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극/요나

[스크랩] [나훔 3:1-7] 니느웨의 음행

은바리라이프 2009. 10. 10. 16:22

[나훔 3:1-7] 니느웨의 음행



나훔 3:1-7

화 있을진저 피의 성이여 그 안에는 거짓이 가득하고 포악이 가득하며 탈취가 떠나지 아니하는도다 획획 하는 채찍 소리, 윙윙 하는 병거 바퀴 소리, 뛰는 말, 달리는 병거,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죽임 당한 자의 떼, 주검의 큰 무더기,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나 이는 마술에 능숙한 미모의 음녀가 많은 음행을 함이라 그가 그의 음행으로 여러 나라를 미혹하고 그의 마술로 여러 족속을 미혹하느니라 보라 내가 네게 말하노니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 치마를 걷어 올려 네 얼굴에 이르게 하고 네 벌거벗은 것을 나라들에게 보이며 네 부끄러운 곳을 뭇 민족에게 보일 것이요 내가 또 가증하고 더러운 것들을 네 위에 던져 능욕하여 너를 구경거리가 되게 하리니 그 때에 너를 보는 자가 다 네게서 도망하며 이르기를 니느웨가 황폐하였도다 누가 그것을 위하여 애곡하며 이르기를 니느웨가 황폐하였도다 누가 그것을 위하여 애곡하며 내가 어디서 너를 위로할 자를 구하리요 하리라



  요즘 길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낮 뜨거운 모습이 눈에 많이 뜨입니다. 핫팬츠를 입은 여자들,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들, 몸이 다 드러나는 옷을 입은 여자들, 이런 여자들을 보면 시험에 들지 않을 남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으면 간음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함부로 볼 수도 없습니다. ‘음행’, 이 단어처럼 수치스러운 단어를 없을 것입니다. 이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음란하고 문란한 행동’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즉 ‘음행’은 ‘성적으로 무질서한 행위’를 말합니다. ‘성’은 하나님께서 만드셨지만, 무질서하게 더럽히라고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성’을 만드셨을까요?


  창세기 1장 27-2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 구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고 나와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두 유형의 사람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다르게 창조하셨습니다. 육체적으로도 보면 남자의 성적인 기관과 여자의 성적인 그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이런 구조상의 차이는 남자와 여자를 구분을 짓는 구조상의 특징일 뿐만 아니라 성격의 차이에도 반영됩니다. 이 성적인 차이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다르게 만드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다르게 만드셨을까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신 것은 그들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를 이루기를 바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거룩한 자손을 낳아 자신의 뜻을 이루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그 하나님의 기대는 무산되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과 분리된 인간의 자손은 마귀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두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중에 거룩한 자손을 나무 그루터기처럼 항상 남겨 두셨습니다. 그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이어졌고 성취되었고, 지금도 완성되어가고 있습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마귀는 그 축복을 망치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서 마귀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축복의 선물인 가정을 파괴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마귀는 가정을 파괴합니다. 그 가정 파괴의 수단이 성폭력과 성적 문란, 즉 무질서입니다. 오늘날에 일어나는 수많은 4성폭력과 성적 무질서의 배후에는 마귀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마귀는 자신에게 사로잡힌 자들 뒤에서 조정합니다. 마귀의 목적은 가정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니느웨 성, 그 성도 그런 음행이 가득했습니다. “이는 마술에 능한 미모의 음녀가 많은 음행을 함이라 그가 그의 음행으로 여러 나라를 미혹하고 그의 마술로 여러 족속을 미혹하느니라” 이 구절에서 마술에 능한 미모의 음녀는 성을 비유한 것입니다. 그 성은 온갖 금은보화로 치장했기 때문에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 음녀가 마술에 능했다고 말했는데, 그 마술은 이웃 나라를 끌어들여 타락시키는 능력이었습니다. 주변 나라들은 니느웨 성의 아름다움을 보고 미혹되었습니다. 그 아름다움 뒤에는 이방신들이 있었는데, 그들도 니느웨를 따라서 이방신들을 섬겼습니다. 그들도 그렇게 하면 니느웨처럼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것은 니느웨 성에 대한 묵시였지만, 그 성안에 사는 사람들의 타락도 함축하고 있습니다. 이방신들은 부도덕하기 때문에 섬기는 자들은 성적으로 문란했습니다. 그 신들을 섬기는 자들도 역시 문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체로 음행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에게 나타납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그들이 이방신들과 우상들을 섬기자 음행이 많아졌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린 자들에게 내린 형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에게는 음행뿐만 아니라 온갖 종류의 악한 행위가 나타납니다. 그들은 무법의 상태에서 삽니다. 마침내 그들은 그들의 행위로 인하여 하나님께 다시 돌아올 수 없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방신을 섬기거나 우상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형벌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떠난 사람들의 전형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화 있을진저 피의 성이여 그 안에는 거짓이 가득하고 포악이 가득하며 탈취가 떠나지 아니하는도다”(나 3:1) 나훔 선지자는 그 성을 피의 성이라고 선포했습니다. 피의 성이라는 말에서 풍기는 것처럼 그 성은 잔인한 성이었습니다. 그 곳에는 거짓이 가득했고, 포악이 가득했으며 탈취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힘이 있는 자가 살기 편합니다. 힘없는 자는 많은 것을 빼앗기고 착취당하기 쉬웠습니다. 그러니 당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약자는 서럽습니다. 강자에 비하여 약자가 누리는 것은 차이가 매우 큽니다. 강자와 약자가 누리는 것의 차이가 없어야만 좋은 곳인데 말입니다.


  오늘날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날은 옛날과 다르게 강자는 지식을 많이 가진 자입니다. 지식을 적게 가진 자는 약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식을 가진 자는 현대사회에서 제공하는 많은 것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약자는 그것을 차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있는 것까지 빼앗깁니다. 그래서 오늘날은 정보력이 곧 경제력입니다. 정보가 없거나 정보력에서 뒤지게 되면 도태되거나 낙오하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통치영역은 온 민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비록 이방 나라였을지라도,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악한 일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고통하는 사람들의 신음소리도 모두 들으시고 계셨습니다. 그 정도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한계점에 도달하자, 하나님께서 드디어 심판의 칼을 드셨습니다. “획획 하는 채찍 소리, 윙윙 하는 병거 바퀴 소리, 뛰는 말, 달리는 병거,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죽임을 당한 자의 떼, 주검의 큰 무더기,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나 3:2-3) 나훔은 앗수르인들에게 임한 재앙을 생생하게 표현했습니다. “획획 하는 채찍 소리” 이 소리는 말을 재촉할 때 나는 소리입니다. “굉굉하는 병거 바퀴 소리”, 채찍을 맞은 말이 매우 급하고, 민첩하게 달릴 때 나는 소리입니다. “달리는 병거,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이 소리들은 군인들이 사로 싸울 때 나는 소리입니다. 빠른 말을 재촉하였던 군인들이 서로 칼과 창으로 싸웠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엎드러졌습니다. 그 전쟁 후에는 온 지경이 시체로 뒤덮였습니다. 나훔은 온 땅이 시체로 가득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성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참혹한 꼴로 변했습니다.


  그 동안 그들의 강함 때문에 가려졌던 수치가 모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힘이 강할 때에는 아무도 그들의 수치를 말할 수 없지만, 힘이 약화되면 그 수치는 온 천하에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치시자 그들의 수치를 모두 드러났습니다. “보라 내가 네게 말하노니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 치마를 걷어 올려 네 얼굴에 이르게 하고 네 벌거벗은 것을 나라들에게 보이며 네 부끄러운 곳을 뭇 민족에게 보일 것이요 내가 또 가증하고 더러운 것들을 네 위에 던져 능욕하여 너를 구경 거리가 되게 하리니 그 때에 너를 보는 자가 다 네게서 도망하여 이르기를 니느웨가 황폐하였도다 누가 그것을 위하여 애곡하며 내가 어디서 너를 위로할 자를 구하리요 하리라”(나 3:4-7) 인간이 처음 죄를 저지른 후부터 여자가 그 몸을 드러내는 것은 부끄러운 수치가 되었습니다. 죄가 없었던 에덴동산에서는 몸을 드러내어도 수치가 되지 않았습니다. 죄가 없는 상태에서 그것은 수치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죄를 저지른 후부터 그것은 수치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음녀라고 해도 그 몸을 드러나는 것은 큰 수치입니다. 그 몸이 모든 사람들에게 드러나 보십시오. 그것은 큰 수치입니다. 니느웨 성 안에서 저질러졌던 모두 가증한 일들이 모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가증스럽게 음행을 저질렀던 음행의 성, 그 성안에서 행해졌던 온갖 수치스러운 것들이 벌거벗은 것처럼 뭇 민족에게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이 행한 악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때가 되면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나훔 선지자를 통해서 그들이 행한 악을 갚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평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하십니다. 간혹 실수로 면하는 경우도 없습니다. 정확하게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한 모든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각까지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알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을 선악 간에 심판하십니다.

출처 : 하나님은 사랑(요일 4:16)
글쓴이 : 오직은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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