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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은바리라이프 2010. 2. 8. 20:48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나의 관심정보

2010/02/08 14:59

 
 
 

 야고보는 '발꿈치를 잡음' 또는 '추종자'라는 뜻의 이름이다. 이 이름은 일찍이 야곱의 이름에서 비롯된 이름인데 유대인들의 이름에는 흔하게 쓰이던 이름이다.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야고보만도 4명 정도 된다.

 그들 중에 이 야고보는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서 난 예수의 친동생으로서의 야고보인 것이다(마 13:55; 막 6:3).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야고보서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야고보는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는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예수님을 경건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반항도 해보지 못하고 십자가에서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자 평소에 예수님께 잘못 했던 것이 생각나서 식음을 전폐하고 말하기를 "형님이 평소에 말씀하시기를 장사한지 3일만에 살아나실 것이라고 하셨는데 다시 살아나신 것을 보기 전에는 나도 영원히 음식을 입에 대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야고보에게 개인적으로 친히 사신 모습을 나타내셨다고 한다.

 그리고는 "형제여, 이제는 내가 이렇게 살아났으니 너의 떡을 먹으라"하고 말씀하셨다고 전해진다.

 그 후로 그는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고 나중에는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 야고보는 초대교회의 존경받던 의인으로서 사도 야고보의 순교 후에 그 야고보의 자리를 대신할 만큼 지도력이 있던 인물이었다.

 야고보는 동네 사람들로부터 "의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려졌다. 그의 무릎은 너무 오랜 시간을 꿇고 기도하여서 낙타무릎처럼 되었다고 한다.

 그는 결혼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전 9:5).

 그는 유대인들에게나 교회에서 존경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베드로도 감옥에서 풀려나와서 그 야고보에게 보고하였다(행 12:17).

 그는 자기 자신에게는 철두철미한 삶을 살았으나 이방인들에게는 매우 부드러운 편지를 보냈다(행 15:13-29).

 그는 유대인 전도에 몸과 마음을 바쳤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이방인 전도를 하도록 승인했으며 이를 기뻐했다.

 그리고 바울은 야고보가 권면하는 일이면 순종하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야고보는 사도행전 제 15장에서 예루살렘 총회가 모였을 때 의장격으로 그 회의를 주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야고보의 신학은 실천적인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행함이 있는 믿음, 열매가 있는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은 그 열매를 보아야만 그 나무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요세푸스나 유세비우스가 인정한 역사가 헤게시퍼스(Hegesippus)의 기록에는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인 62년에서 67년 경에 많은 유대인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자 이에 질투를 느낀 안나스와 바리새인, 서기관 등이 공회를 소집하고 야고보를 소환하여 공회 앞에 세우고, "예수님께서는 메시야가 아니다"라고 외치라고 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야고보는 성전의 회랑에 서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세계의 심판자요 메시야이다"라고 큰 소리로 외치게 되었다.

 이에 화가 난 바리새인들은 야고보를 땅바닥에 끌어내려 숨이 끊어질 때까지 돌을 던졌다.

 이에 야고보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를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주옵소서.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갈 2:9)라고 쓴 바울의 서신을 볼 때 야고보와 베드로가 예루살렘교회의 기둥 같은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야고보가 쓴 야고보서에는 자신을 예수님의 동생이라고 쓰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쓰고 있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약 1:1, 7).

 

 야고보가 기록한 처음 한 절은 그의 권위를 느끼게 한다.

 적어도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라고 쓸 정도면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은 아닐 것이다. 야고보는 적어도 이스라엘 전체를 상대로 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 중 특히 바리새인들의 믿음이 그야말로 말만 하고 행위는 없는 믿음이었다. 주님께서도 특별히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가르치신 바 있다.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마 23:1-12).

 

 야고보서의 내용은 자세히 살펴보면 마태복음 23장의 예수님의 말씀과 거의 같은 내용을 많이 볼 수 있다.

 진리가 진리 되는 증거는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되 선하고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진리는 역사적이고 실천적이어야 하며 또한 윤리적이어야 한다. 야고보는 실천적인 열매가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믿음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그 열매를 보고야 그 나무를 알게 된다고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