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극/요셉

"하나님의 사랑으로 승화된 레아의 사랑" (창세기 29장 14절~35절)

은바리라이프 2009. 9. 14. 18:36

"하나님의 사랑으로 승화된 레아의 사랑" (창세기 29장 14절~35절)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동안에 우리는 많은 상처와 실망을 갖게 됩니다. 어느 누구나 예외는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런 상처와 실망을 어떻게 극복하고 준비하며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겠습니까?

인생의 깊은 실망은 우리 곁을 떠나려 하지 않습니다. (예: 특히 마음에 상처입은 자들)

이런 실망들이 쌓이고 사람들에게 상처받다 보면 사람들 만나기가 두려워 집니다. 새로운 일들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소극적이고 의심하는 사람이 됩니다. 나의 상처가 나의 마음 문을 닫게 만듭니다. 다른 누구와의 관계를 맺기를 더이상 원치 않게 됩니다. 또 상처 받을 수 있다는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의 상처를 빨리 치료하지 않으며 우리 마음속의 기쁨이 고갈됩니다. 인생을 괴롭고 힘들어하며 후회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 인생을 기쁘게 살아나가던지 슬프게 살아나가던지 하는 선택은 우리의 의지와 생각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삶의 최종 목적이요 선택이 아니면 우리는 기쁨과 슬픔의 연속적인 선택에서 고민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의 기쁨과 슬픔을 달래는 것, 곧 우리의 바람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믿는 사람들의 다른 점은 세상 사람들은 삶의 목적이 자신에 있고, 그리스도인은 주님이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바람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세상적인 욕심과 바람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분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마음을 주님께 향하여야 합니다. 우리 육신의 만족은 우상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 육신의 행복만을 위해서 산다면 우상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마 6:33-34).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바라는 그 이상을 주시기를 원하시는데 그런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이 먼저 하나님께 향하여야 하고 주님이 우리의 가장 최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야곱의 첫부인 레아의 삶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살펴보며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야곱이 에서에 쫓겨 어머니의 오빠인 삼촌 라반을 찾으러 이제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을 향해 길을 떠납니다. 이전의 사건을 살펴보면 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을 우습게 봅니다. 육신의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그의 장자권을 죽 한그릇에 팝니다. 에서가 이렇게 말하죠.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창 25:32).

그리고 야곱에게 축복기도를 뺏기고 야곱을 죽이기까지 미워하게 되고 결국은 부모에게 불순종하며 이방 여인들과 고의로 결혼까지 하고 맙니다. 야곱은 비록 장자권을 형으로부터 죽 한그릇에 사는 기지를 보이고 그것이 비록 속이는 것으로 보일지 모르나 그의 마음속에는 큰 비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결코 이삭을 속이려고 한 것이 아니였습니다.

마태복음 11장 12절에 보면, "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님 침노하는 자는 뺴앗느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려고 힘쓰는 자에게 그 나라를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겠다는 비전으로 형에게 맹세를 받고 장자권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부모의 명을 따라 히브리 여인을 아내로 취하기 위해 하란을 향했습니다. 이런 야곱의 마음과 믿음을 하나님께서 좋게 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야곱을 광야에서 만나주십니다. 지친 야곱이 광야에서 눕게되고 하나님의 사자가 사닥다리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 꿈을 꾸게됩니다. 그 꿈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게됩니다.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house of God)이요 이는 하늘의 문(gate of heaven)이로다 하고 야곱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하나님의 집)이라 하였더라." (창 28:17~19). 그리고 야곱은 기둥으로 세운 베겟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것임을 약속하고 모든 주시는 축복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서원합니다. 그리고 오늘의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31절에 보니 “여호와께서 레아에게 총이 없으심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무자하였더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상처받은 자들을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레아를 보셨다고 했습니다.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한 레아를 불쌍히 바라보셨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의를 위해 핍박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며 우리의 고통 중에 함께 하십니다. 스데반이 돌로 맞아 죽는 순간에 주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서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행 7:55). 하나님께서 레아를 보신것처럼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가장 천한 모습으로 오셔서 불쌍하고 병든 자들 외롭고 소외된 자들을 먼저 찾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레아가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임을 보셨습니다. 그녀의 고통과 고독과 마음의 상처를 보신 것입니다. 사랑받지 못하는 것 만큼 괴로운 것은 없습니다.

레아는 야곱에게 사랑받지 못했지만 하나님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실 때 이렇게 말하죠.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권고하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32절). 혼자 사는 것 보다 더 처절하고 괴로운 것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자와 사는 것입니다. 남편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받아보고 싶은 레아의 심경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아무도 레아의 이런 마음을 비난할 수 없습니다. 그녀의 남편 사랑을 기다리는 마음이 하나님을 움직였고 야곱의 첫아들을 선물로 받게 된 것입니다. 레아는 "하나님께서 나의 괴로움을 보셨다"라고 말하며, 하나님께서 나의 태반을 열어 놓으셨으니 이제 내 남편 야곱의 마음도 열어 놓으실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사람 마음과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첫아들을 안겨 주었지만 야곱은 여전히 레아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때(카이로스)가 아니였던 거죠.

레아는 또 잉태하여 두번째 아들도 낳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임을 들으셨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야곱의 사랑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아들을 낳게 됩니다. 레아가 세번째 아들을 낳고 한 말이 “내가 그에게 세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34절). 그러나 아직도 야곱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귀한 교훈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억지로 사랑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노력으로 얻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이 아니라 마음을 얻어야 되는 거죠.

레아의 한가지 인생의 목적이 있었다면 그것은 야곱의 사랑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문제는 더 심각해졌습니다. 사랑을 얻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더 멀리 도망갑니다. 야곱에게 매력적이지도 못했고 이제 그녀의 마음에 질투의 감정이 크게 일어난 것입니다. 사랑이 질투로 변하면 큰일 납니다. 그래서 의처증, 의부증은 굉장히 무섭습니다. 못생긴 사람과는 함께 살아도 의처증, 의부증 있는 사람과는 함께 못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 번이나 레아를 보셨습니다. 그녀의 아픔을 보셨습니다. 남편의 사랑을 못 얻은 그녀를 이제 하나님께서 대신 사랑하여 주십니다.

레아가 네번째 아들을 잉태하고 낳았을 때 기적이 생겼습니다. 무슨 기적이죠? 은혜의 기적입니다. 레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가자 야곱의 사랑이 더 이상 그녀의 목적이 아닌 걸로 바뀐 것입니다. 그녀의 모든 삶의 목적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승화되었습니다. 이제 레아는 네번째의 아들을 낳고 하나님께 진정으로 찬송하는 예배자가 된 것입니다. 네번째 아들 유다의 히브리어 뜻은 찬송(praise) 입니다.

요한복음 4장 23~24절에,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레아가 그녀의 만족을 위해 애썼을 때, 즉 야곱의 사랑을 위해 모든 노력을 했을 때, 그녀에게 온 것은 실망과 괴로움, 마음의 고통 뿐이였습니다. 인생이 무의미하고 죽고 싶은 심정 뿐이였습니다. 그런 그녀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참 예배자가 되었을 때, 그녀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회복될 때 우리의 모든 근심, 걱정, 염려, 괴로움은 다 사라집니다. 하나님이 다 씻어주십니다. 하나님의 우리에게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능력과 비전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레아는 겉모습은 라헬처럼 아름다우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찬양한 후 내적으로 성숙하고 더 아름다와 졌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진정한 여인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모든 괴로움, 걱정, 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세상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여행, 운동, 텔리비젼 코메디, self-esteem과 성공을 얻기 위해 참여하는 세미나, 프로그램 그런것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령안에서 진정한 예배자가 될 때,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앙망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심령안에 넘쳐 들어올 때, 영과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미할 때, 우리가 진정한 주안에서의 자유를 누리고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27-28절에 보면,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잠원 13장 12절을 다시 보십니다.
“소망이 더디 이루게 되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나니 소원이 이루는 것은 곧 생명나무니라”

하나님 안에서 이루는 소원은 생명이 있습니다.

골로새서 2장 10절에 보면,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아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우리가 성령안에서 기도하며 마음과 입술의 열매를 맺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되어 집니다.

저도 목회하면서 많은 시련과 고통을 많이 겪었습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역이 아니라 사람을 기뻐하는 사역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여러 사역의 상처들을 통해서 하나님 한분만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바꿔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시편 37편 4절에,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마음에 기쁨이 넘칠 때 하나님께서 모든 기도를 들어주실 줄 믿습니다.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럼 레아는 나중에 어떻게 되었죠? 그 질문의 답은 창세기 49장 29-31절에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곳에 장사하였노라”(31절).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의 삶은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했던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받게 되었고 남편 곁에 뭍이게 되었습니다. 레아가 죽을 때 그녀는 하나님을 찬송하며 기쁘게 미소 지으며 하나님의 품으로 갔으리라 믿습니다. 세상의 여러가지로 상처 받으신 여러분 하나님께 찬미하며 새 힘을 얻으시고 기쁘게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참고: 라헬은 베냐민을 낳다고 죽었으며 베들레헴 길가에 장사되었음; 창 35:19)

히브리서 10장 19-25절을 같이 보심으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우리 모두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자가 되기를 주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