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극/바울 주변인물

위대한 카운슬러 바나바

은바리라이프 2010. 2. 8. 17:30

위대한 카운슬러 바나바 나의 관심정보

2010/02/08 14:58

작성자: 그까이꺼(matsy)

복사 http://blog.naver.com/matsy/memo/40100607724

출처 해바라기처럼주바라기 | 주바라기
원문 http://blog.naver.com/bora0306/30049124076

 사람들은 바나바가 이름인 줄 알고 있지만 실상은 별명이고 그의 본명은 요셉이었다. 바나바는 사도들에 의해 붙여진 이름으로 '격려의 아들' 또는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행 4:36)이다.

 그는 유대인으로서 구브로 섬 출신의 레위인이었다(행 4:36). 사도 바울을 예루살렘의 사도들에게 추천해서 교제할 수 있도록 주선한 사람이 바로 바나바였다. 이 바나바는 위로하고, 격려하고, 권면하며, 상담하고, 추천하는 일이 사명이요 은사였다. 사도들 사이에서는 벌써 그의 이러한 탈렌트와 은사가 두드러지게 드러나 별명이 붙은 것이다. 그의 은사는 연약한 형제를 북돋우는 힘이 있었다. 그는 그의 탈렌트와 은사를 묻어두지 않고 십분, 십이분 활용하는 사람이었다.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까지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예루살렘교회가 이 사람들의 수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행 11:19-26).

 

 안디옥에서 이방인 중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하자 예루살렘교회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나바를 보낸 것이 무엇보다 잘 된 일이다.

 바나바는 가서 보고 한없이 기뻐하면서 열심으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상담하고 가르치면서 교회를 섬겼다. 그러자 큰 무리가 주께로 모여들었다. 너무 많이 밀려오는 사람들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그는 길리기아 다소까지 가서 바울을 설득하여 데리고 오게 되었고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협력목회를 하였다.

 그때는 마치 온 안디옥이 예수 믿는 사람으로 가득한 것 같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그리스도인'이란 말이 나오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는 다 바나바의 공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나바는 담대하면서도 온유하고 이해심이 많고 자신의 재산을 다 하나님의 교회에 드려 나누게 하고 헌신적으로 일하고 다른 사람에 대하여서는 항상 관대한 자세로 일하는 사람이었다.

 유대인들이 온 세상에 흩어져 살게 된 것은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사로잡혀가서 온 세상으로 흩어져 간(BC 721) 후로부터였을 것이다. 바나바가 구브로에서 태어난 것도 그러한 역사적인 사연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체로 예루살렘, 혹은 이스라엘 본토에 남아 있었던 사람들보다는 온 세상으로 흩어져 나갔던 사람들 중에 훌륭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된 이유는 아마도 견문이 넓어지면서 안목이 열리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바나바가 그렇고 바울이 그렇다.

 디모데 역시 유대인 디아스포라였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 역시 그러한 사람이다. 구레네 시몬도 그렇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도 유대인이면서 본도에서 탄생하였고 로마에서 일하다가 고린도에서 바울과 만났다. 그래서 그런지 개방적이고 진취적이며 세계적인 안목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빌립보에서 만났던 자주장사 루디아 역시 유대인이면서 두아디라 출신이었다. 이러한 사람들이 대체로 개방적인 성품을 가지게 되는데 이는 다 여행을 통하여 견문이 넓어지게 된 결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능하면 젊어서 온 세계로 여행을 하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필요한 일이다.

 필자도 마흔이 넘도록 해외를 가보지 못했는데 주님의 은혜로 이집트와 요르단 그리고 이스라엘, 터어키, 그리스, 로마, 오스트리아, 독일, 영국, 스페인, 그리고 프랑스를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넓은 세계를 여행해보면서 우리가 그동안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살아왔다고 생각해왔는데 실상은 우물 안의 개구리가 아니라 우물 안의 올챙이처럼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도 유대인들은 어릴 때부터 영어를 유창하게 하고 아랍어와 모국어 그리고 스페인어나 불어, 독일어, 혹은 터키어를 구사하게 된다. 그래서 으들의 활동무대는 언제나 세계적이다. 온 세계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모여들어서 다시 나라를 만들었기 때문에 전 세계언어를 특별하게 배울 것도 없이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들은 세계정세에 대하여 매우 밝은 민족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민족정신이 흐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나님을 믿는 정신과 자신들이 유대인이라는 근본정신에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바나바, 그는 착한 사람이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하여서는 먼저 그 성품이 착한 사람이어야 한다. 그 위에 성령이 충만해지고 지혜와 능력이 주어져야 하나님의 일을 바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예루살렘교회의 일원으로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사도들의 증거에 은혜를 받고 자기 소유의 밭을 팔아 하나님께 바쳐서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게 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다시 하나님께 바쳐서 연약한 형제를 권면하고 위로하는 아름다운 봉사를 계속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어느덧 '권하고 위로하는 자'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행 4:32-37).

 

 그는 예루살렘교회의 파송을 받아 안디옥에 가서 복음을 듣고 믿은 이방인 성도들을 권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으로 가르쳤다. 그는 다른 사람과 협력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사역 도중 혼자의 힘으로 벅차게 되자 그는 길리기아 다소에 있는 사울을 데려와 한 해 동안 동역하게 됨으로써 안디옥의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믿었다(행 11:22-26).

 안디옥교회의 선교사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바울과 바나바를 따로 구별하여 초대 선교사로 세우라고 하셨다. 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아 먼저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를 거쳐서 소아시아의 중심부인 비시디아 안디옥(지금의 야르바츠)과 이고니온(지금의 코냐) 루스드라, 더베 등 소아시아 일대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였다. 이것이 바나바와 바울의 제1차 전도여행이었다(행 13:2-14:8).

 1차 전도여행에서 수행원으로 마가 요한을 두었는데 마가 요한은 예루살렘의 최후의 만찬을 준비했던 집의 아들로서 바나바의 생질이 되는 관계였다. 처음으로 가보는 전도여행인지라 얼마나 어려운지를 모르고 나섰다가 요한은 밤빌리아 지방의 버가에서 도중하차를 하고 말았다. 그 이유는 불분명하지만 마가가 너무 고생이 됨으로 도중에서 포기하였다는 전승과 마가는 할례당이어서 바울과 바나바가 할례없이 세례를 주는 것을 반대하다가 서로 결렬되었을 것이라는 추측들이 있다.

 이 문제로 인하여 그후 2차 전도여행에 앞서 마가 요한의 동행문제로 바나바는 바울과 갈라서게 되었고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다시 구브로를 향하여 떠나고 바울은 실루아노를 데리고 길리기아로 갔다(행 15:36-41).

 다른 면에서는 바울이 진리 위에 서있는 것이 분명하였지만 이 마가의 문제는 바나바의 말이 옳았던 것으로 증명되었다. 바울의 생각은 마가와 같은 사람은 결코 주님의 일꾼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후일에 바울은 그 일을 두고 후회를 한 것 같다. 바나바는 어디에선가 순교한 것 같고 마가는 얼마 후에 베드로를 수행하게 되었다. 마가가 쓴 복음서는 대체로 바나바와 베드로에게 들은 것을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여간 바울의 생각은 빗나가고 말았다. 마가는 훌륭한 주님의 일꾼이 되었던 것이다. 역시 사람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키우는 일은 바울보다 바나바가 월등한 것 같다. 이것이 바나바와 바울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아쉬워하는 것은 바나바가 구브로를 향하여 간 것까지는 알 수 있는데 그 후의 일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바나바가 그 이후에 어디서 어떻게 최후를 맞이했는지 알 수가 없다. 다른 사도들의 행적도 우리가 알 수 없어서 궁금한 것은 사실이지만 특별히 착한 사람 바나바의 행적을 기록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은 섭섭한 일이다. 그러나 그의 이름과 그의 업적은 결코 흐려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