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극/요나

[스크랩] [나훔 1:1-8] 공의의 하나님

은바리라이프 2009. 10. 10. 16:19

[나훔 1:1-8] 공의의 하나님



니느웨에 대한 경고 곧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의 글이라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리는 자에게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한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느니라 여호와의 길은 회오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 발의 타끌이로다 그는 바다를 꾸짖어 그것을 말리시며 모든 강을 말리시나니 바산과 갈멜이 쇠하여 레바논의 꽃이 시드는도다 누가 능히 그의 분노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의 진노를 감당하랴 그의 진노가 불처럼 쏟아지니 그로 말미암아 바위들이 깨지는도다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그가 범람하는 물로 그 곳을 진멸하시고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



  하나님 이 세상은 너무 불공평합니다. 악인이 궤휼한 입을 벌리며 하루 종일 의롭게 살려고 하는 자를 조롱하고 비방하나이다. 그들은 밤새도록 침상에서 간사한 모략과 궤휼을 계획하나이다. 그들의 입은 뇌물을 따라 가고 그들의 길은 사악한 곳으로 굽어져 있나이다. 하나님 왜 그들을 용납하시나이까? 이런 불평은 우리 모두 해 본적이 있을 겁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께서 악인을 용납하시는 것이 너무 불합리하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이러한 일들은 예전에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법이 있어서 어느 정도 그 악을 제어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없었습니다.


  니느웨! 그곳은 예전에 요나 선지자가 하나님께 왜 그곳을 멸하시지 않느냐고 하소연했던 곳이었습니다. 그곳의 포악과 광포가 만연했었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용납하셨느냐고 투정을 부리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가 나훔 선지자에 의해서 선포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던 니느웨는 이전에 선포 받았던 강포를 다시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강포는 더욱 심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완전히 잊어버렸습니다.


  왜 그들이 그렇게 되었을까요? 요나 선지자는 북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 2세 왕이 통치하던 시대에 활동하던 선지자였습니다. 나훔 선지자는 그보다 더 후대인 아하스 왕의 시대에 선지자 활동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요나 선지자보다 더 후대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아 시간적인 흐름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그 시간간격은 대략 70-80년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과 그들의 조상들의 금식과 회개의 사건을 기억할만도 한데, 그들은 그것을 잊어버렸습니다. 망각은 화를 초래한다고나 할까요? 그 교훈을 망각한 니느웨는 또 다시 악을 저질렀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도 하나님의 은혜가 지속적이지 않으면 인간은 부패하기 마련입니다. 이 세상 어느 누가 하나님 없이 온전하게 살 수 있다고 자부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온 우주의 피조물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만 온전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벗어나는 순간부터 피조물은 서서히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사단이 얼마나 사악한지는 직접 경험해 보아야만 합니다. 사단은 아주 교활합니다. 그는 거짓의 아비입니다. 즉 거짓말의 대가입니다. 이간질의 명수입니다. 그의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마치 온 세상이 그의 것인 양 행세합니다. 이것이 사단의 본 모습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교묘하게 그것을 위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 앞에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납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까지 하나님 앞에 훤히 드러납니다.


 니느웨의 악을 보신 하나님께서 심판의 칼을 드셨습니다. 그 심판이 진행되기 전에 하나님께서 나훔 선지자를 통해서 그들의 멸망을 선포하셨습니다. 나훔은 먼저 하나님께서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선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합니다. 무엇에 대한 질투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오직 자신만을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많은 불신자들에게 이런 하나님을 선포하면 냉소적인 되거나 독선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누구신지 몰라서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만을 섬기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완전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완전하시기 때문에 그분만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하시기 때문에 완전한 지혜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 지혜는 온 세계가 질서와 조화가운데서 움직이도록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그 지혜를 받게 됩니다. 그 지혜를 받은 자는 그 지혜대로 행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거대한 질서 속에 한 부분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을 떠나 피조물을 하나님처럼 섬기게 되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서 완전하게 창조되기는 했지만, 완전한 지혜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공급을 받아야만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한 후,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에게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그 십계명 중에서  우상과 연관된 제 3계명을 말씀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 외에 다른 피조물을 절대 섬기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니느웨의 근본적인 악은 우상숭배였습니다. 그들은 십계명을 직접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이방인이었지만, 그들 역시 그 십계명에 따라서 심판을 받아야만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방인이라고 해서 십계명으로부터 제외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도 모두 하나님의 법에 따라서 심판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방인도 모두 하나님의 법에 따라서 처분되었습니다. 그들이 이방인이라고 해서 변명할 여지는 전혀 없었습니다.


  둘째,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거스리는 자에게 보복하시고 진노하시는 하나님으로 선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시는 죄가 있고 하나님께서 용서하시지 않는 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시는 죄는 아무리 주홍같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모두 용서해 주십니다. 그 죄는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죄입니다. 즉 사람과 피조물에 대한 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용서하시지 않는 죄를 범하게 되면 다시 사함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그 죄는 성령을 모독하는 죄입니다. 성령을 모독하면 다시 사함을 받지 못하는 영원한 죄의 상태에 있게 됩니다.(마 12:31, 막 3:29-30) 예수님의 시대 바리새인들이 이와 같은 죄를 범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는 것이 귀신의 힘을 입어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죄였습니다. 또 다시 사함을 받지 못하는 죄였습니다. 그 죄는 하나님의 은혜를 충분히 맞보고 타락한 자입니다. 그는 다시 새롭게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가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히 6:3-6) 하나님의 은혜를 맛본 사람이 다시 타락하면 다시 새롭게 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한 번외에는 다시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다시 새롭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니느웨 사람들이 이와 같은 죄에 빠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아주 노하실만한 죄를 범했습니다. 그 죄는 교회를 유린한 죄였습니다. 이스라엘은 구약시대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그 교회를 잔인하게 짓밟았습니다. 교회를 짓밟는 것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는 대리자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대적하는 자는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보복하시고 진노하십니다. 나훔은 비유적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어떠한 지를 묘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겸비하게 회개하는 자는 용서해 주시지만, 그렇지 않고 악을 저지르는 자에게는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느니라 여호와의 길은 회오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 발의 티끌이로다 그는 바다를 꾸짖어 그것을 말리시며 모든 강을 말리시나니 바산과 갈멜이 쇠하여 레바논의 꽃이 시드는도다 누가 능히 그의 분노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의 진노를 감당하랴 그의 진노가 불처럼 쏟아지니 그로 말미암아 바위들이 깨지는도다”(나 1:3-6)


  하나님의 권능은 대단합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권능인데 오죽하겠습니까? 그 광활한 우주를 만드셨고 경영하시는 분이신데 오죽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면 온 대기는 혼란되며 폭풍우와 광풍이 일어납니다. 회오리바람과 광풍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우리 모두 다 알고 있습니다. 그 위력은 엄청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면 그것들이 일어납니다. 또 구름은 그의 발의 티끌과 같습니다. 하늘을 덮는 구름이 그 분의 발의 티끌과 같은데 그의 발이 하늘을 덮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온 하늘이 덮여 버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다와 강까지 꾸짖어 말리십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산들이 진동합니다. 작은 산들은 녹습니다. 상상을 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나타나실 때 하늘과 땅에서 일어날 소동을 생각해 보십시오. 엄청난 일입니다. 강도가 조금 센 지진도 땅의 모든 것을 파멸시킬 정도로 강한데, 하나님께서 나타내실 때는 어떻겠습니다. 나훔 선지자가 묘사하는 것을 보면 엄청난 소동과 혼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무리 설명해 주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가 마치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노아의 시대에도 그랬지만, 우리의 시대에도 역시 그렇습니다. 사람의 불감증은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막습니다. 더구나 그들이 번영을 누리면 그 정도가 더 강해집니다. 그들의 불감증은 더욱 강해져서 완전히 하나님을 무시합니다. 현세의 쾌락에 붙잡혀 있는 사람들은 그렇습니다. 그들에게 아무리 경고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쾌락에 완전히 물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의뢰하는 자에게는 산성이 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믿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전심으로 매달리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인간은 능력이 없어서 자신에게 전적으로 매달리는 사람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능력에 제한이 없으시기 때문에 자신에게 전적으로 매달리는 자를 멸시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도와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피난처가 되시고 그들의 보호자가 되십니다. 또한 그들에게 자비롭고 인자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이신데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때로 궁핍하고 어렵게 살아도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때, 우리는 불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안타깝게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범람하는 물로 인하여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런데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겠습니까? 여전히 세상을 믿고 의지하겠습니까? 아니면 사람을 의지하겠습니다. 도울 힘이 없는 사람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그분만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믿는 자들을 기뻐하십니다.

출처 : 하나님은 사랑(요일 4:16)
글쓴이 : 오직은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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