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11장의 원역사의 구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2장 창조이야기
3장 타락이야기1 : 선악과 이야기 (인간내면의 타락)
4장 타락이야기2 : 가인과 아벨 이야기 (인간관계의 타락)
6장 타락이야기3 : 네피림 이야기 (사회구조의 타락)
6-9장 심판이야기 : 노아의 홍수 이야기
11장 계속되는 타락이야기 : 바벨탑 이야기 (삼중타락의 재현)
12장 구속이야기 :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민족역사의 시작
모세가 창세기 1-11장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하나님께서 히브리인인 자신들을 세상의 대안으로 부르셨다는 것이다. 히브리 민족은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는 이들이다. 그런 그들을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이유는 그들을 통해 세상에 당신의 구원을 나타내고 싶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선하고 아름답게 창조하셨지만 인간들은 점점 타락해가고 있다. 타락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 세상을 물로 심판하셨지만, 홍수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의 죄성은 씻겨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이제 우리가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세상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오랜 예정 속에 있었던 일이라는 점, 우리는 타락해가는 이 세상을 향한 마지막 대안이라는 점이 모세가 강조하고 싶은 바이다.
교회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지막 대안이다.
바벨탑 이야기는 홍수 이후에도 인간의 죄가 복합적으로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바벨탑 이야기의 문화적 배경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세계에 있었던 지구라트라는 탑이다. 각 도시에는 지구라트가 있었고 지구라트 꼭대기에는 신전이 있었다. 지구라트는 신이 땅에 내려와서 제일 먼저 쉬는 곳이라고 믿었고 각 도시마다 믿는 신이 다 달랐다.
도시들간의 전쟁에서는 지구라트를 점령하여 그 신전의 신상을 빼앗아 왔는데 그를 통해 승리자의 도시는 더 많은 신들과 교통하고 더 많은 신들의 세계와 통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게 된다고 믿었다. 몇년 전 유행했던 스타게이트라는 미국 TV 시리즈는 이러한 메소포타미아의 신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믿음 때문에 근동에서는 전쟁이 그칠 날이 없었다. 나중에 바벨론은 전세계의 신을 자신들의 신전에 모아 만신전을 완성하게 된다. 바벨론에는 적어도 50가지 이상의 신들이 있었다. 왕들의 첫번째 임무는 신전 건축이었고, 남의 도시를 침략할 때는 이방 신전을 먼저 파괴하고 점령한 나라의 신들을 자신들의 지구라트로 가져갔다.
신을 빼앗긴다는 것은 도시와 국가의 자존심과 통치의 정당성을 상실한다는 의미였기에 각 도시들은 더 높이 성벽과 탑을 쌓으려고 했고, 그를 통해 세상에 흩어짐을 면하고자 했다.
바벨탑과 관련한 랍비들의 독특한 설명들이 있다.
당시 사람들이 동쪽과 서쪽에 7층짜리 탑을 건축했는데 높이는 약 11,200 미터(어떤 번역본은 42,000미터) 였다고 한다. 한 사람이 탑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데 일년이 걸렸고, 사람들이 탑을 오르락내리락하다 넘어져 죽으면 죽은 사람에게는 무관심했지만 벽돌이 떨어지면 앉아서 울었다고 한다. 그 벽돌을 언제 그 자리에 다시 가져다 놓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사람보다 벽돌이 더 중요한 시절이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다. 랍비들은 성경이야기의 주제를 부각하기 위해 관련된 이야기를 지어내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한 이야기를 '하가다'라고 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통해 바벨탑 이야기의 주제가 문명의 방향성과 관련되어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당시 탑을 짓는 일은 거대한 작업이었다. 높은 기술력과 노동력이 요구되는 일이었다. 랍비들은 가난한 자, 병든 자, 고령자를 위하여 집을 건축하거나 도시 안에 더불어 사는 생활여건을 향상시키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려는 목적으로 자원과 노력을 허비한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그 과정에서 모든 이에게 하나의 종교, 세상에 대한 한가지의 견해를 강요했다는 점도 강조한다. 그들은 사상과 토론의 자유를 반대하였고 하나된 사상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짓밟힘을 당했다.
바벨탑 이야기에서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잡하여 흩으신 일은 심판이 아닌 구원을 의미한다. 무의미한 노동에 시달리던 사람들을 자기의 땅으로 돌아가게 되는 계기가 언어의 혼잡, 즉 자유로운 사상의 발현이었다.
이집트에서 국고성과 피라밋을 지으며 무의미한 노동에 시달리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는 기적을 통해 자유의 땅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바벨탑을 짓던 이들은 언어를 혼잡하게 하는 기적적 사건을 통해 구원을 받고 온 땅에 흩어져서 자기다움을 유지하며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탑을 쌓는 것은 죄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자원들이 사람들을 섬기는 데 이용되기를 원하신다.
바벨탑 사건은 홍수 이후 인간들이 여전히 서로를 억압하는 사회구조들을 만들고 그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탑을 쌓는 방편으로 강요되는 '한가지의 유일한 사상'은 매우 위험하다.
지난 수십년간의 투쟁의 결과 오늘날 한국 사회는 자유롭고 다원화 되었으며 민주화된 나라를 이루었다.
'한 하나님, 하나의 교회, 하나의 옳은 생각'은 매우 위험한 사상이다.
주로 교회가 타락할 때,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이단 탄압이라는 명분으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들을 숙청하기 위해 자주 쓰이던 구호가 이것이다.
분명 하나님은 한분이시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억누르는 기제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교회는 사람들의 잠재력과 창조력을 보존하고, 성장시키며, 발전시켜 줄 수 있는 구조와 문화를 형성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성이 존중되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된다.
한국이 그런 나라가 되고, 교회가 그 기초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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