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극/요셉

비전8.비전의 2차적 성취(애굽 사회안에서 2)

은바리라이프 2009. 9. 14. 17:32

비전8.비전의 2차적 성취(애굽 사회안에서 2)

안정현 2008-07-26 07:35:40 주소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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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은 꿈해몽 한번 잘해서 미래를 예견한 뒤, 전국에 큰 창고를 짓고 곡식을 쌓아두는 일만 한 사람이 아닙니다. 애굽이라는 대제국의 총리라는 자리는 아무나 될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리고 단순히 창고를 짓는 일에 애굽 왕이 자신의 인장반지를 내어준 것이 아닙니다. 인장반지는 옥쇄와 같은 것입니다. 누구든 요셉의 말을 거역하는 자는 죽을 수도 있는 절대 권력을 바로가 요셉에게 준 것입니다.

왜 바로는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요?

아마도 당시 애굽의 사회구조는 바로가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할 만큼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일은 바로가 요셉에게 인장반지라는 절대 권력, 즉 자신의 전권을 내어주면서 도박을 해야 할 만큼 심각한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요셉에게 절대 권력이 주어졌다는 의미는 그만큼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흉년기간동안 병든 애굽사회를 향한 요셉의 처방은 돈을 받고 곡식을 파는 것이었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간단해 보이지만 간단하지 않은 처방이었습니다. 

창고에는 곡식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습니다. 지난 7년 동안 국민들로부터 거두어들인 세금이었습니다. 얼마나 많았는지 세다가 포기할 만큼의 식량이 있었습니다. 아마 한쪽에서는 썩어 들어가는 곡식도 있었을 것이고 쥐들이 먹어치우는 곡식도 상당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거리에는 굶어죽어가는 아이들도 있었을 런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요셉은 결코 식량을 공짜로 나누어주지 않습니다.

구휼미를 풀자는 치열한 로비도 있었을 것입니다. 요셉을 모함하려는 많은 시도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소신대로 이 정책을 밀고 나갑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돈을 주고 곡식을 사먹었습니다. 돈이 떨어지자 요셉은 가축을 팔아서 곡식을 사먹으라고 말합니다. 다음에는 땅을 팔고, 땅도 없으면 몸이라도 팔아, 국가 노예가 되어서 곡식을 사먹으라고 말합니다.

요셉은 왜 이렇게 무리한 정책을 밀어붙였을까요?


돈을 받고 곡식을 판다는 것이 얼핏 보기에는 가난한 자들에게 더 많은 타격을 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부자들에게 더 큰 타격을 주는 정책이었습니다.

흉년이 계속되면서 애굽의 부자와 귀족들은 가장 먼저 노예들을 풀어줍니다. 뿌린 만큼도 거두지 못하게 되자 생산성이 떨어지는 노예들부터 팔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가축과 땅까지 모두 내어놓습니다.

요셉은 그렇게 풀려난 애굽의 노예들을 ‘애굽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옮깁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땅도 주고, 가축도 주고, 곡식도 주고, 심을 씨앗까지 주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모든 사람들의 신분이 노예로 전락했지만 실은 요셉이 그들에게 자유를 준 것입니다.

이어 요셉은 토지법을 개혁하여 추수의 오분의 일, 즉 20%만 국가에 납부하고 80%는 가지라고 이야기합니다. 20%의 세금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너무나도 파격적인 세금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2003년 예산이 183조입니다. 2002년 세금으로 걷은 돈이 124조쯤 됩니다. 1인당 250만원이 넘는 돈이지요. 4인 가족 기준으로 1년에 약 1,000만 원 이상의 세금을 내게 되어 있고, 2005년부터는 1인당 300만원이상의 세금을 내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20%의 세금은 노예들에게 부과하는 세금치고는 파격적으로 낮은 세금입니다. 일반 평민들이나 귀족들의 세금보다도 더 싼 세금을 요셉은 백성들에게 부과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47장에는 수많은 애굽백성들이 요셉을 찾아와 그에게 절하는 장면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니 우리가 기꺼이 바로의 종이 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애굽 사람들이 요셉에게 절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장면이 열일곱살에 요셉에게 부어진 그 비전이 요셉의 가정뿐 아니라 애굽의 사회구조 속에서도 완벽하게 성취된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열일곱 살의 아직 철부지였던 요셉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행하실 큰 일에 대한 그림의 일부분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