무의식 가운데 깊숙이 자리잡고있던 갈등이나 회한(스데반 처형 등에서 느꼈던 양가적 반응), 후회, 동정 따위가 '초자아(super-ego)'6)의 체계로 편입되었다. 여하튼 바울도 스스로 '배변'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빌3:8)이라고 술회한 것을 보면 그가 체험한 새로운 감회가 얼마나 신선한 것이었나 짐작할 수 있다. 현대에도 회심이나 회개시 전율, 울음, 함성, 방언 등을 수반하며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것이 기정 사실이라면 바울의 다메섹 사건 또한 그러했을 것이라는 통상적 추측 또한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음으로 주목할만한 것은 다메섹 사건 이후에 바울에게 형성된 새로운 심리 기제들이다.

프로이트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우선 '리비도(libido)'7)의 자기애적 편중이 다른 대상들에 옮겨져 이후에는 많은 부분이 '대상애(objective-love)'로 옮겨갔음을 주목할 수 있다. 그 대상은 전인격적 만남과 계시를 베푸는 그리스도이며 또한 타자(他者)들이었다.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빌1:20-2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하라"(고전10:33)

또한 그리스도와 사도, 순교자에 대한 앙모가 '동일시 기제(identification mechanism)'로 형성된다. 사실 이것은 성격형성의 단계에 놓인 유년·청소년기에 주로 나타나는 것이지만, 바울의 경우 과거의 자기애적 동기충촉의 에너지를 억압할 수 있었어도 신선하고 경이로운 대상을 향한 끊임없는 동일시의 심리적 욕구에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8) 어찌보면 그가 감당했던 수많은 핍박과 고난, 위험, 살해위협 가운데에서도 초인적으로 의연할 수 있었던 것은 수난의 모든 국면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본받고자' 하는 동일시 기제가 가장 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cf. 행20:24, 롬8:35-37, 고후5:13-14; 12:8-10 등).

그런데 삶의 태도 면에서 그리스도적인 조절을 지속했지만, 위상에 있어서는 사도적 지위에 끊임없는 욕망을 두었던 것이다. 비록 '사도'라는 직분이 회심 직후부터 얻어진 동일시 대상은 아니었지만 그가 전도여행의 다양한 결실을 목도하면서부터 현실화되었기에 훗날 줄기차게 자신의 '사도됨'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부연하자면 최초 서신인 데살로니가전서에서는 '사도'라는 칭호가 대외적 타이틀로서 발신자 이름 뒤에 붙지 않지만, 그 후부터 대부분의 친필서신(갈1:1, 고전1:1, 고후1:1, 롬1:1)에는 서두에 자신의 사도직을 공표함과 더불어 본문에서도 그 위상을 끊임없이 환기시키곤 하는 것이다(cf. 고전9:1-2;15:17,19, 고후11:5; 12:11). 비록 사도행전 1:21에 의거하여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앞에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들"의 범주에 들지 않고, 바울 스스로 전통적으로 통용되던 12명의 상징적 응집체로서의 사도와 일반적인 의미의 사도를 구분하여 사용했다지만9), 사도직에 대한 동경심은 능력과 자격에 있어서의 긍정적인 자기신뢰, 출중한 지도력(leadership), 행동·성취본위의 동기 따위가 필연적으로 낳은 귀결이라 할 수 있겠다.

3. 전파사역의 이전단계 : 주변자로의 전락과 카인 콤플렉스, 그리고 그것의 극복

회심 직후의 바울은 적어도 지난날의 바리새파 '운동가(activist)' 이상 활약할 수 있는 에너지에 차있던 터였다. 즉 그의 리비도적 열정은 많은 부분 새로운 이상(理想)과 가치에 '대치' 또는 '전위(轉位, acement)'10)되어 다른 활로를 모색하던 주요한 고비에 처해있던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그에게 예상치 못한 난관을 가져다주었다.

그 첫째 요인은 팔레스타인 유대계 기독교인의 원한과 경계심이 잔존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일찍이 기독교도를 체포, 연행, 구금, 살해해왔던 바울이 회심 후에도 쉽사리 용납될 리는 만무하였다. 우리 현대사의 한 장(章)에서 볼 수 있는 한 지도자처럼 똑같이 용서받기 힘든 인물이 바로 '박해자 사울(바울)'이었던 것이다. 그를 가장 먼저 조우한 아나니아의 두려움(행9:13-14)이나 미심쩍어하며 경계하는 유대 기독교인들의 반응(행9:21), 제자들의 외면(행9:26) 등의 정황을 보면 이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둘째 요인으로는, "기둥 같이 여겨지는"(갈2:9)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야고보, 게바(베드로), 요한 등의 사도들 틈에서 자신의 사회적 입지가 약화됨과 함께 가시적 위업을 속개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심리적 '업압(repression)'11)이 강요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주지하듯 예루살렘교회를 중심으로 교회의 수장(首長)은 예수의 동생 야고보가 맡고 있었고 할례자 전도 사역에 박차를 가하던 베드로가 여전히 팔레스타인 지구에서 활약할 뿐만 아니라 빌립을 비롯한 집사 등의 사역자들도 활동 중이었던 터였다. 이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였던 과거의 득의에 찬 '사울'은 사실상 사장되었던 것이다.

더욱이 그는 새로운 동류집단(同類集團)으로의 안전한 '유군(留群, affiliation)'12)에 실패를 경험해야 했다. 기대되었던 집단에의 만족할만한 안착이 거절된 바울은 뚜렷한 '자기상(self-image)'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일개의 '주변자'로 전락하게 되고 만다. 독신으로서 살아가는 인물이 이러한 '외상적 경험(traumatic experience)'을 받게되면 그 스트레스가 자학, 증오, 공격적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겠지만, 바울의 경우 그가 지닌 뛰어난 '방어기제(defence mechanism)'로 말미암아 적절한 대처를 이루게 된다. 바로 '억압(repression)'과 '승화(sublimation)'13)가 그것이다. 다시말해 바울 내면의 방어기제는 과거의 죄의식이나 수치심과 후회 따위를 억눌러 최소한 의식 표면에서 사라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작용했으며 기독교인에 대한 실망과 분노, 사도와 예루살렘 교회의 직분자들을 향한 열등감, 경쟁심리, 공격적 충동 등이 윤리적·사회적 의의를 가지는 고차원적 가치로 지향할 수 있도록 작용했던 것이다. 그래서 내면의 부정적 요소들이 건강한 의욕, 사명감 등으로 승화되어 전도사역을 예비할 수 있게 하였다.

또 한편으로 이로써 우리는 바울이 회심한 얼마 뒤에 아라비아로 가서 3년여간 머물다 온 사실(갈1:7)을 좀더 세부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바울이 3년이라는 긴 시간을 연고 없는 이방 땅에서 지냈으나 그곳에서 무엇을 했는지 그 자신도 증언하고 있지 않아 많은 추측을 낳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 기간이야말로 내재적 충동과 갈등, 죄의식과 후회 등이 잦아지는 데에는 충분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으며, 누구든 그의 실제 유배 목적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격동과 회한의 시간을 의식적 차원에서 소멸시킬 기간을 가졌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특기할만한 것은 이후로 바울에게 내재된 무의식상의 '콤플렉스(complex)'가 이때 형성되어 줄곧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바울의 콤플렉스는 프로이트가 주장한 바 있는 '카인 콤플렉스(Cain complex, 또는 가족(家族)콤플렉스)'와 흡사하다.14) 다시말해 동질성을 갖춘 한 사회 집단 내 특정 구성원에 의한 경쟁심, 열등의식, 위기의식 등의 무의식적 감정을 '카인 콤플렉스'라고 명명하는데, 바울의 경우 주로 예루살렘 사도들에게 느꼈던 것 같다. 실제로 '자아이상(self-image)'의 충족을 즐기고 행동주의적·성취지향적 삶을 살아온 바울이 갖는 이러한 콤플렉스는 대단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회심 후에 '사도들'은 동일시 대상이었지만, 훗날 바울이 전도여행으로 엄청난 역량을 발휘할 즈음에는 이미 스스로 '사도'로 자처할 수 있는 입지까지 올랐기 때문에 그 뒤로부터 그들에 대한 시각과 태도는 사뭇 달랐다. 적확(的確)한 의미로서의 '사도'가 아니라는 열등감과 과거의 문제로 인한 자격지심(自激之心)이 때때로 '신경증(神經症)'적인 반응을 창출하기도 했던 것이다.

예를 들자면, 할거주의적 발상으로 "베드로는 할례자의 사도, 나는 이방인의 사도"(갈2:8 cf.롬11:13;15:16)식으로 차별화한다든지, 이왕에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으므로 의도적으로 이방인을 옹호하면서도(롬9:25;10:12;11:7-14) 자기민족에 대해 냉소적 태도(롬11:15,20)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베드로의 외식적 행위를 비난(갈2:11-14)하여 "예루살렘 리더십과 정면대결도 불사"15)하기도 했다. 결국 이제부터는 상황에 따라 그들에게 양가감정 내지 '양가치(兩價値, ambivalence)'적 태도를 보이게 된다.

사도들은 바울의 무의식 속에서 줄곧 위압적 존재이자 경쟁적 위치에 있는 대상이었다. 그들은 바울의 정서적 불안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실상 교회-정치적 라이벌이었고 사상적·신학적 견지를 달리하는 보수주의자들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만한 사실은, 예루살렘에서는 바울이 주변자적 입지를 차지할 뿐이라는 자각과 함께 '카인 콤플렉스'의 간섭으로 말미암아 사역의 선택에 영향을 받지 않았냐 하는 점이다. 그래서 주된 활동무대로서 이방땅을 택하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가능케 된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자아이상'의 충족을 즐기고 성취지향적 태도로 일관되게 살아가면서 당시 기독교계의 실질적 위업을 이루는 실력자 바울을 염두하면서, 한편으로는 경쟁심과 비교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던 그에게서 개량주의적(cf. 롬14:5-23)·수정주의적(cf. 고전9:20-23) 동기를 조심스럽게 상정해본다. 말하자면 그의 심리기제의 특성상, 이방땅을 전전하며 복음을 전도하는 가운데 좀더 폭발적인 확산을 유도하고 원활하게 초심자를 입교시키는 방편을 심각하게 강구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좀더 예루살렘 교회를 겨냥한 전시효과(?)를 증진시키기 위해, 더욱 많은 이방신자를 확보하려는 '환경설정'의 차원에서 율법적 제약과 형식적 의례·의식들을 끊고자 하지 않았나 하는 가정이다(cf. 롬3:30-4:4, 고전7:18-19).

할례를 비롯한 대개의 율법적 요구는 헬라문명권의 이방인에게는 거추장스러운 것이었고, 복음에 병행하여 율법의식과 개념을 그들에게 심어준다는 작업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방지역에서 몸소 부딪치며 자연스럽게 착안된 사상이 바로,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울수록 복음의 전파는 용이하며 이방인은 빠르게 호응한다는 것이었다. (탈율법적인 태도를 보이는 인물들이 주로 정력적인 전도자였음을 상기해보자.)

사실 신약성서 가운데 율법에 대해 가장 혁신적인 이해를 하고 있는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바울이 된다. 복음서가 전하는 것 가운데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마5:17)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눅16:17)"는 예수의 말씀이 있는가하면, 사도행전 이후로 묘사되는 사도들마저도 여전히 율법적 생활을 준수하고 있음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몇가지 예를 들면, 베드로와 요한은 유대인의 기도시간에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는 성전 중심적 생활을 유지했고(행3:1),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 야고보의 신학적 유산을 함의하고 있는 야고보서에서도 여전히 율법에 유착된 사상을 시사하고 있다.

특히 율법에 대한 입장에 따른 사도들의 진보·보수성이 개별적으로 잘 나타나는 곳이 바로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회의 장면인데, 여기서 바울과 바나바는 물론 진보적 태도를 보이고, 베드로 또한 진보적 태도를 보인다. 야고보는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15:5)에 비해 할례와 율법준수를 고집하고 있지 않지만 역시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는 율법적 조건을 남긴다.16) 이를 바탕으로 도식화시킨다면(지나친 단순화가 될지 모르나)
① 바리새파계 기독교인이 우파에 속하고
② 야고보는 중도-우파,
③ 베드로는 (사도행전3:1과 갈라디아서2:11-14의 사건을 고려하면) 중도-좌파,
바울과 바나바는 물론 좌파쯤에 위치할 것이다.

 

 

4. 본격적 전파사역 기간 : 뛰어난 방어기제와 성숙한 승화력

전도여행과 함께 많은 교회가 세워지고 지중해 연안의 다양한 민족들로 복음이 전파되는 가운데에서도 바울은 항상 많은 적들의 공격을 받는다. 물론 이방의 정치·군사적 세력이나 종교세력이 바울을 핍박했지만 사실상 더욱 난감하고 치열한 적들은 내부에 있는 적이었다. 분란을 일으키고, 바울과 교회를 이간하고, 이단적 교의를 퍼뜨리고, 정치세력을 키우기 위해 바울을 모함하는 등 갖가지 어려움을 일으키는 인물들이었다.

이러한 적들을 맞서는 바울의 정신력 또한 교묘하고 능숙했다. 우선 자신의 신학적 관점에 어긋나게 교회를 운용하는 집단과 인물에게 바울은 가열차고 집중적인 공격포화를 열었다. "내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것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혹독한 선포를 하거나(갈1:8-9),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 볼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다"(고전4:19)고 기약하거나 합당한 이유를 들어 설명하기도 하였다(롬16:17-18). 그러는 가운데서 갖은 수사법을 동원해 공격적 언사를 퍼붓거나, 자신을 모함하고 경멸하는 부류에게는 자신을 일단 낮추었다가 본질적으로 높이는 '억양법'이나 내포와 외연에 모순적인 '역설(逆說)'의 수사를 즐겨 사용했다(고전7:22;10:19-22,고후11:5). 그리고 항상 변명거리를 미리 준비해둔 자처럼 정연하고 조리있는 해명을 시도했다(고전9:3-15,고후11:16-33). 결국 이러한 모습도 바울에게 내재된 뛰어난 방어기제(defence mechanism)의 연장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헬라문화적 교양과 스토익 철학적 개념, 그리고 수사기법에 능숙한17) 바울이기에 이방교회의 분파자들을 다루는 솜씨에 있어서는 모자람이 없던 터였다.

이 기간동안 바울에게 있어서 주목할만큼 원할하고 지속적였던 심리적 기제는, 바로 대적자에 대한 증오나 반발심, 공격 욕구 등으로 표출할만한 목표행동이 사회적으로 환영받을 형태로 바뀌는 '승화(sublimation)'였다. 상술했듯이 이방 대적자나 교회내 대적자뿐아니라 심지어 불편한 관계가 있는 사도들, 그리고 예루살렘 교인들에 대한 부정적 정서가 내면에서 교묘하게 왜곡·굴절되거나 '반동형성(reaction formation)'18)이 이루어짐과 함께 신앙적 초자아(super ego)의 검열하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터져나오는 것이다. 이로써 실상 그렇게 살고 있지도 않으면서 권세자에 대한 굴복을 주장하거나(롬13:1-7), 예루살렘 교회 성도를 위한 기금을 조성하거나(고후8:16-24), 때로 "지극히 작은사도"로 자신을 낮추기도하고(고전15:19), 자신에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않는(고전9:18) 삶을 살 수 있던 것이다.

Ⅲ. 나가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바울은 회심후 '주변자'으로 출발하여 기독교의 중심적 인물로 서는데 성공한, 뛰어난 정신력의 소유자이자 우수한 심리 기제가 갖추어진 인격체라고 평할 수 있다. 천성적으로 거대한 리비도적 에너지를 갖추고 살아온 그가 여러차례의 현실적 장애를 넘어서는 심리적 변모와 적응력은 이미 예상될 수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여기서 심리변화의 추이와 여기에 따른 사상적 변모를 요약해본다면 다음과 같다. 바울의 넘쳐나는 정신적 에너지의 충동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항상 분출될 대상을 끊임없이 모색하는 과정속에 있어왔다. 이는 회심사건 후에 팔레스타인의 주변적·제한적 입지의 정체를 깨고 이방선교지로의 활로를 찾아 발현되었다. 그리고 이방지 사역에 전력을 다하던 중 선교활동의 발목을 잡고있는 율법과 전통으로부터 이탈의 요구가 제기되었고 이로써 할례나 득의(得義) 등에 관련된 과감한 율법 이해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정서적으로는 이방교회의 편에 서게되고 이방 전파의 논리가 앞서게 된 것이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심리적 기제와 요건을 갖추고도 초인적인 위업을 성취한 바울의 일대기를 고찰할 때 심리주의 방법의 한계가 노출되기도 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심리주의 비평 방식으로 바울을 논한 현시점에서 남겨질 수 있는 몇가지 문제를 제기하며 글을 마치려 한다.

첫째, 심리주의 비평양식으로써 성령체험 이후 바울의 영성에 대한 논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바울의 헌신적인 전도여행과 불굴의 역정들은, 욕망과 그 해소라는 기본적 심리 메카니즘의 규준으로 재단하기에는 분에 넘치는 범주인 것이다. 또한 반복적으로 실험 내지 경험되는 정신분석적 요건들로 바울 정신·심리의 총체를 광범위하게 이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종교인으로서의 바울이 깊은 영성을 지닌 완숙한 정신체라고 가정한다면 그 영성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이 먼저 요구되는 것이다.

둘째, 신비체험에 따른 전인격적 변화·변모에 관한 설명이 어렵다. 실제로 '억압'과 '치환', '승화' 등의 방어적 기제를 통하여 생물학적 욕구의 수준이 좀더 고상한 윤리성이나 사회의식을 가지고 성숙할 수는 있지만, 이러한 일들은 의식의 협소한 영역에서 부분적으로 일어날 뿐이지 생애의 전체를 지배하는 결정적인 요건으로 작용할 수 없다. 따라서 신비체험을 환각이나 환청, 환상이라고 밖에 규정할 수 밖에 없는 심리주의적 입장에서 이것을 분석하는 작업은 자가당착적 모순에 봉착하게 된다.

셋째, 바울의 신앙과 신학, 그리고 이데올로기성 담론에 만족할만한 설명을 더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예컨데 고도의 형이상학적 개념, 철학, 문학의 오묘함이 어떻게 생물학적 심리와 무의식에서부터 오는가 하는, 납득할 만한 경로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    註    ■

1) 김시태 외1 편역, 『문예비평론』, 문학과 비평사, 1988, 362면.
2) 서창원, 『현대심리학」, 반도출판사, 1995, 108면.
  Woodworth의 '행동주도설(behavior primacy theory)'은 생명체가 갖는 자기실현의 욕구에서, 행동 자체가 인간으로 하여금 더욱 왕성히 활동하게 하는 추진력을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
3) 외부의 간섭과 완전히 유리되는 정신현상으로서 환상, 환청을 동반하기도 한다.
4) 본래 그리스어로 淨化·배설의 뜻으로, 비극 같은 특별한 외적 경험에 의한 감정의 정화작용을 일컬었으나 지금은 정신의학상 한 종류의 정신요법의 의미로도 쓰인다.
5) 카타르시스에 의하여 생기는 치료적 현상, 과거의 불쾌한 심적 타격에 기인되어 무의식적으로 억압된 기억이나 감정을 의식화시켜 재생시킴으로써 마음의 긴장이 풀리는 현상.
6) 초자아의 일부는 사회에서 지켜지거나 요구하고 있는 윤리이나 터부(taboo)로 구성되고 또 일부틑 제도적으로 받은 도덕교육을 토대로 형성된 윤리관념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이것의 기능은 생물학적 욕구나 이기적 충족의지를 비판하여 사회규범에 맞는 생활을 해나가게 하는데 있다.
7) Sigmunt Freud, 김성태 역, 『정신분석입문』, 삼성출판사, 1982, 22-35면.
  프로이트는 이른바 생의 본능인 '리비도(libido)'라는 에로스적 에너지의 개념을 들어 정신적 역학관계를 설명한다. 즉 한 개인 속에 저장된 이 리비도의 분량은 일정한 양으로 한정되어 있고 개인차가 있으며 무한정하게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어느 한 가지에 이 에너지가 편중될 수 있고, 한쪽으로 소모시키면 다른 쪽으로 유출시키려 해도 저장량이 없으므로 결함이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당시 유행하던 헬름홀쯔의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영향을 받은 논리였다.
8) 사실 동일시의 기제는 성인에게도 지속된다. 개인사업가는 대기업의 총수를, 신학생들이 저명한 성직자를 동경의 대상으로 삼고 자아를 조절하는 식으로 바울 또한 새로운 세계에 진입한 이후 특별히 그리스도의 삶과 사도들의 위상에 눈을 떴던 것이다.
9) 차정식, 『미지의 신을 위한 변명』, 대한기독교서회, 1998, 48면. 참고
10) displacement란 만족되지 않은 충동 에너지를 다른 대상으로 돌림으로써 긴장을 완화시키는 기제다. 원동력인 에너지나 목표는 속해서 그대로 남아 있는데, 충족시킬 대상이 마땅치 못하고 막혀있을 때 대상을 바꾸게 된다. 서창원, 『현대심리학」, 반도출판사, 1995, 275면. 참고
11) 망각의 한 형태로서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감정과 경험에 대한 의식을 봉쇄하는 가장 흔한 방어기제. 그것들을 의식수준 아래로 밀어내는 반응이며 대체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서창원, 위의 책, 276면.
12) 인간의 사회적 행동 가운데 군집성의 문제, 즉 '사람이 왜 집단에 소속하길 좋아하는가' 또는 '왜 모이는 가'에 대한 설명을 위한 심리학적 용어다. 말하자면 유군은 안전과 불안의 해소, 정서적 교류 등을 위해 무의식적으로 집단에 소속하려는 성질이다.  
13) 저속한 것을 억제하고 축적되어 있는 에너지를 사회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의의 있는 방향으로 전이시켜나가 대리대상을 찾아서 충족시키는 과정. 프로이트, 위의 책, 28면.
14) Sigmund Freud, 『정신분석학 입문』, 범우사, 1992, 343면.
15) 차정식, 위의 책, 49면.
16) 야고보가 요구하는 조건에 비추면, 우리 한국 기독교인은 대개 자격미달이다. 순대와 목매어 죽인 개고기를 즐기므로. 따라서 조건없는 바울과 베드로를 좋아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17) 박수암, 『신약연구개론』, 장로회출판사, 1994. 225-226면 참조.
18) 자기가 느끼고 바라는 것과는 정반대로 감정을 표현하고 행동하는 것이 반동형성이다. 대체로 반동형성은 자기의 욕구나 감정이 받아들일 수 없는 죄의식에 싸일 때 나타나게되는 반응양식이다

내용출처 : http://www.antichr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