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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리워야단/욥41:1-34|

은바리라이프 2009. 11. 4. 18:35
하나님과 리워야단/욥41:1-34| ……──욥기
행복충전소 조회 119 | 09.01.28 13:24 http://cafe.daum.net/dm3179/13ey/178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이신지 아는 일은 참 중요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생명의 삶” 과정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성경에 나타나고 묘사된 부분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묘사하는 하나님은 너무 위대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한 두 마디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역과 속성과 인격적인 면으로 나누어서 설명하였습니다. 간략하게 설명하면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일을 작정하신 분이시고, 작정에 따라 창조하시며 통치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영이시고 전지하시며 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고 성부, 성자, 성령 삼위로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초월적이며 무한한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은 그리이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과 같지 않고 거룩하고 의로우시며 선하시며 진실하심이 영원하고 불변하고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물론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저의 독특한 설명이 아니라 성경의 하나님의 하나님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 교리 내용을 보면 거의 이러한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교리는 단순히 지식과 이론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이 교리를 믿을 때 하나님을 만나고 특별한 교제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리는 중요합니다.

특히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교리를 자세히 아는 일은 참 중요합니다. 욥기서의 맨 마지막 부분에 하나님이 직접 등장하여서 말씀하시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말씀은 욥기서 38장부터 41장까지 기록되어 있는데 핵심은 하나님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 설명하시는 것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설명가운데 나타나는 한 부분인데 “리워야단”(liweyathan, לויתן)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설교의 주제는 하나님은 악한 영들까지 통치하시며 그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시는 위대한 분이시기 때문에 제한된 지식으로 하나님을 판단해서는 안 되고 믿고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 욥기서의 주제와 줄거리

우리가 약 두 달 동안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저녁에 잘 때까지 욥기서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욥기서는 서사시(epic)라는 문학장르를 통하여 기록하였습니다. 전통적으로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 등을 소재로 쓴 것이기 때문에 스토리(story)가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역시 욥기도 스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스토리의 구조를 다시 전체적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먼저 욥이 고통을 당하는 배경이 되는 하늘보좌에서 일어난 이야기(욥1-2장), 욥의 세 친구 데만 사람 엘리바스, 수아 사람 빌닷, 나아마 사람 소발이 욥의 고난을 해석하고 욥과 변론하는 이야기(욥3-27장), 욥기서 저자가 이들의 대화를 듣고 코멘트하는 이야기(욥28장), 욥의 최후 진술이면서도 하나님 앞에 낸 고소장(욥29-31장),

그리고 이들의 대화를 듣고 대화에 개입하는 엘리후의 이야기(욥32-37장) 그리고 전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고난의 문제에 대하여 설명한 세 친구에 대하여 평결을 내리시는 이야기(욥38:1-42:9), 그리고 최종적으로 욥의 행복한 삶의 결말을 이야기하는 내용(욥42:10-17)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전달하려는 주제는 우리가 고통 가운데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제마다 고난의 문제를 해석하고 인생의 문제를 설명하려고 하지만 참된 지혜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제한된 이해력으로는 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겸손하게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분을 경외하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신다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인격과 하나님의 섭리의 궁극적인 목표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와 교회의 유익을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고난 가운데 있다고 할지라도 기도와 찬송으로 나아가고, 겸손하게 하나님을 순종할 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아름답게 바꾸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을 욥기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욥기에 기록된 스토리의 줄거리를 요약할 때 이 구조를 따라 할 수 있습니다. 욥기 1-2장에서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세상의 모든 일을 통치하시는 하늘보좌에서 하나님과 사탄의 대화에서 하나님이 욥의 믿음을 칭찬하면서 욥처럼 악에서 떠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탄은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이 축복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지 시험해 보라고 하자 사탄은 그의 자녀들과 재산을 다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건강까지 빼앗았습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욥은 어리석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음으로 그의 믿음의 진정성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런데 욥과 그의 친구들은 하늘보좌에서 일어난 이 일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욥의 고난을 해석하면서 그의 세 친구 데만 사람 엘리바스, 수아 사람 빌닷, 나아마 사람 소발은 인과율의 논리를 가지고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고, 착하고 선한 일을 하였으면 상을 받는다는 논리로 욥이 고난을 받고 고통을 받는 것은 욥이 지은 죄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욥은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의롭다고 논증하다가 하나님을 불의한 자로 만드는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엘리후는 욥의 세 친구들이 욥을 정죄하는 것도 책망하고, 또한 욥이 자신의 의를 주장하다가 자신이 의롭다고 주장하는 것을 책망하고 죄를 지어 고난을 받는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 고난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설명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욥기 40:8에서 엘리후가 책망한 대로 “네가 내 심판을 폐하려느냐 스스로 의롭다하려 하여 나를 불의하다 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욥의 최후진술과 엘리후의 책망을 다 들으시고 욥에게 두 번의 설교를 하셨습니다. 한편의 설교는 욥기 38:1-39:30이고, 또 한편의 설교는 욥기 40:1-41:34입니다.

두 편의 설교를 하면서 하나님은 두 번 다 질문으로 시작하시고 질문으로 마쳤습니다. 예를 들면 욥기 38:2-3에 보면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욥기 40:2에서는 “변박하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하나님과 변론하는 자는 대답할지니라”라고 하였습니다.

특별히 두 번째 설교를 하시면서 하나님은 의미있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욥기 40:10-14을 보십시오. “너는 위엄과 존귀로 스스로 꾸미며 영광과 화미를 스스로 입을찌니라 너의 넘치는 노를 쏟아서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낱낱이 낮추되 곧 모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추며 악인을 그 처소에서 밟아서 그들을 함께 진토에 묻고 그 얼굴을 싸서 어둑한 곳에 둘찌니라 그리하면 네 오른손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내가 인정하리라.”

이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요? 이 뜻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네가 스스로 위엄과 능력을 가지고 영광의 보좌에 앉아서 모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무덤에 넣어줄 수 있겠느냐 만약에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너의 능력으로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인정하겠다.”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면서 기괴하고 이상하게 생긴 두 동물에 대하여 설명하였습니다. 그 동물 하나는 욥기 40:15-24에 묘사하고 있는데, 우리 번역에는 “하마”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그 생김새를 묘사하는 것으로 보아 하마같지는 않습니다.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공룡종류인 티라노사우루스와 같은데 육식동물이기 때문에 맞지 않고 초식 공룡인 켄트로사우루스와도 유사한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번역 성경에는 히브리어 원문에 따라 “버헤이못”(behemoth, בהמות)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동물 하나가 욥기 41장에 묘사하고 있는데, 우리 번역에는 “악어”라고 되어 있으나 그 생김새와 하는 일을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악어는 아닙니다. 히브리어 성경에 “리워야단”(liweyathan, לויתן)이라고 되어 있는데 여러 영어번역성경은 이것이 무엇인지 몰라 그냥 히브리어를 그대로 음역하여 “레비아탄”(leviathan)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2. 리워야단의 정체

그러면 리워야단의 정체가 무엇일까요? 대충 리워야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는 몇 개의 글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우리나라 문인 가운데 한 시대를 풍미했던 김지하 시인이 젊은 시절에 미국을 가리켜 “골치 아프고 비인간적인 괴물의 나라”라고 하면서 이러한 말을 하였습니다. “미국은 중요하다. 나에게, 우리에게, 모두에게 중요하다. …흰 빛이거나 검은 그늘이거나 간에 중요하다는 점에서는 전혀 틀림이 없다. 미국은 현대의 로마다.

지중해 시대의 로마가 연안 모든 민족들에게 사활적 존재였듯이 지금 지구화 시대의 미국 역시 전 인류에게 좋건 싫건 깊이 의식할 수밖에 없는 레비아탄이다.”(오마이뉴스, 2007/08/30) 오래 된 이야기지만 한완상 부총리가 검찰의 개혁을 말하면서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검찰이 ‘레비아탄’의 거대한 부정부패를 파헤치니 국민이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검찰 문화와 관행은 많이 고쳐야 한다. 그것을 고치는데 대통령이 간섭해야 한다. 냉전적 검찰문화, 군사독재에 길들여진 검찰문화 혁파를 대통령이 잊어버리면 안 된다.”(문화일보, 2003/11/01) 대충 리워야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감을 잡으셨을 것입니다. 거대한 힘을 가진 악마적인 존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욥기 41장의 구조를 나누어 보면 욥기 41:1-11까지 리워야단에 대한 수사의문문으로 된 질문이 나오고, 욥기 41:12-33에서는 그의 구조와 힘과 능력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욥기 41:34에서는 리워야단에 대한 최종적이 결론으로 “모든 높은 것을 낮게 보고 모든 교만한 것의 왕이 되느니라”라고 진술함으로 이 존재가 “교만한 것의 왕” 곧 악마적인 존재이거나 사탄과 유사한 존재를 이미지 언어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리워야단이 일반 악어와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동물이라고 하는 것은 욥기 41:12-33에 묘사하고 있는 외적인 구조와 모습을 보면 마치 심형래 감독이 만든 『디 워』(D War)에 나오는 용들이 형태적으로는 이무기와 같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어릴 때 우리가 많이 본 만화 『용가리』에 나오는 용가리같이 입에서 불도 나오고 귀에서는 연기도 나옵니다. 그 묘사된 내용을 한번 보겠습니다.

12 내가 악어의 지체와 큰 힘과 훌륭한 구조에 대하여 잠잠치 아니하리라 13 누가 그 가죽을 벗기겠으며 그 아가미 사이로 들어가겠는고 14 누가 그 얼굴의 문을 열 수 있을까 그 두루 있는 이가 두렵구나 15 견고한 비늘은 그의 자랑이라 서로 연함이 봉한 것 같구나(그의 등은 겹겹이 쌓인 방패라)

16 이것, 저것이 한데 붙었으니 바람도 그 사이로 들어가지 못하겠고 17 서로 연하여 붙었으니 능히 나눌 수도 없구나 18 그것이 재채기를 한즉 광채가 발하고 그 눈은 새벽 눈꺼풀이 열림 같으며 19 그 입에서는 횃불이 나오고 불똥이 뛰어나며 20 그 콧구멍에서는 연기가 나오니 마치 솥이 끓는 것과 갈대의 타는 것 같구나 21 그 숨이 능히 숯불을 피우니 불꽃이 그 입에서 나오며 22 힘이 그 목에 뭉키었고 두려움이 그 앞에서 뛰는구나(힘이 그 목에 있고 난폭함이 그 앞에서 뛰는구나)

23 그 살의 조각들이 서로 연하고 그 몸에 견고하여 움직이지 아니하며 24 그 마음이 돌 같이 단단하니 그 단단함이 맷돌 아래짝 같구나 25 그것이 일어나면 용사라도 두려워하며 경겁하여 창황하며 26 칼로 칠찌라도 쓸데없고 창이나 살이나 작살도 소용이 없구나 27 그것이 철을 초개 같이, 놋을 썩은 나무 같이 여기니

28 살이라도 그것으로 도망하게 못하겠고 물매 돌도 그것에게는 겨 같이 여기우는구나(화살로 그것을 도망치게 할 수 없고 물맷돌도 지푸라기로 변하는구나) 29 몽둥이도 검불 같이 보고 창을 던짐을 우습게 여기며 30 그 배 아래는 날카로운 와륵 같으니 진흙 위에 타작 기계 같이 자취를 내는구나 31 깊은 물로 솥의 물이 끓음 같게 하며 바다로 젖는 향기름 같게 하고 32 자기 뒤에 광채나는 길을 내니 사람의 보기에 바닷물이 백발 같구나 33 땅 위에는 그것 같은 것이 없나니 두려움 없게 지음을 받았음이라

그런데 성경에는 욥기에만 리워야단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리워야단이 다섯 개의 구절에서 모두 여섯 번 나타납니다.

“그 날에 주께서 그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사27:1)

“주께서 주의 능력으로 바다를 나누시고 물 가운데 용들의 머리를 깨뜨리셨으며 악어(리워야단)의 머리를 파쇄하시고 그것을 사막에 거하는 자에게 식물로 주셨으며”(시74:13-14)

“날을 저주하는 자 곧 큰 악어(리워야단)를 격동시키기에 익숙한 자가 그 밤을 저주하였더라면”(욥3:8)

“네가 능히 낚시로 악어(리워야단)를 낚을 수 있겠느냐 노끈으로 그 혀를 맬 수 있겠느냐”(욥41:1)

“저기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그 속에 동물 곧 대소 생물이 무수하니이다. 배가 거기를 다니며 주의 지으신 악어(리워야단)가 그 속에서 노나이다”(시104:25-26)

그러면 리워야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오랜 교회의 역사에서 리워야단을 세 가지 방법으로 해석해 왔습니다. 첫 번째로는 자연적인 존재로 해석하여 실재로 이러한 동물이 있었다고 보고 있고, 두 번째로는 상징적인 존재로 실제로 이러한 동물은 존재하지 않고 단지 악이나 악한 권세인 마귀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세 번째로는 이 보다는 신화적인 존재인데 이 존재의 이미지를 가지고 영적인 실체인 마귀를 설명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과학자들은 이 동물이 자연적인 것으로 이 지구상에 존재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찾아내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리워야단을 “악어”라고 했을 때 시편 106:25-26에서 바다에서 놀고 있는 생물과 같이 두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또한 상징적으로 볼 때 유명한 교황 그레고리 1세(540-604)는 욥기 38:41에 “까마귀”는 “죄로 어두워진 세계”로 욥기 39:13의 “타조”는 유대인 회당을, “알”은 “회당에서 나온 사도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리워야단은 사단의 상징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리워야단을 사탄과 동일시한다면 욥기 1:6-12에 나타나는 영적인 존재로서 사탄과 다른 모습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리워야단은 사탄의 존재와 구별할 수 없기에 사탄으로 보는 것도 무리는 없습니다.

저는 신화적인 존재로서 이 존재가 가지는 이미지를 가지고 영적인 실체인 마귀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진리나 대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이미지”(image)로 설명하는 것은 성경에 흔한 방법입니다. 특히 이미지는 언어로 인하여 마음속에 그려지는 그림 또는 영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이 이미지가 독자들이 경험한 것이라고 구체적이면서 감각적으로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 아주 잘 알려진 신화가 있었습니다. 그 신화 가운데 바벨론의 창조신화 『에누마 엘리쉬』가 있습니다. 이 시화에 마르둑이라는 신과 티아맛이 나타납니다. 티아맛은 악카드어로 ti'amatu, Ti-'amat 등으로 표기되는데 기본적인 뜻은 “바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티아맛을 바다를 의인화하여 부른 이름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특히 이 신화에 거대한 혼돈의 짐승으로 티아맛이 나타나는데 이 티아맛은 바다의 짐승으로 두 날개를 가지고 있고 뱀의 형상을 가진 용으로, 하늘을 나르는 뱀으로, 일곱 머리를 가진 용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가릿 신화 가운데 나타난 로탄과 유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우가릿 신화는 1928년 시리아의 한 농부에 의해 옛 우가릿(현 Ras Shamra)에서 토판으로 된 문헌들을 발굴하였습니다. 그 토판의 첫줄에 ltn이 담겨 있는데 이 ltn을 성경고고학자 올브라이트 교수는 Lotan으로 읽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신화에서 로탄은 바다의 신으로 용(Tannin), 매끄러운 뱀, 꼬불꼬불한 뱀, 일곱 머리의 폭군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 신화에 나오는 로탄이 성경에 묘사하고 있는 리워야단과 아주 유사합니다.

그러면 왜 성경의 저자가 이방의 신화인 바벨론 시화나 우가릿 신화에 나오는 이러한 신화적인 존재인 티아맛이나 로탄의 이미지를 가지고 악한 자를 묘사하고 있을까요? 성경을 연구한 결과 성경에는 어떤 진리나 개념이나 대상으로 묘사하기 위한 무수한 이미지 언어들이 있고, 당시의 문화에서 쉽게 연상될 수 있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이로 볼 때 티아맛과 로탄의 악하고 포학한 이미지를 쉽게 전달하기 위하여 신화적인 존재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로 설명하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리워야단의 정체는 역사 속에 활동하는 사탄의 영향 아래에서 힘과 권세를 가진 악한 존재이거나 사탄과 같은 존재를 잘 표현하기 위한 이미지(imagery)라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3. 하나님께서 리워야단을 언급한 목적

그러면 욥에게 왜 바벨론 신화에 나오는 티아맛이나 우가릿 신화에 나오는 로탄의 이미지를 가진 리워야단을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을까요? 앞에서 줄거리를 이야기 하면서 다시 한 번 욥기 40:10-14을 보십시오. “너는 위엄과 존귀로 스스로 꾸미며 영광과 화미를 스스로 입을찌니라 너의 넘치는 노를 쏟아서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낱낱이 낮추되 곧 모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추며 악인을 그 처소에서 밟아서 그들을 함께 진토에 묻고 그 얼굴을 싸서 어둑한 곳에 둘찌니라 그리하면 네 오른손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내가 인정하리라.”

이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요? 이 뜻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네가 스스로 위엄과 능력을 가지고 영광의 보좌에 앉아서 모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무덤에 넣어줄 수 있겠느냐 만약에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너의 능력으로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인정하겠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욥으로 하여금 연약한 인간이며 세상의 이치를 다 알 수 없고 하나님만이 위대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왕으로서의 영광과 위엄과 능력을 드러내어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예를 든 버헤이못이나 리워야단과 같은 능력있는 동물이나 혼돈과 파괴적인 존재를 바로잡아 그들로 하여금 복종하게 할 수 있느냐고 질문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러한 예를 들면서 질문하였을까요?

바로 이 점에 대하여 드라이버(S. R. Driver)는 “욥이 하나님께서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느냐고 물은 것처럼 이제 하나님께서 욥에게 우주의 보좌에 앉아서 신의 속성을 나타낼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The Book of Job, 349)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버헤이못과 같은 큰 동물이나 혼돈과 악의 화신인 리워야단도 하나 다스리거나 그 발 앞에 굴복시키지 못하면서 마치 하나님처럼 판단하고 하나님을 불의한 자처럼 생각하는 것이 잘못 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신화에 나오는 이상하고 기괴한 존재인 리워야단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자연만이 아니라 악하고 교만한 자들의 왕인 사탄의 존재까지도 지배하시는 위대하신 분이심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제한된 시각을 가지고 때로는 우리 눈에 납득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일이 있다하여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욥처럼 하나님을 불의한 자로 생각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다만 여러분은 하나님은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사실을 믿고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고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이 일이 어리석게 보인다고 할지라도 이것이 참된 지혜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바벨론 신화에 나오는 티아맛이나 우가릿 신화에 나오는 로탄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리워야단의 존재를 설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미지를 그대로 닮은 존재가 신약에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요한계시록 13:1-4입니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하나님께서는 사도 요한을 통하여 이러한 기괴하고 이상한 이미지를 통하여 힘과 권세를 가진 악한 자들을 통칭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들까지 통치하시는 위대한 분이십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하나님을 막연하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욥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 당신께서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온 세상을 만드셨고 그것을 통치하시는 분이십니다. 심지어 악한 사탄과 그 사탄의 세력 하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악한 자들도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고 언제든지 그 발 아래 복종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이 초월적이고 초자연적이며 무한한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은 동시에 우리의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 안에 내재하시고 우리와 함께 교제하시며 함께 하십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형벌을 다 받으시고 우리를 구속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신비요 은혜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요한계시록 13:4에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라고 하였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장이 되어 싸우시고 능히 승리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바울의 증거를 통하여 로마서 8:31-32에 “그런데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실 뿐만 아니라 모든 은혜까지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악하고 교만한 자들이 여러분을 대적한다고 염려하지 마십시오. 심지어 사탄이 제 아무리 큰 권세를 가지고 여러분을 대적하여 고통스럽게 한다고 할지라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 과정에서 욥처럼 하나님을 불의한 자로 간주하거나, 그 분의 통치를 의심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모든 권세를 포함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존재까지 통치하시며 무릎을 꿇게 하시는 하나님이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어서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위대하신 하나님을 믿고 기도함으로 리워야단을 굴복시키는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도 지키시고 인도해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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