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사도행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노라(행4:13-21)/ 마흔 살이 넘었더라(행4:22)

은바리라이프 2009. 9. 7. 16:41

  말하지 아니할 수 없노라(사도행전4:13-21)
  이진천 [ E-mail ]
  http://www.word365.net/

[요절]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눈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지 너희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노라 하니(19,20)

[읽을거리]

베드로의 변론을 들은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알기에는 어부 출신에 종교적으로 특별할 것도 없는 그가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이 구원자임을 증거하고 있고, 또 많은 백성이 보는 앞에서 병고침의 기적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심문하려던 자들은 전혀 반박할 수 없었고 사도들을 공회 밖으로 내보내고는 자기들끼리 의논을 합니다.

결국 그들이 의논한 내용은 엄하게 위협하여 예수의 이름으로는 결코 말하지 말게 하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베드로의 변론에서 흠을 찾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사도들을 불러 말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는 결코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18)고 말합니다. 진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이 후의 세대에서도 이 진리에 대하여 위협하고 핍박하는 방법 외에는 대적하는 그 무엇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자세는 위협했던 공회의 사람들을 더욱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눈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지 너희가 판단하라"고 말하면서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노라"고 답변합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은 지금 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복음은 그들로 하여금 말하도록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는 타협을 허락하고 있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분명하게 증거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목숨을 돌아 볼 겨를도 없이 더욱 확신에 차서 증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목숨을 돌아보지도 않고 확신에 처해서 복음을 전하는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을 공회의 사람들은 더 이상 처벌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다만 더 위협을 하고는 그들을 풀어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일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이 영광을 돌리는 아름다운 결과가 올 수 있었습니다. 복음 증거가 때로는 우리의 삶을 위협하기도 하지만 보다 담대하고 확신에 차서 선포함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 함께 영광을 돌리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묵상과 기도]

우리는 지금 우리가 가진 복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벅찬 심정을 가지고 있습니까?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말하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지금 세상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오직 복음으로만 증거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의 통하여 나의 지금의 모습들을 비교해 보고 더욱 담대하고 확신에 찬 증인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마흔 살이 넘었더라(사도행전 4:22)
  이진천 [ E-mail ]
  http://www.word365.net/

[요절]
이 병 고침의 기적이 나타난 사람은 마흔 살이 넘었더라(22)

[읽을거리]
사도행전 3장과 4장에 걸쳐서 화제가 되었던 한 사람, 그는 날 때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나아가 마흔 살이 넘었다는 것은 곧 그가 40년이 넘도록 걷지 못하고 남에게 구걸하며 인생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그의 나이를 기록한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삶의 흔적들을 돌아보게 하려 함입니다.

그가 40년을 살아오는 동안 수많은 것들을 목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그가 구걸했던 장소가 성전으로 기도하러 가는 길목의 아름다운 문이라 일컬어지는 곳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는 필시 많은 역사적 사건들을 목격했음이 틀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두 다리는 걸을 수 없었지만 그의 귀는 열려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목격을 했던 것은 비단 기도하기 위해 드나드는 사람들뿐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예수님께서 죽으시기 얼마 전에 성전에 오셨던 일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에 의해서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무엇을 말하셨고, 무슨 일을 하셨는지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다니는 무리들의 행렬도 목격을 했을 것입니다. 그는 성전 안에서 있었던 많은 일들에 관하여 알았고, 예수님에 관해서도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그가 예수님에 관하여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관심은 오직 자신을 향해 던져주는 금과 은, 즉 돈에만 모든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40년이란 세월은 그를 더욱 더 돈에만 의지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가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기까지도 오직 그의 관심은 그가 자신에게 무엇을 줄까? 하는데 있었습니다. 그들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을 때도 무엇을 줄 것인가 하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이 "금과 은은 내게 없거니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했을 때에 그의 삶은 바뀌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 볼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40년의 세월동안 가졌던 모든 생각도 모두 털어 버릴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을 붙들고 더불어 복음을 증거하는, 즉 자신의 나음을 모두에게 알리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의 지난 40년의 세월은 그에게 의미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묵상과 기도]
복음을 알기 전에 나의 생활, 그리고 복음을 알고 난 후의 나의 생활을 비교해 보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가를 진단해 보고 새로운 삶을 통해 보다 풍성한 생활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