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극/성극선

손현미작가-가마솥에 누룽지

은바리라이프 2009. 6. 22. 15:49

손현미작가-가마솥에 누룽지

가마솥에 누룽지

작가 : 손현미

선교극단 말죽거리 공연작품

나오는 사람들

망구 (하숙집 주인, 65세)

똘바이(덕삼) (싸구려 옷장사, 35세)

땡초(저주) (파계승, 40세)

미자(큰언니) (유흥업소 작부, 34세)

흔숙 (유흥업소 캐셔, 26세)

인영 (배우지망생,22세)

승훈 (똘바이 고용인, 22세)

인재 (대학생, 25세)

대학생 (하숙 신참, 23세)

무대 :

망구의 하숙집 거실

단층집에 왼쪽으로 사다리가 있고 그 위에 다락방이 조그맣게 놓여있다.

중앙 거실을 중심으로 방문이 세 개가 보이고, 식당은 오른쪽으로 놓여 십여 명이 앉을 수 있는 대형식탁이 있으며 부엌살림들이 한쪽으로 설치되어 있다. 좁은 마당과 수돗가, 재래식 화장실.

< 1 장 >

삐걱거리는 수레 무대.

어둠 속에서 중앙에 불이 들어오면 인영, 소파 위에 앉아 연기를 하고 있다. 그릇하나 들고 있다. 양 옆에는 승훈과 흔숙이 손전등을 위에서 인영을 향해 들고 서있다. 나머지 인물들 바닥에 앉아 무대 앞쪽에서 인영을 향해 앉아 있다.

인 영 : (울음과 애절함이 담긴 투로) 전 그때 분명히 봤어요! 그분 모습이 변해 바로 알아보진 못했지만 청아한 음성만큼은 기억하고 있었어요. "평안하뇨?" 주님! 주님이시군요. 주님! 어디로 가세요 가지 마세요, 네? 제발 그분이 떠나시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고통이었는지 당신은 모르실 거예요. 그분...(갑자기 대사를 잊은 듯 당황한 표정.)

인 재 : 그분을 믿고 사랑한 만큼 저의 아픔은....

인 영 : 그분을 믿고 사랑한 만큼 저의 아픔은 너무나도 엄청난 것이었으니까요. 주님, 가지 마세요.. 언제 까지나 제 곁에, 제 영혼 안에 영원히 머물러 주세요. (박수소리 시원치 않게 나온다. '진천댁' 불을 켜고, 나머지는 자리를 정돈하며 앉는다)

망 구 : 좋아 좋아. 그 정도면 망신은 당하지 않겠다.

진천댁 : (혼자말로 궁시렁대며) 난 도대체가 뭔 소리를 떠드는 건지 모르겄구먼.

인 재 : 거 왜 잘 나가다 대사는 까먹고 그래요.

흔 숙 : 긴장이 되니까 그렇죠. 그치?

인 영 : (끄덕이고) 사실 저 이렇게 여러 사람 앞에서 혼자 연기해 본 게 처음이거든요.

미 자 : (자기 방으로 들어가며) 들어가도 되죠? (못마땅한 듯 혼잣말로) 시간이 아깝다....

망 구 : 욕봤다. 약속대로 이달 치 방 값은 까주마. 그 대신 니가 약속한 것두 꼭 지켜야 한다. 알것냐?

인 영 : 노력해 볼께요. 어쨌든 고맙습니다, 할머니. (승훈, 흔숙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며)

흔 숙 : 우리는요?

숭 훈 : 우리도 공연 때 팔 아프게 이거 들고 조명해야 하는데요.

망 구 : (곰곰이 생각하다) 그러니까 진짜로 할 때도 도와주겠다? (승훈, 흔숙 억지로 끄덕) 좋아, 그럼 니들은.. 진천댁! 얘들 아침마다 밥 위에 계란 후라이나 하나 씩 얹어주라 (두 사람 흡족해하며 방으로 들어간다. 진천댁 저녁 준비하러 부엌으로 간다.)

똑바이 : 구경꾼들은 뭐 읍서라?

망 구 : 이런 부자가 될놈 같으니라그, 추수감사절에 교회 가면 떡준다 가 실컷 먹어라. 학상, 학상은 이리 잠깐 와봐.

(똘바이 들어가고 인재, 영문을 몰라하며 소파에 와서 앉는다.)

망 구 : 쟤, 인영인지 마네킹인지. 쟤 말야. 저 정도면 괜찮은 거야?

인 재 : 글쎄요. 뭐 그냥 앞으로 열심히 하면 괜찮을 거예요.

망 구 : 흥할놈. 학상이 말이 그렇게 티미해서 쓰것냐? (사이) 얘기는 괜챦고?

인 재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소망하는 한 여인의 의지를 다룬다는 면에서 교회 연극으로 괜찮.....

진천댁 : (말을 가로채며) 괜찮기는 개뿔이 괜찮유. 그게 뭐여 말도 아니고 노래도 아니구, 그저 쫄쫄 짜믄서 악만 쓰믄 다여? 저 정도 해갖구는 배우는 고사하고 딴따라도 못허것네 그려.

망 구 : 이 쌍것아, 무식하단 소리 듣지 않으려거든 찍소리 말고 일이나 해. 요즘 날이 갈수록 푼수가 늘어. 더위 먹은 게야? 어여 상이나 차려. 식사시간 다 됐어.

진천댁 : (마지막 반찬그릇을 던지듯 놓으며) 다 차렸시유.

망 구 : (수도가 새는 것을 의식하고) 저건 어떤 놈 짓이야? 손모가지 뒀다 뭣에 쑤누.

(모두들 모여 들어 앉는다.)

망 구 : (가운데 자리에 앉아서 모두들 둘러본 후) 뭐야, 한 놈이 어째 또 비는데? 땡초! 땡초 어디 갔어? 학상, 땡초 어찌 된 건가?

인 재 : 예! 그.. 글쎄요. 전 잘....

망 구 : 이 이 자가 이게 필시 바람이 난 게야. 벌써 며칠 째 연락도 없이 끼니를 거르네. (노하여) 진천댁! 땡초 밥 치거라.

(진천댁 밥통에 밥을 다시 쏟는다.)

다들 알지? 제때에 기어들어오지 않으면 죽이구 밥이구 없어. 자! 그럼 기도. 누가 대표...

(모두 이미 고개를 숙였다. 망구 무안한 듯 자기가 기도를 시작한다. 망구가 기도하는 동안 모두 맛있는 반찬을 서로 자기 앞으로 한 사람씩 옮겨놓기 시작한다. 미자, 상관 않고 그냥 계속 밥을 먹는다.)

에휴! 주여. 그저 이 값은 영혼들. 밥이나 쳐 먹고 쌀 줄이나 알지, 세상에 뭐 하나 제대로 갖추지도 못한 가여운 영혼들 구원해 주세요. 밥벌이나 잘 할 수 있도록, 주여 앞날을 축복해 주세요. 이 음식 준비하느라 수고한 우리 진천댁 나날이 건강케 하시고 오늘도 땡초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이 자리를 비웠습니다. 그저 어디서 끼니나 거르고 있지는 않는지, 어쨌거나 알아서 잘 처신하도록 인도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모두 "아멘")

(모두 식사를 시작한다. 망구 미자를 노려보며)

망 구 : 싸가지 없는 년. 어른도 수저를 안 들어서 먼저 먹어? 그저 생긴 모양대로 논다니까.

미 자 : 할머니, 먹을 때 잔소리 좀 그만 둘 순 없어요? 그리고 내 모양 생기는 데 할머니가 보태준 거 있냐구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방으로 들어간다.)

망 구 : 저, 저런.

똘바이 : 할마시, 참으쇼잉. 하루 이틀 겪은 것도 아닝께. 오늘 또 뭐 안 좋은 일이 있나 본께로, 그러려니 하구 그냥 넘기시쇼.

망 구 : (미자 방쪽을 향해) 네년이 그 짓거리 관두기 전에는 절대로 속 편할 날 없다. 아, 직장 바꿔볼 생각은 왜 안허냐. 몹쓸 년 같으니라구. (똘바이를 향해) 네 놈두 저 년이 일하는 데 가 봤냐?

똘바이 : (몹시 당황하며) 미쳤어라. 나가 뭐 땀시 고런 델 간다요. 고런 델 갔다 와뿔면 나가 집에서 얼굴 맞대고 밥이나 먹을 수 있겄소?<br>(흔숙 킥킥대며 웃다가)

흔 숙 : 저 먼저 일어날게요. 늦어서요.

망 구 : 네 년두 똑같애 뭐 해먹을 짓이 없어서 사내놈들 독주 마시는 소굴서 일을 하냐.<br>흔 숙 : 할머니, 전 카운터 일만 봐요. 깨끗하다구요.

망 구 : 아무리 칸탄지 뭔지서 돈만 받는대두 소굴은 소굴이지 별 수 있어?

흔 숙 : 저두 먹고 살아야죠. 거스름 돈을 안 챙겨 가는 손님들한테서 얻는 수입이 꽤 짭짤하거든요. 하숙 비 그 돈 아니면 못 내요. 이 비싼 하숙비 물고 언제 돈 모아서 시집가겠어요. 안 그래요? 할머니? (방으로 들어간다.)

망 구 : 두년이 다 주뎅이만 살아가지구....

인 재 : 할머니! 저 내일 집에 좀 다녀와야 겠는데요.

망 구 : 뭔 일루?

인 재 : 뭐 용돈두 다 됐구. 책 값두 필요하구. 또 부모님 뵌지두 오래됐구 해서요.

망 구 : 순서가 거꾸로 됐어.

인 재 : 네?

망 구 : 대가리가 그만큼 굵었으면 제 손으로 좀 벌어 쓸일이지. 학교 끝나면 만날 쳐노는 게 뭐 잘했다고 번번히 부모님께 손을 내미냐 내밀길.

인 재 : 놀기는요. 장학금을 받기 위해서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어요. 모르세요? 벌써 3년째 계속 장학생으로 학교 다니고 있는걸요.

망 구 : 너처럼 빈둥거리는 녀석한테 장학금 주는 학교는 또 뭐냐? 말이 났으니 말이지 만날 기타나 팅팅거리는 것두 공부냐!

인 재 : 그거야 공부하다 잠시 머리를 식히느라......

망 구 : 싸가지 없는 놈. 어디 어른 말하는데 꼬박꼬박 댓구야 댓구가. 언제 올건데?

인 재 : 내일이 주말이고 월요일 오전엔 수업이 없거든요. 그래서.....

인 영 : (숭늉떠서 들어온다) 이틀이나요?

승 훈 : 집두 먼데 한번 가면 그 정도는 있어야지. 안 그래요

망 구 : 저희 집 간다는데 누가 말려. 너 혹시 딴 데로 새는 건 아니겠지? 어휴, 관두자. 진천댁, 이틀은 한끼 씩 덜 준비해라.

(미자, 흔숙 외출준비를 하고 나온다.)

미 자 : 다녀 올께요.

흔 숙 : 저두요

망 구 : 밤길 조심해 댕겨. 험한 세상에 제 몸 제가 지켜야지. 사내놈들이 더위에 좀 미쳐 날뛰냐!

미 자 : (가소로운 듯 웃으며) 조심할 게 뭐 있어요? 그저 공짜손님 하나 느는 것뿐인데. 그것두 잘 하면 나중에 단골 손님 된다구요.

똘바이 : 워매, 직업 따라서 인자 막 가뿌네잉. 나도 성질 있단 마시!

미 자 : 왜 너 손님으로 안 받아줘서 약 오르니? 웃기구 있어 정말. 야! 술 따르는 년이라구 아무한테나 서비스 하는 줄 알어? 병신 같은게 꼴값하네 정말.

흔 숙 : (당황하여 미자를 끌어내며) 갔다올께요.

똘바이 : (분해 어쩔 줄 몰라하며) 다들 들어지라. 시방 저 여편네가 나한테 하는 말.

미 자 : (밀려나가며) 더 큰 소리로 말해주리? 등신아.

똘바이 : 음마 환장하겄내.

진천댁 : 근게 내가 뭐래유. 애초에 저런 것들을 들여놓아서는 안된다구 했잖유. 그저 집에 뭔 불이 터졌다 하믄 다 저것 때문이구면.

(그때 땡초 슬며시 들어오며)

땡 초 : 마 직업엔 기천이 없는 기라. 저 아가 성격 비뚤어진 건 사실이지만도 우예 직업 때문에 내쫓는다 말이가. 인간이 맘뽀를 그래 쓰면 벌 받는데이.

(인재 얼른 맞이하며)

인 재 : 어디 갔다 이제 오세요? (귓속말로) 망구가 잔뜩 노리고 있어요.

망 구 : (갑자기 벌컥 화를 내며 똘바이를 나무라듯) 똘바이, 너 나 좀 보자. 이 들떨어진 것아, 그런 덴 왜 가서 기웃거려 가지구 망신을 당해! 망신두 공개 망신이야. 너 여기서 다 살래? 수도꼭지 잠궈. 물은 공짜로 펑펑 솟는 줄 알어? (망구 자리를 박차고 나가다 땡초를 힐끔 노려보고는) 으이구 지겨워. 오나가나 한심한 화상들 뿐이니... 진천댁! 밥 안쳐먹었다거든 퍼 줘. 으이그!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땡 초 : (영문을 몰라하며) 지 밥 안 묵었심더.

진천댁 : (투덜대며 밥을 푸러 간다.) 아, 워째 때두 지나서 온 사람을 밥을 주라구 그런댜. 하연간에 종잡을 수 없는 양반이라니께. 아 쬐끔 일찍 좀 오믄 워디가 덧나유? 뭐 때미 늦게 와서 나만 귀찮게현댜. 아무래두 사가 낀겨. 내가 이 짓을 빨리 간 둬야제. 밥 먹다말구 이것이 뭔 짓이여.

땡 초 : 하이고마, 그 양반 밥 한 그릇 주문서 말도 많네. 어차피 줄긴데 기쁜 맘으로 못하는교.

진천댁 : 기쁘긴 쥐뿔이 기뻐유? 뭐 일꺼리두 없이 맨날 그렇게 늦도록 싸댕긴대유.

땡 초 : 내한테 일꺼리가 있는지 없는지 우예 알고 그래 말을 함부로 하노. 일개 아낙이...

승 훈 : 또 시작이네. 한 사람이 좀 지세요. 아, 나이가 드신 분들이 왜 만나면 그렇게 으르렁대요.

땡 초 : 이 봐라 봐라. 니 지금 내한테 훈계하나? 이 얼라도 금시 배워가 이 말버릇 좀 봐라.

진천댁 : 근디 이 양반이 참말로 웃기는구먼 그랴. 시방 쟈 말버릇 없는 것이 나 때미 그렇단 말여?

망 구 : (방에서) 시끄러! 밥상머리가 왜들 그리 소란스러운 게야.

인 영 : 내가 이럴 줄 알았다구요. 결국 오늘도 할머니의 고함으로 저녁 식사시간의 혈전은 또 이렇게 마감하는군요.

진천댁 : 으이그, 내년이 팔자가 센 탓이여. (울음 섞인 목소리로) 서방 복이 없으믄 자식 복이라두 있어야 하는디. 으이그 만복아......

똘바이 : 앗다, 청승 좀 고만 떠쇼잉.

진천댁 : (버럭 화를 내며) 아, 팔자 타령두 맘대루 못혀!

승 훈 : 제발 그만 --- !

무대 어두워진다.

 

 

//이하 파일 다운로드로

가마솥에 누룽지-손현미작가.hwp

 

가마솥에 누룽지-손현미작가.hwp
0.08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