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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임한창] 해는 떴던 곳으로 돌아간다

은바리라이프 2009. 12. 29. 15:43

데스크 칼럼—임한창] 해는 떴던 곳으로 돌아간다

국민일보 | 입력 2004.12.30 07:08

 




유대인들은 새해 첫날에 가족이 빙 둘러앉아 한 권의 책을 읽는다.
그것은 오랜 옛날부터 지켜져 내려오는 유대인들의 고유한 풍속이다.
 
그들이 새해 첫날에 읽는 것은 희망과 격려의 글이 아니다. 그것은 언뜻 염세주의의 교본처럼 보이는 전도서(Ecclesiastes)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간다. ”
새해 첫날에 온 가족이 묵상하기에는 좀 어울리지 않는 허무적인 메시지다. 더구나 이 책의 저자는 솔로몬이다. 스물한 살에 왕위에 올라 40년 동안 온갖 부귀영화를 누린 지혜의 왕이다.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을 만큼 모든 것을 누려본 사람의 서글픈 인생 독후감을 유대인들은 왜 새해 첫날 자녀들에게 들려주는 것일까. 세상의 모든 일은 바람을 잡으려는 우둔한 몸짓이라고 결론 짓는 페시미스트의 절규에서 무엇을 얻으려는 것일까.
 
그곳에는 무서운 역설적 진리가 담겨 있다. 그것은 ‘해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번요한 명예 부귀 쾌락 권력이 얼마나 공허한가를 가르쳐준다. 결국 전도서는 염세주의의 교본이 아니라 진정 인간의 가치있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가르치는 인생 교과서다. 새해 첫날,유대인들은 전도서를 통해 자녀들에게 두 가지를 역설한다.
 
첫째는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이며 둘째는 하나님 말씀을 지키라는 것이다.
즉 ‘해 아래 삶’에 가치를 두지 말고 ‘해 위의 삶’에 의미를 두라는 것이다. 인간 중심의 삶은 아무리 풍요해도 헛된 것이라는 준엄한 경고다. 우리는 왜 사는가. 무엇 때문에 이 살벌한 생존의 전쟁터에서 발버둥치는가. 이런 치열한 삶과 노력들이 긍극적으로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생각을 하면 낙백할 수밖에 없다. 나를 위해 놀랍고 흥미진진한 ‘해 위의 계획’을 세워놓은 분이 없다면 우리 인생은 얼마나 비참하고 초라할가?
 
이번 인도네시아 지진은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 아름답던 산호초 섬들은 순식간에 수중무덤으로 변했고 희생자는 무려 10만여명에 이른다. 지구 자전속도가 100만분의 3초 단축돼 자연의 질서가 어긋날지도 모른다. 이 엄청난 자연의 위력 앞에 인간은 굴복할 수밖에 없으며 이 재앙을 통해 우리가 배우는 것은 인간의 나약함과 겸손이다.
 
새해 첫날,유대인들은 왜 자녀들에게 전도서를 읽게 하는가?
인간의 삶은 절대자의 섭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과 진정 가치있는 인생이 무엇인가를 교육하려는 것이다. 하나님 없는 인생이 얼마나 불행한 것인지를 솔로몬의 고백을 통해 가르치기 위함이다. 오늘의 현실이 답답해도 감사가 더해지면 기적이 창출된다는 것을 자녀들에게 일찍부터 가르쳐주려는 것이다.
 
딱딱한 보리떡 다섯 개와 비린내 내는 물고기 두 마리. 그것은 유대 서민들이 먹는 초라한 점심메뉴다. 예수님은 기름지고 풍요로운 음식이 아니라 그 최소한의 초라한 음식을 앞에 놓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고 그 감사가 기적을 만들어 5000명의 군중을 배불리 먹였다. 이것이 바로 감사의 서너지 효과다. 감사 속에는 축복의 씨앗이 들어 있다. 미국이 부강한 것은 건국의 조상들이 최악의 상황에서도 감사의 마음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감사의 씨앗이 후세에 풍요의 꽃으로 만개했다.
 
불평과 불만은 우리의 삶을 황폐하게 만든다. 내 집 창문이 더러우면 이웃집 빨래가 모두 지저분하게 보인다. 불평과 불만이 많은 사람은 우선 마음의 창부터 닦아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할 줄 모르게 된다. 이제 곧 새해가 시작된다. 내년은 올해보다 경제가 훨씬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들이 많다. 사방이 꽉 막혀 있어 도무지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사방은 막혀 있어도 위는 항상 뚫려 있다. 그것이 시련을 극복하는 열쇠다. 하늘을 향해 감사기도를 드리는 ‘아름다운 손’,그것이 진정 희망이다.
 
유대인들이 새해를 맞으며 솔로몬의 인생독후감을 읽는 것은 소중한 삶을 낭비하지 않기 위함이다. 성경은 2005년을 맞는 우리에게 이렇게 교훈한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임한창(종교부장) hc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