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극/요나

[스크랩] [나훔 1:9-15]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은바리라이프 2009. 10. 10. 16:21

[나훔 1:9-15]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나훔 1:9-15

너희는 여호와께 무엇을 꾀하느냐 그가 온전히 멸하시리니 재난이 다시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가시덤불 같이 엉크러졌고 술을 마신 것 같이 취한 그들은 마른 지푸라기 같이 모두 탈 것이거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비록 강하고 많을지라도 반드시 멸절을 당하리니 그가 없어지리라 내가 전에는 너를 괴롭혔으나 다시는 너를 괴롭히지 아니할 것이라 이제 네게 지운 그의 멍에를 내가 깨뜨리고 네 결박을 끊으리라 나 여호와가 네게 대하여 명령하였나니 네 이름이 다시는 전파되지 않을 것이라 내가 네 신들의 집에서 새긴 우상과 부은 우상을 멸절하며 네 무덤을 준비하리니 이는 네가 쓸모없게 되었음이라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악인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 하시니라



  세상에서 사람들은 정상적인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 활동 중에는 죄가 되는 행동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들에게 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그것들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것은 그들의 마음에 그것이 죄라고 판단할 만한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죄를 깨닫는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그는 마음의 기준, 즉 양심의 법에 비추어 보아, 그가 마음에 생각하는 것과 행하는 것이 죄임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는 자신이 죄인이라고 느끼지 않습니다. 그 법에 의해서 자신이 죄인이라고 느끼게 되면 다음으로 죄책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그는 후회와 함께 그것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거나 자포자기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죄책감을 느끼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양심의 법입니다. 법이 있어야만 죄가 되는지 안 되는지를 분간할 수 있습니다. 법이 있는 곳에는 죄도 있습니다. 법이 없으면 죄에 대한 관념도 없습니다.


  죄라는 것은 참 이상한 구석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를 짓는 사람의 양심이 점점 무뎌지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고 방임된 사람들은 죄를 저지는데 서슴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들이 그것이 죄라고 느낀다면, 그들은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니느웨 사람들! 그들은 죄에 의해서 무뎌졌습니다. 더구나 그들이 죄를 범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큰 번영을 누렸습니다. 그들은 연전연승을 거두었고 광대한 제국을 이루었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자부했던 북 이스라엘까지 멸망시켰습니다. 그들은 아주 교만해졌습니다. 그들의 교만의 근원은 그들의 많음과 강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강했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는 아주 미천한 힘을 가진 존재였습니다. 그들은 많음과 강대함을 믿고 교만해져서, 급기야 하나님께서 계시는 예루살렘까지 멸망시키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계획을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너희는 여호와께 대하여 무엇을 꾀하느냐 그가 온전히 멸하시리니 재난이 다시 일어나지 아니하리라”(나 1:9)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완전히 황폐화되는 심판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심판 후에 다시 재난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 우리는 그들이 그와 같은 나라를 다시 이룰 수 없게 될 것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멸망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전과 같은 세계제국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또한 넘어짐의 앞잡이입니다. 인간의 역사를 통틀어서 인간이 교만했는데도 멸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었습니다. 교만하면 일시적으로는 번창합니다. 그러나 그 번창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싫어하시기 때문에 자신이 창조하신 세상을 교만한 자에게 오래 맡기지 않으십니다. 일시적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죄를 범한 사람이나 민족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사용하시기는 하시지만, 그들을 오래 동안 그 자리에 있게 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들도 역시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그들의 행한 일로 인하여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온전하게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을 하신 후에 하나님 자신 앞에서 그들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를 알려주셨습니다. “가시덤불 같이 엉크러졌고 술을 마신 것 같이 취한 그들은 마른 지푸라기 같이 모두 탈 것이거늘”(나 1:10)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가시덤불처럼 엉클어뜨리시고 술에 취한 그들을 마른 지푸라기같이 태워버리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세계 최초의 세계제국을 건설한 나라였습니다. 그들은 많고 강성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가시덤불과 마른 지푸라기로 표현하셨습니다. 이것들은 불을 사르면 순식간에 타버리고 재가 됩니다. 하나님 앞에 그들은 아주 보잘 것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짓밟았고, 그것도 모자라서 교만하게 하나님을 훼방했습니다.


  “여호와께 악을 꾀하는 한 사람이 너희 중에 나와서 사악한 것을 권하는도다”(나 1:11) 하나님께 악을 꾀하는 한 사람이 그들 중에 나와서 사악한 것을 권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구절은 산헤립이 18만 대군을 이끌고 남유다를 침공했던 사건과 관계가 있습니다. 산헤립은 그의 부하들과 함께 대군을 거느리고 유다를 침공하였습니다. 그들은 유다 왕과 백성을 모욕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그들을 건져내지 못할 것이라고 자부하며 하나님을 멸시하고 훼방했습니다. 그들은 이방신들을 섬기고 있는 주변 민족들을 모두 정복했기 때문에 세상의 어떤 신들도 자신들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 신들 중 한 신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들의 연전연승의 기세는 하나님조차 막을 수 없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의 손에 의하여 18만 대군이 하룻밤에 죽었습니다. 18만 대군이면 엄청난 수의 군대인데, 그 많고 강한 군대가 하룻밤에 시체로 변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시덤불과 마른 지푸라기처럼 멸하셨습니다.


  하늘 높은 줄을 몰랐던 그들의 교만이 결국 그들에게 큰 화를 초래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비록 강하고 많을지라도 반드시 멸절을 당하리니 그가 없어지리라…”(나 1:12) 나훔 선지자를 통해서 선포되었던 심판이 그대로 실현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나라인 앗수르 제국의 멸망도 눈앞에 다가 왔습니다.


  그들은 승리감에 도취되어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교회를 마구 짓밟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교회에 강포한 멍에를 매었습니다. 그들의 강포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백성이 수난을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행악에 드디어 분노하시어 그들을 멸하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사악한 멍에를 깨뜨리시고 그들의 결박을 끊으시기로 마음먹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완전히 자유롭게 하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유다 백성이 당했던 수난은 그들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들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고, 그 결과 그들은 앗수르의 속국이 되는 괴로움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악한 자에게 붙이십니다. 그 악한 자에게 붙임을 받게 되어 고통을 받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만약 그러한 상황에 있게 된다면, 빨리 하나님께로 돌이켜야만 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그 사건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그 원인은 자신에게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 바로 본인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시작될 때, 그것을 감지하고 자신의 모든 악행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앗수르 제국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들이 더 강한 줄로 알았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만든 신들에게 그 강함이 나온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아무도 자신들을 이길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까지 훼방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훼방은 엄청난 재앙을 초래했습니다. “나 여호와가 네게 대하여 명령하였나니 네 이름이 다시는 전파되지 않을 것이라 내가 네 신들의 집에서 새긴 우상과 부은 우상을 멸절하여 네 무덤이 되게 하리니 이는 네가 쓸모없게 되었음이라”(나 1:14) 그들이 믿었던 신들의 조각물, 즉 우상들은 그들을 구원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자랑하고 믿었던 그 신들은 그들에게 아무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가증이 여기시는 우상과 거짓신들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악함을 보셨고, 그들을 징계하셨습니다. 산혜립의 18만 대군은 하룻밤에 죽었고, 산헤립은 살아서 돌아왔지만, 그도 역시 그들의 신들에게 분향하다가 자신의 두 아들에게 죽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했던 자들은 모두 멸망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면 아무도 살 수 없습니다.


  사실, 북이스라엘도 하나님을 대적했던 나라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이방신들을 사랑했습니다. 물론 그 시작은 정치적인 이유였지만, 그들은 그들에게 멸망을 안겨다 줄 이방신들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들의 배도는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것을 보면 과거에 아무리 선민이었다고 해서 오늘의 배도가 용서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과거에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다고 해도 오늘 하나님을 떠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신앙에는 처음도 좋아야 할 뿐만 아니라 끝도 좋아야만 합니다. 처음에 아무리 좋아도 끝이 좋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과거에 의인이었다고 해서 오늘의 죄가 용납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면에서 하나님께서는 공평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지은 죄에 따라서 처벌하십니다.


  한 동포였던 남유다도 북이스라엘을 따라 배도한 적이 많았습니다. 북이스라엘과 접촉을 하다보니 그들도 역시 이방신들을 섬겼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자 그들도 역시 앗수르에게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남유다는 북이스라엘과는 달리 항상 배도의 상태에 있지 않았습니다. 배도가 심하게 진행될 때, 종종 경건한 왕들이 등극해서 그 나라를 개혁했었습니다. 그 개혁은 히스기야 왕과 요시아 왕 때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도 역시 하나님으로 버림으로 멸망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이방 사람들의 압제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 사람들에게 압제를 받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의 신들을 섬기는 이방 사람들에게 고통을 받는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일시적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남유다를 앗수르의 압제로부터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앗수르는 멸망했습니다. 일반 세계사에는 앗수르의 멸망의 원인을 그들의 부패와 타락으로 돌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멸망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의 교회를 대적하고 짓밟았기 때문입니다. 그 멍에를 하나님께서 끊으셨습니다. 온 세계의 역사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온 세계의 역사의 주체이십니다. 온 세계의 중심 역사는 하나님의 교회와 연관이 있습니다.


  앗수르의 멸망은 그 나라에 의해서 고통을 받았던 유다에게는 아름다운 소식이었습니다. 그 보다 아름다움 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억압과 착취를 당했던 유다는 앗수르가 멸망한다는 소식처럼 기쁜 소식이 없었습니다. 정복전쟁을 계속해서 했던 앗수르는 유다를 거쳐서 애굽으로 갔습니다. 유다는 그 당시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통로였습니다. 애굽이나 앗수르는 유다를 거치지 않고서는 상대편의 나라로 갈 수 없었습니다. 수많은 정복군이 지나갈 때, 그냥 지나치겠습니까? 그들이 지나갈 때에는 모욕과 고통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세상을 의지하면 고통을 받게 됩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멸시와 고통이 찾아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을 찾아야만 합니다.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나니 내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시 77:1-2) 이 시인처럼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출처 : 하나님은 사랑(요일 4:16)
글쓴이 : 오직은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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