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극/요셉

비전5.비전의 1차적 성취(요셉의 가정안에서 1)

은바리라이프 2009. 9. 14. 17:28

비전5.비전의 1차적 성취(요셉의 가정안에서 1)

안정현 2008-07-26 07:20:38 주소복사
조회 92  스크랩 2

요셉의 비전은 일차적으로 그의 가정과 연관된 것이었습니다. 그의 가정은 하나님의 개입이 필요한 깨어진 가정이었습니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이 젊은 시절 목숨같이 사랑한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7년 동안이나 공짜로 머슴살이를 해도 그녀만 얻을 수 있다면 전혀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바로 라헬입니다. 성경은 야곱이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던지 칠년을 수일처럼 여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7년 후 요셉이 아내로 얻었던 사람은 라헬이 아니라 레아였습니다. 이 동네에서는 동생을 언니보다 먼저 시집보내는 일이 없다는 라반의 말에 야곱은 기가 막힐 따름이었죠. 라반은 어린아이를 달래듯 야곱을 달랩니다. 일주일의 혼인 축제가 끝나면 라헬도 줄 테니 두 아내를 거느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슬쩍 하죠. ‘대신 앞으로 7년을 더 일해야 한다’

라반은 라헬을 향한 야곱의 사랑을 이용하여 14년을 공짜로 머슴 하나 부리게 된 겁니다.

라헬을 향한 그의 사랑, 어쩌면 집착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그 사랑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제안을 받아들이게 했습니다. 야곱은 그렇게 젊은 시절의 십사 년을 한 여인을 얻는데 바치게 됩니다. 그리고 태어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다시 육년을 라반의 양을 치죠.

도합 이십년, 그 긴 세월을 바쳐서 얻은 사람이 바로 라헬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내가 오랫동안 아이를 낳지 못하다가 마침내 그에게 낳아준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아들의 이름이 요셉입니다. 야곱이 요셉에게만 채색 옷을 입힌 것은 인지상정일는지 모릅니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습니다. 이십년을 아낌없이 바칠만한 열정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레아와 그녀의 아이들은 어땠을까요?


레아도 남편의 사랑을 얻고 싶었습니다. 그녀는 야곱에게 아이를 낳아줌으로 남편의 사랑을 얻어 보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첫아들을 낳았습니다. 이름을 르우벤이라 지었습니다. ‘보라 아들이다. 내가 아들을 낳았다’는 뜻이었습니다. 유대 문화에서 아들을 낳아준다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름은 아마도 남편이 이 아들을 통해 나를 사랑해줄 것이라는 소망을 갖고 지은 이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도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번에는 이름을 시므온이라 지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들으셨다는 뜻입니다. 내가 사랑받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나의 간구를 들으셔서 내게 이 아들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남편을 향한 협박과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내가 사랑받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듣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의 의미가 아니었을까요?

세 번째에도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들의 이름은 레위라고 지었습니다. 연합이라는 뜻이죠. 남편에게 아들 셋을 낳아 주었으니 이제 남편이 나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진정으로 연합하게 될 것이라는 소망을 이름에 담았습니다.

네 번째에도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의 이름은 유다라고 지었습니다. 아들을 넷씩이나 주셨으니 이제는 그 하나님을 찬송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레아는 야곱에게 네 아들을 낳아주었고, 몸종 실바를 남편에게 아내로 주어 두 명의 아들을 더 낳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또 두 아들을 더 낳았죠. 레아는 모두 여덟 명의 아들을 남편의 품에 안겨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야곱의 사랑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그녀의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요셉은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가 무언가 잘나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라헬을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에게만 채색 옷을 입혔습니다. 그리고 모든 형제가 들에서 양을 치며 힘든 일을 하는 동안 그는 아버지의 장막에 있었습니다. 

열일곱 살의 요셉은 자신에게 주어진 이러한 특권을 매우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형들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 채 형들이 잘못한 것을 일러바치는 자기중심적인 아이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요셉에게 하나님의 비전이 부어졌습니다.

레아의 아이들은 날마다 들에서 일하느라 하나님도 잘 모르고 비전도 없는데, 요셉은 사랑도 많이 받고, 장막에서 아버지와 함께 하나님 이야기도 많이 듣고, 비전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요셉은 그 비전을 포지션으로 이해하고 형들에게 자랑하기 시작합니다. 당신들이 다 내게 엎드려 절하게 될 것이라고. 나는 위대한 왕이 되고, 당신들은 모두 내 종이 될 것이라고.

만약 당신이 요셉의 형이라면 이런 버릇없는 동생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요셉의 형들은 그를 애굽에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그런 불공평한 하나님이라면 섬기지 않는 것이 낫겠지요. 요셉의 비전은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기는커녕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을 해 버린 것입니다.

제가 요셉의 형이었어도 저는 아무런 주저 없이 그를 애굽에 팔아버렸을 것입니다.

 

* 비전의 원칙

비전은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한 집단 혹은 한 사회의 공동의 소유이다.

비전을 자기 개인의 소유물이나 야망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반드시 요셉처럼 어려운 길을 지나게 된다. 하나님은 비전과 비전의 사람을 통해 세상을 축복하는 데 관심이 있지, 비전 자체가 높아지거나 비전의 사람을 높이는 데 크게 관심이 없다. 기본적으로 그분은 비전의 사람들을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종(Servant)으로 쓰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