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극/요셉

비전7.비전의 2차적 성취(애굽 사회안에서 1)

은바리라이프 2009. 9. 14. 17:31

비전7.비전의 2차적 성취(애굽 사회안에서 1)

안정현 2008-07-26 07:34:48 주소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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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살에 요셉에게 부어졌던 비전은 일차적으로 그의 가정가운데서 성취됩니다. 그러나 요셉의 사역과 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차원에서 요셉의 비전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비전이란 사람들의 눈물과 슬픔, 고통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하나님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람들을 쓰십니다.

그렇다면 요셉이 살아가던 시대의 애굽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총리로서 요셉의 사명은 애굽이 직면한 기근을 해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기근이란 어떤 것일까요? 흔히 기근을 천재지변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천재지변이 아닌 인간이 자초한 재앙인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시대가 혼란할 때 홍수나 기근이 듭니다. 예로부터 태평성대란 농사가 잘된 시대를 말하고, 농사가 잘되기 위해서 치수와 관개는 필수적입니다.

물을 다루는 일은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고, 제때 관리를 해주어야 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사회가 안정되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관리들이 치수나 관개의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알고도 해결하지 않을 때, 책임을 회피하고 개인적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할 때 기근이 들기 시작합니다.

오늘날 북한이 기근에 시달리는 것은 천재가 아니라 인재입니다.

남한에만 비가 많이 오고 북한에는 비가 오지 않아서 수십만 명이 죽어가는 기근이 발생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장기적인 시각을 가지고 그 땅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눈앞의 외화벌이를 위해 나무를 베어내고, 흉하지 않을 정도로만 흙을 덮어두기 때문에 땅이 홍수조절능력을 상실하고 비가 조금만 내려도 홍수가 내리고, 비가 조금만 안와도 가뭄이 들어 기근이 생기는 것입니다.

한 나라에 기근이 든다는 것은 국가나 사회가 장기적인 시각을 가질 여유가 없을 정도로 매우 취약해져 있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합니다.


요셉 시대에 애굽에도 큰 기근이 있었습니다. 7년이나 가는 대기근이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비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기근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기근이 정말 심각하게 받아들여진 것은 사회구조 때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구체적으로 어떤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는지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추진한 개혁의 핵심이 ‘토지법’이었던 것으로 미루어볼 때 아마 소수의 사람들이 땅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소수의 왕족, 귀족들이 대부분의 땅과 가축, 노예들 독점하고 비싼 토지사용료를 받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점점 가난해지고, 부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부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그런 사회구조적인 문제와 연관되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불과 수십년전까지 우리나라에도 ‘소작’이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소작농들이 1년동안 땅을 빌려 농사짓고 나면 지대로 바치는 돈이 얼마였는지 아십니까? 평균적으로 70%를 땅주인에게 갖다 바쳤습니다. 간혹 60%의 지대를 요구하는 맘좋은 주인이 있었고, 황무지를 개간하는 경우 50%의 지대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이는 극히 예외적인 상황이고 일반적으로는 70%를 바쳤습니다.

경주 최부자가 있었습니다. 10대에 걸쳐서 만석지기 부자였습니다. 추수철이 되면 80kg짜리 쌀가마 1만석이 그의 창고에 쌓입니다. 오늘날 80kg 쌀 한가마에 16만원정도 하니까 1만석이면 16억정도의 돈이 들어오는 겁니다.

하지만 200년전 쌀값과 오늘날의 쌀값을 단순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아마도 오늘날의 시세로 하자면 1년에 최소 150억 이상의 돈을 앉아서 벌어들이는 큰 부자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10대에 걸쳐서 그런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 집에는 두가지 가훈이 있는데 첫 번째는 절대 만석이상은 쌓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소작료를 내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적용된 소작료가 60%라고 합니다. 또 한가지의 가훈은 사방 백리내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기근이 들면 큰 솥을 걸고 사람들을 구제하는데 앞장섰다고 이야기합니다.

토지사용에 대한 높은 대가지불은 사회적 이동을 가로막았고, 가난한 사람들이 그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에 있어서 거의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요셉의 정책은 쉽게 설명하자면 중산층 육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요셉은 단순한 꿈쟁이(Visionary)가 아니라 철저한 사회개혁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