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극/요셉

비전6.비전의 1차적 성취(요셉의 가정안에서 2)

은바리라이프 2009. 9. 14. 17:30

비전6.비전의 1차적 성취(요셉의 가정안에서 2)

안정현 2008-07-26 07:21:43 주소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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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비전은 그의 깨어진 가정과 연관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가정을 회복시키기를 원하셨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이 어느 날 꿈한번 꾼 것 때문에 그를 판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언제든지 고의적으로는 아닐지라도 우발적으로 요셉을 죽일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네 아내들의 시기와 알력으로 시작되어 결국에는 서로를 죽이고 종으로 파는 데까지 이를 정도로 심각하게 깨어진 이 가정에 대해 긍휼한 마음을 가지시고 이를 회복시키고 싶어 하셨습니다.

이 비전이 요셉에게 부어진 것입니다.

나이 서른에 애굽의 총리가 되고,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아 키우게 되면서 요셉은 하나님께서 열일곱 살 때 자신에게 보여주신 그 비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갖게 됩니다. 그는 더 이상 비전을 자신이 높아지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며 십자가를 지는 삶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요셉의 변화는 그가 낳은 아이들의 이름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 두 아들을 낳았는데 첫 아들의 이름을 므낫세라고 지었습니다. 므낫세의 이름 뜻은 잊어버리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라는 것이 첫 아들을 낳은 요셉의 신앙고백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고난뿐만 아니라 아비의 온 집에 대해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단순히 꿈자랑을 했기 때문에 팔려온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도 이미 그의 가정은 심각하게 깨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그는 분명히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첫아들을 낳으면서 그는 이제 그 모든 일을 잊기로 결정합니다. 자신을 판 것은 분명 자신의 친 혈육인 형들이었고, 그들은 요셉의 삶에 대해 어떠한 선한 의도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그러한 악한 행동과 의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요셉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둘째 아들을 낳고 이름을 에브라임이라고 지었습니다. 에브라임은 ‘열매를 많이 맺다, 갑절의 땅’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나로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는 것이 요셉의 고백입니다.


가나안 전역에 지독한 기근이 들어 형들이 그를 찾아올 수밖에 없었을 때,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요셉임을 밝히면서 요셉은 형들에게 그렇게 고백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나 근심하지 마십시오. 한탄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 이 땅에 이년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년은 기경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저를 바로의 아비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게 하신 것입니다(창 45:5-8)’

형들이 자신을 팔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섭리가 그를 애굽으로 이끄셨으며 또한 바로의 총리를 삼으셨다고 요셉은 고백하고, 그의 고백은 평생토록 변하지 않습니다.

말년에 야곱이 죽자 형들은 다시 한번 두려움에 휩싸이게 됩니다. 이제 아버지도 죽었으니 혹 요셉이 자신들을 미워하여 자신들이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요셉을 찾아와 아버지께서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라는 유언을 남기셨다고 전하면서 그의 앞에 엎드려 ‘우리는 모두 당신의 종입니다. 우리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 때 요셉은 형들 앞에서 펑펑 울며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제가 하나님을 대신하겠습니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신 것이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들을 기르리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요셉은 진심으로 형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깊은 통찰과, 그분의 비전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계시가 그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요셉의 형들은 열일곱 살에 요셉에게 부어진 그 꿈과 비전처럼 요셉을 둘러서서 진심으로 절하게 됩니다. 애굽의 총리에게 대한 형식적인 절이 아니라 자신들의 모든 허물과 악함을 선으로 갚아준, 자신들의 동생이지만 너무나도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요셉에게 그들은 스스로 절하게 된 것입니다.

야곱의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은 요셉을 통하여 이렇게 성취되었습니다.

열일곱살의 그의 꿈가운데서 보여주었던 미래 일의 한 자락, 즉 그의 가족들이 그를 둘러싸고 절하는 장면은 실제로 그의 인생가운데 성취됩니다. 그러나 그 꿈의 성취는 일반적으로 이해하듯 애굽의 총리가 됨으로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요셉의 비전은 용서와 화해를 통해, 자신을 향해 어떠한 선한 의도도 가지지 않았고 자신을 죽음으로 몬 형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기로 결정하는 일을 통해 일어난 것입니다. 비전의 길은 높아져가는 길이 아니라 낮아져가는 길이며 십자가를 지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