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극/요나

[스크랩] [나훔 2:8-13] 세상 영광의 종말

은바리라이프 2009. 10. 10. 16:22

[나훔 2:8-13] 세상 영광의 종말



나훔 2:8-13

니느웨는 예로부터 물이 모인 못 같더니 이제 모두 도망하니 서라 서라 하나 돌아보는 자가 없도다 은을 노략하라 금을 노략하라 그 저축한 것이 무한하고 아름다운 기구가 풍부함이니라 니느웨가 공허하였고 황폐하였도다 주민이 낙담하여 그 무릎이 서로 부딪히며 모든 허리가 아프게 되며 모든 낯이 빛을 잃도다 이제 사자의 굴이 어디냐 젊은 사자가 먹을 곳이 어디냐 전에는 수사자 암사자가 그 새끼 사자와 함께 거기서 다니되 그것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었으며 수사자가 그 새끼를 위하여 먹이를 충분히 찢은 것으로 그 구멍을 채웠었도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 대적이 되어 내 병거들을 불살라 연가가 되게 하고 네 젊은 사자들을 칼로 멸할 것이며 내가 또 네 노략한 것을 땅에서 끊으리니 네 파견자의 목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번쩍번쩍 화려한 네온사인, 시끌벅적한 음식점, 다채로운 옷을 입은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차들, 웅장한 건물 등은 화려한 도시에서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대체로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의 묘미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이 도시의 매력에 반해 그 도시 속에서 동화되어 삽니다. 그러나 정작 도시가 주는 삶은 불쾌하고 더럽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요즘 환경을 개선시키는 학문이 인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사회적인 경향을 보면, 인간이 정말로 무엇을 동경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도시의 화려함에 매료되기는 하지만, 금방 싫증을 냅니다. 자연적이지 않은 인공물들로 가득한 도시는 사람들에게 포근함과 편안함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대체로 도시인들은 쾌락을 쫓아 삽니다. 모두들 그렇게 살고 있으니, 그들은 그것이 마치 옳은 삶이라고 생각하고 믿습니다.


  화려한 성, 니느웨도 그랬을까요?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니느웨가 더 화려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 세계 제국을 건설한 나라는 엄청난 부를 축척했습니다. 물론, 그것들은 식민지가 된 나라들로부터 빼앗은 것들이었습니다. 그 나라에는 금과 은뿐만 아니라 건축, 무기에 사용되는 돌과 철과 같은 천연재료가 풍부했습니다. 또한 그것들을 사용하여 화려한 조형물과 물건들을 만들어내는 노동력 또한 풍부해집니다. 이런 풍부함으로 인해 그들의 문화를 이룩하게 되었습니다. 웅장하고 큰 성읍! 거대한 성과 성벽! 성벽의 둘레가 약 12km, 성내곽의 너비가 45m나 되는 규모였으니 얼마나 큰 성읍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큰 성읍에 금과 은이 풍부했다고 하니 얼마나 화려했겠습니까? 성경에는 금과 은이 무한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금과 은이 무한했다는 것은 그곳이 얼마나 화려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아름다운 기구도 많았다고 합니다.(나 2:10) 니느웨 사람들은 그 화려함과 풍부함에 취해 있었습니다. 보지 않아도 가히 상상이 됩니다. 그들은 화려한 황금으로 만든 신들의 모습, 금과 은으로 만든 조형물, 그러나 그것은 추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부패한 본성을 지닌 인간이 만드는 것들은 겉으로는 화려해 보일지라도, 그것들이 마귀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추한 아름다움을 뿜어냅니다. 그 속에서 취해 있는 니느웨의 왕족과 고관들! 그들은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성취했지만, 그들의 종말은 비참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공평함인가 봅니다. 세상에서 부귀영화와 무한한 권세를 누렸지만, 그 종말은 아주 비참했습니다. 니느웨가 함락된 후, 니느웨는 본격적으로 유린되기 시작했습니다.


  “니느웨는 예로부터 물이 모인 못 같더니 이제 모두 도망하니 서라 서라 하나 돌아보는 자가 없도다 은을 노략하라 금을 노략하라 그 저축한 것이 무한하고 아름다운 기구가 풍부함이니라 네느웨가 공허하였고 황폐하였도다 주민이 낙담하여 그 무릎이 서로 부딪히며 모든 허리가 아프게 되며 모든 낯이 빛을 잃도다”(나 2:8-10) 니느웨, 그곳은 물이 모인 못과 같았다고 합니다. 물이 모인 못처럼 사람들이 많았지만, 적들이 침입하자 그들은 그 적들의 모습에 놀라 도망쳤습니다. 강한 바벨론의 군대 앞에 그들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들이 비록 강했다고 할지라도, 바벨론 군대는 그들보다 더 강했습니다. 그들이 들이닥치자 그 성을 지켰던 병사들도 도망쳤습니다. 그런 상황이니 주민들은 어떤 심정이었겠습니까? 그 주민들은 낙담하여 다리에 힘이 빠져 두 무릎이 서로 부딪혔고, 그들이 힘의 근원이 허리도 아팠습니다. 절망하여 그들의 낯빛은 빛을 잃었습니다. 그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그들을 동정할 일도 아닙니다. 그들이 저질렀던 악을 생각하면 그들이 그렇게 당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고사성어가 있지 않습니까? 니느웨가 바로 그 예에 해당됩니다.


  그러면 그들의 악이 어느 정도였을까요? “이제 사자의 굴이 어디냐 젊은 사자가 먹을 곳이 어디냐 전에는 수사자가 먹을 곳이 어디냐 전에는 수사자 암사자가 그 새끼 사자와 함께 거기서 다니되 그것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었으며 수사자가 그 새끼를 위하여 먹이를 충분히 찢고 그의 암사자들을 위하여 움켜 사냥한 것으로 그 굴을 채웠고 찢은 것으로 그 구멍을 채웠었도다”(나 2:11-12)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잔인성을 ‘사자’라는 맹수로 표현하셨습니다. 사자는 백수의 왕으로서 용맹함과 강함을 상징하고 있어서 사람들은 사자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사자는 아주 무서운 맹수입니다. 사자는 먹잇감을 사냥하는데 날래고 강한 동물입니다. 사자의 힘이 엄청납니다. 그의 날카로운 발톱과 강한 이에 살아남을 수 있는 동물이 없습니다. 또한 사자의 야수성은 먹이로서 목표로 삼은 대상은 인정사정도 봐주지 않고 완전히 부서 버립니다. 사자는 인간처럼 양심이 없기 때문에 그 먹이의 사정을 봐주지 않습니다. 앗수르인들이 ‘사자’로 비유된 것은 그들의 강함과 용맹스러움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맹수처럼 인정사정을 봐주지 않는 잔인한 야수성도 표현합니다. 그들은 다른 민족을 약탈하여 많은 식물을 자신들의 성읍에 쌓았습니다. 그 양이 많았기 때문에 그의 처들과 자신들은 풍족히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그들도 강한 사자처럼 양육되었습니다.


  또 그들은 식물 외에 다른 보화들도 약탈했습니다. 배고픈 사자가 먹이를 찾는 사자처럼 그들을 약탈했습니다. 그들은 약탈한 물건을 니느웨 성읍에 가득 쌓았습니다. 금과 은이 무한하다는 표현은 그들의 약탈물이 얼마나 되는 지 알 수 있습니다. 그곳은 토지가 비옥한 곳이기는 했지만, 그곳에 쌓을 정도로 풍부함 금과 은은 없었습니다. 천연자원이 나지 않는 곳에 그렇게 많은 금과 은이 있으니 당연히 그것들은 다른 곳으로부터 옮겨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노략질해 왔습니다. 그들이 상업을 통해서 얻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풍부하고 화려했던 니느웨가 바벨론의 침략을 당하자 공허하고 황폐화되었습니다. 그들은 침범한 군대는 온 니느웨를 약탈하고 유린했습니다. 보지 않아도 뻔합니다. 갈대아 군대도 잔인한 군대였습니다. 그들도 인정사정없이 니느웨를 유린했습니다. 그들도 철저하게 유린되었습니다. 그들의 왕후가 벌거벗은 몸으로 끌려간 것으로 보아, 그들이 얼마나 큰 치욕을 당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머니를 그렇게 모욕했는데, 그들의 자녀들은 어떠했겠습니까? 그들이 침략당하기 전 그들의 자녀들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두려워할 것이 없었습니다. 두려워할 것이 없으니 그들도 교만했을 겁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자, 그들은 아주 보잘 것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심판이었습니다. 간혹 사람들은 하나님을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으로만 제한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계의 왕들을 통치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통치 영역은 온 우주입니다. 다른 이방 신들처럼 특정한 지역에서만 영향력을 발휘하는 거짓 신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의 일들에 직접 관여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보기에는 하나님께서 관여하지 않으시기 뒤에서 팔짱을 끼시고 보시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직접 온 세상의 통치에 관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람들의 모든 일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앗수르의 교만과 악을 보시고 계시다가 그 때에야 심판의 칼을 드셨던 것입니다. 앗수르의 멸망은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 대적이 되어 네 병거들을 불살라 연기가 되게 하고 네 젊은 사자들을 칼로 멸할 것이며 내가 또 네 노략한 것을 땅에서 끊으리니 네 파견자의 목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나 2:1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타락했을 때에는 앗수르의 편이신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앗수르에게 이스라엘을 붙여서 그들이 고통을 받게 하셨던 것입니다. 앗수르는 이스라엘의 배도를 징벌하시기 위한 징계의 도구였습니다. 누가 이스라엘에게 악한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악한 자들이 아닙니까? 악한 자들은 악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악을 저지르는데 서슴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거리낌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악행을 저지르면서 기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용하여 자신의 백성을 징계하셨습니다. 오늘날이 그 때와 같이 않는다는 것이 다행입니다. 오늘날에는 하나님의 영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 안에 내주하시기 때문에 이스라엘처럼 타락한 상태에 이르지는 않습니다. 그러한 상태에 가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되돌리십니다. 간혹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는 고집을 부리다가 그와 같은 상태에 도달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믿고 의지하는 자를 그와 같은 상태까지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이 니느웨의 멸망 사건처럼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상사도 모두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일어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간섭하시지 않는 사건은 전혀 없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관여하시지 않는 사건이 없습니다. 니느웨의 멸망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병거들과 그들의 용사들이 모두 멸망하게 만드셨습니다. 한 나라의 멸망은 의외로 쉽게 이루어집니다.


  만약 주변에 좋지 못한 일들이 일어난다면, 무엇인가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문제의 원인은 자신에게 있습니다. 자신의 주변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물론 기도가 선행되어야 함은 강조하지 않아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일에는 기도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시지요.


  형통할 때, 조심하십시오. 형통할 때, 그 형통이 노략질에 의한 것인지 아닌지를 알아야만 합니다. 때로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형통한 일에는 불의함으로 인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형통할 때는 항상 하나님을 생각하십시오. 그 때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아멘.

출처 : 하나님은 사랑(요일 4:16)
글쓴이 : 오직은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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