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바울

계시로서의 바울의 복음

은바리라이프 2009. 9. 4. 19:21

계시로서의 바울의 복음

갈라디아서는(내가 믿는 바로는)바울이 기록한 최초의 서신서는 아니지만,현존하는 그의 서신서들 중 초기 저작에 속하는 글이다.
이 갈라디아서에서바울은 이렇게 말한다:"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것이 아니라.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갈1:11이하)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구절 중 "예수 그리스도의 "라는 2격 접미사는 다음 15절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목적격으로-즉"그리스도에 관한"이란 뜻으로-사용된 듯하다:"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책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즉 바울의 회개와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를 받았던바,    바로 그때 복음과 아울러 이방인에게 그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모두 받았다.

이처럼 바울의 복음이 계시로 인한 것임을 가리;키는 이 본문을 해석하기에 앞서 받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은,바울이 다른 본문들에서 자신의 메시지 중 어느 면에 자기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있던 사람들에게서 받은" 것임을 시사하는 내용과,그서을 다른 사람들도 이미 익히 알고 믿던 것임을 분명히 증거하는 내용들이다.그런 내용의 본문들은 차후에 살펴보게 될 것이다.하지만,그가 복음을 다른 이들로부터 받았다는 언급들이(갈1:11이하에서 볼 수 있듯이)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받았다는 직설적인 선언과 바울이 서신서들에 병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바울의 사고 속에는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 될 나름대로의 논리가 있음을 개닫게 된다.다라서 그러한 논리의 한 측면만을 강조해, 그것만이 바울의 전부를 대변한다거나 혹은 적어도 바울의 참 모습을 보여 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당치 못한 일이 될 것이다.

볼트만 교수는 갈1:11이하에 소개되는 측면만을 요약함으로써,다음과 같이 바울을 평한다.

개종한 뒤 바울은 예수와 그의 사역에 관한 교훈을 얻기 위해 예수의 제자들이나 예루살렘 교회와 접촉하려고 애쓰지 않았다.오히려 그는 갈 1-2장에서,자신의 독자성을 강변한다.

물런 이 말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만 한 측면에서만 그러핟자.
바울 자신이 갈1:18 이하에 언급하고 잇는 대로 비록 개종 직후는 아니라 하더라도  3년 안에 예수의 제자들을 만났던 사실을,볼크만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차후에 다시 살펴보게 될 것이다.그에 앞서,본장에서는 바울이 계시의 방식으로 받은 복음이 무엇이었는지를 먼저 생각해 보자.

아마 바울이 받은 복음에 관한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계시와 밀접한히 연관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즉, 그것은 "예수는 부활하신 주 이시다."라는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물런 바울이 이런 고백을 하기 이전에 이미 다른 이들도 이 사실을 고백하고 선포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며,바울 자신도 그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그러나 바울이 그들에게 이 계시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오히려 바울은 그들이 이것을 선포하는 행위 자체를 매우 철저한 신성 모독으로 여겼었다."도대체 하나님의 저주-신 21:23이 선포하는 '나무에 달린 자'라는 저주-를 받은 자가 어떻게 그 제자들이 당돌하게 외치고 다니득이 부활의 주,하나님께서 세우신 자,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일 수 있겠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이러한 바울로 하여금 예수께서 부활하신 주이심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경험한 사건뿐이었다.
 
그 사건 이후 예수께서부활하신 주이시라는 사실이 바울이 전한 복음의 본질이 되었으며, 그것은 전적으로 그 사건 중에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인한 것이었다.예수의 생애와 사역에 관한 역사적 지식은,바울이 그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지 차후에 배웠던간에,그 계시에 종속되었다.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께 관한 여타의 모든 지식은 바로 이 사건으로 받은 계시로 인해 의미를 부여받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바울 자신의 증거 이외에도,그가 회개한 후 다메색에서 세례를 받고 행한 일을 가르쳐 주는 행9:20의 "즉시로 각 회당에서'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을 전파하니"라는 말씀에서도 발견된다.그가 어떻게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되었는가?그것은 바울 자신의 말대로 하나님게서"그 아들을.....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기"때문이었다.(갈1:16).계시가 하나님의 역사였다고 한다면 그것을 본 것은 바울의 반응아었다/"내가......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는냐?" 이것이 그의 사도성을 의심하는 자들에 대해 바울이 분개하며 던진 설의법적 질문이었다.(고전9:1)

그는 또한 "보다"라는 동사의 수동태를 사용하여,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뵈온 다른 증인들의 목록에 자신의 개인적 증언을 덧붙였다."맨 나중에....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15:8)

바울의 복음이 지니는 계시의 양상은,:그리스도 안에"라고 명확히 언급한 그리스도인들의 존재 방식에 대한 그의 깨달음과 밀접히 연관된다이러한 깨달음은 다른 사람들을 통한 전승에서 얻은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계시로 인해,그리고 부활하신 주께서 그에게 하신"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행9:4;22:7;26:14)라는 말씀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더 나아가,바울은 복음을 계시로 받은 것으로 생각할 때 그것을 "비밀"이란 단어로 표현하는데,때로는 그 단어를 복음 전체에 적용하기도 하며 때로는 복음이 어느 일면을 가리키는 데 적용하기도 한다.우리는 여기서 분명히 구약 성경 용어인 비밀이란 단어가,전에는 감취었다가 이제 특별한 게시에 의해 밝혀진 하나님의 섭리 중 어떤 국면-특히"말세"에 대한-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복음의 비밀

여러 사본들 중에서 고전2:1을 가장 균형 있게 담고 있는 사실에 의하면,바울은 그가 고린도 교회에 전한 복음을"하나님의 비밀 "(한글개혁 성경-하나님의 증거)이라 일컫는다.이 비밀이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으로 요약된다. 그것이 교인들에게 전해질 때 수사학적 언어가 아닌 평이한 언어로 전해졌으나 능력이 있는 말씀이었고,그로써 그들로 하여금 확산케 하여 구원에 이르게 했다.
그러나 그후에 -아마 그드리 아볼로로부터 웅변적이고도 정교한 해석 설교를 듣게 되었을 때-그들 둥 어떤 이들은 바울의 메시지가 초보적인 것이었다고 느끼기 시작했으며,그 결과 바울이 자신들에게 좀더 "수준 높은"설교를 하지 않는 것이 그의 무관심이나 무능력 대문ㅇㅣ 아니었을가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바울은 무능한 자는 자신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들이라고 단언한다.즉,그들이 바울이 영적으로 충분히 장선한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지혜를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즉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정하신 감취었던 지혜라고 부른다.그러나 분명한 사실은,이 비밀한 가운데 있는 지혜"가 십자가에 목박히신  그리스도에 대한 구원의 메시지에 첨가 되는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바울이 고린 교인들에게 말한대로(고전1:23이하),하나님의 지혜는 바로 십자가에 목박히신 그리스도에 안에 구현된 것이다. 따라서 그 지혜는(십자가에 목박히신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 이외의 잡다한 지식 체계가 아니라),바로 그 계시로 요약되는 하나님 지혜의 보다 상세한 계시로 구성된다.십자가에 목박히신 그리스도를 축으로 한,보다 상세한 계시는 에베소에 잘 나타나 있다.

마찬가지로,로마서 말미의 송영에서도 바울의 복음,즉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이제는 나타나신 바 되엇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하신 바 그 비밀의 계시"와 동일시된다.(롬16:25이하)

이 비밀은 바울이 골4:3에서 말하는"그리스도의 비밀"과 달리 생각할 수 없다.그는 골로새 교인들에게 기도를 권하는 중에,가이사 앞에 서기를 바라는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다;"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그리하면 내가 마당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
"그리스도의 비밀"은 곧 바울에게 맡겨진 복음이란 사실이 이 문맥에서 밝히 드러난다.이 사실은 도한 병행 본문인 엡6:18이하로 확증된다.:"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볻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시이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시되고 성취된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된 가딹에,"그리스도의 비밀"은 곧"복음의 비밀"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의 계시이기도 하다.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서두에서,그들과 라오디오게에 사는 이웃 그리스도인들에게 그처럼 큰 관 신ㅁ을 나타낸 것은 바로 그 사실을 분명히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었다:"이는 저희로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ㄴ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과 모든 보화가 감춰어 있느니라:(골2:1-3)
바울은 어찌하든 자기 교우들을 "골로새 이단"교묘한 유혹으로부터 지키려 애썼다.그리고 가장 효율적으로 그들을 보호하는 길은,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모든 지혜의 실현임이심을,참으로 :신성의 모든 충만"(골2:9)의 실현이심을 깨닫게 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넘어서거나 그리스도와 동떨어진 영적 지식이란 있을 수 없다.본문을 기록하는 방식은 사본들마다 매우 다양하다.어떤 사본들에는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라는 구절 중 2격 크리스투가 생략되어 있어서,마치 바울이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게 하려 함이라.그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춰어 있느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되어 있다.그렇다면 2격으로 기록된 그리스도란 단어는 쓸모 없는 -그러면서도 바울 서신의 가장 오래된 사본이 입증하는 대로 원문에 들어 있는-첨어가 될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전확한 첨어라는 해야 옳다.이 문맥에서 볼 수 있는 대로,"하나님의 비밀"은 그리스도 이외의 다른 아무 것도 될 수 없기 때문이다.바로 그리스도께서 바울이 그의 형제들에게 아리고자 했던,그들 속에 임재해 계신 분으로 알리고자 했던 비밀이다.

목회 서신에서는 이
비밀"이란 단어를 일반적으로 복음을 가리키는 데 사용하며 (이를테면,딤전3:9의 "믿은의 비밀").그 단어를 상세히 풀어 설명할 때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데 사용한다.그 대표적 경우가 딤전 3:16인데,이 본문에서는 "경건의 비밀"을 육신으로 나타내신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신"그리스도로 요약된다.

종말의 비밀

바울은 고전 15장에서 부활에 대해 가르친다.이 본문은 대부분,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이 그리스도의 부활과 철저히 연관되어 있어서 전자를 부인하는 것은 곧 후자를 부인하는 것이며,후자를 믿으면 전자를 믿는 것이라는 논지로 진행된다.그러던 중 바울은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란 말로 새로운 계시를 소개한다(51절).그 "비밀"은 산 자나 죽은 자가 다,완성된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지니게 될 새로운 존재 질서를 유업으로 받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재림시 반드시 겪어야 할 변화에 관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바울의 기르침을 더욱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그리스도의 재림시 성도들의 운명에 대해 가르치는 초기 서신서를 살펴보는 것이 유익하다.

A.D.50년경 바울은 마게도니냐 지방에 위치한 데살로니가를 방문하여 구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다9참조.행17:1-9).그러나 어찌할 수 없는 외부 사정으로 인해,이제 막 믿고 나아온 자들에게 필요하다고 여기던 모든 교훈을 다 전해 주기도 전에 데살로니가를 더날 수 밖에 없게 되었다.이방인의 우상 숭배를 버리고 돌아온 귿ㄹ에게,바울은"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길 것"과 도 "죽운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 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릴 것"을 가르친 ㄳ이 분명하다(살전1:9이하),이 기다리라는 말에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받은 인상은,자신들이 주기 전에 그 대사건을 몯도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로 나타났다.그러나 바울이 떠난 지 얼마 됮 않아,그들 중 몇 사람이 죽었다.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성도들이 죽었다는 것은 그들로서는 미처 예기하지 못했던 일이었으며,따라서 그들 마음속에는 진상을 알고자 하는 심정이 강하게 대두되엇다.그래서 아마 그들이 바울이 아덴에서 보낸 디모데를 통해,이 문제를 바울에게 제출했던 것으로 보인다.본문의 문맥으로 보아,아마 그들은 다음 두 가지 질문을 했던 것 같다.

1.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에 멎저 죽은 성도들은 그분이 재림하실 대 어떻게 되는가?
2.언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가?

바울은 첫번째 질문에 답하면서 재림 전에 죽은 성도들이 재림시에 살아 있는 성도들보다 못할 것이 조금도 없다고 단언한다."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그러면서 그는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실 때,그분의 부르심을 받을 첫번째 대상은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될것이라고 가르친다.그리고 지금 그들은 비록 죽었으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부르실 때 다시 살아나,친히 죽었다가 다시 사신 그분과 함께 살게 될 것이며,"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될 것이라고 가르친다(살전4:16-18).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주의 말씀으로"라는 확신으로써-즉,예수께서 돌아가시기 전네 하신 말씀이나 죽으신 후 어떤 선지자를 통해 하신 그분 말씀의 권위에 근거하여그들에게 전한다.본문은 이처럼"비밀"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으나 내용상 계시에 속한다.물런 본문에 사용된 단어와 상像은 이미 구약 성경에서 나타난 구속과 심판의 신현과 연관된 것들이다.이 구절을 대하면,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국으로 부르는 사27:13의 나팔 소리와,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오는 단7:13의 장면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바울이 이러한 단어와 상으로써 전하고 있는 것은 새로운 것이며,분명히 기독교적인 것이다.즉 예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사신 까닭에 그를 믿다가 죽은 자들도 반드시 그와 함께 살아날 것이며,그의 모든 백성들은 영원히 그와 함께 살게 될 것이다.

언제 재림이 있을 것인가라는 비교적 일반적인 두번째 질문에 데헤서,바울은 예수님의 말씀을 되새기는 것 이상의 답변을 하지 않는다.즉 그 날은"밤에 도적같이"예기치 않게 오리라는 것이다(마24:43이하;눅12:39이하;참조.계16:15).그러므로 그리스도 백성들은 ""깨어 근신"해야 하는데,이는 (바울은 다음과 같이 부연한다)"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하신 것"이기 때문이다.(살전5:1-9).

몇 년 후,바울은"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은 없다"(고전15:12)고 주장하는 고린도 교회의 어떤 교인들에게 대답하는 중에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한다.
그들의 눈에는 부활 교리라고 스스로 이해하는 바'시체들이 다시 생기가 부여될 것'이라는 개념이,아마 바울이 그의 사상 체계 내에서 미처 제거해 내지 못한 불합리한 유대적 미신으로 보였을 것이다. 만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르친 대로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면,왜 더 이상의 부활을 기다려야만 하는가?
죽은 자의 부활의 허구성을 주장하는 이들에 대해 바울이 본문의 문맥에서 간접적으로 답변하는 것은, 이미 부활을 얻기로 작정된 자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인할 생각조차 갖지 않는다믐 것이 분명하다.즉,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인정한다면 논리적ㅇ로 그 백성의 부활도 인정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그리스도의 부활은 그가 재림함으로써 마즈막 원수 사망을 정복하실 때 그 백성들이 누리게 될 보편적 부활의 첫 열매였던 것이다.

바울이 가르치는 이 미래의 부활은 바로 육체를 지닌 부활이었다.
그 때가 오면 현재의 죽을 몸과는 다른 질서를 지니고 잇는 여원히 죽지 않는 부활의 몸을 입을 것이다.현재의 몸은'혼'으로 생기를 지니지만,장차 입게 될 부활의 몸은 신령한 몸이다.바울은 이러한 용어를 사용하여 창2:7에'생령'으로 묘사된 아담의 생명과,부활하심으로써'살려 주는 영'이 되신 그리스도의 생명을 구분한다(고전15:45).하지만 여기서 바울은 약 5년 전에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주었던 확신을 넘어서는 내용을 가르친다.

그 당시 바울은 재림 때까지 살아 있는 자들이 믿음 안에서 먼저 죽는 자들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고 단언했었다.그런데 지금 그는 특별 계시(즉 새로이 드러난 "비밀")에 힘입어,그대 살아 있는 자들도 즉시 변화하여 부활 이후 시대를 살 수 있는 몸을 지니게 될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이다.죽은 자들-즉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바울은 본문에서 오직 그들만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한다.)-이 다시는 썩지 않을 몸으로 바꿔 입게 될 것이다.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도 동일한 강도로"(하늘로서)구원하는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고 가르친다(빌3:20 이하).

이처럼 바울의 사상 기조를 이루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와 그 백성들이 유기적으로 영원히 연합되었기 때문에,그 백성들은 비단 세례를 받으며 기대할 때뿐만 아니라 육신의 부활 시에도 사망을 정복하신 그분의 승리를 반드시 누리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다.이처럼 부활의 성격이 비밀이었다가 밝히 드러났듯이,그리스도와 그 백성들과의 연합의 성격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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