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모세오경

아브라함이야기1 : 히브리인 아브라함

은바리라이프 2009. 6. 7. 14:00

아브라함이야기1 : 히브리인 아브라함

안정현 2008-07-11 15:29:05 주소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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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2장부터 50장까지는 조상들의 이야기이다.

히브리 민족의 역사를 시작했던 세 사람, 즉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12장은 아브라함 이야기의 시작이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 출신이다. 

우르는 BC 25-20 세기에 걸쳐 융성했던 수메르 시대의 다섯 주요 도시 중 하나이다. 모세가 BC 15세기 경 출애굽하고, 애굽에 430년정도 있었다는 표현들이 등장하는 것으로 볼 때 BC 20-21 세기 경 아브라함이 우르를 떠난 것으로 보인다. 시대별로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부르던 말들이 다른데 모세 당시에는 우르 지역을 '갈대아 우르'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갈대아란 바벨론을 뜻하는 표현으로 BC 7세기 무렵부터 등장하는 이름이다. 따라서 이 부분은 BC 7 세기 이후 독자들을 위해 단어를 바꾼 것 같다.

성경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우르'를 떠나 '하란'으로 간 것으로 되어 있다.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하란은 우르를 본따 만든 도시이다. 신화에 따르면 우르는 다른 도시들의 연합군에 의해 패배하여 도시가 파괴되고 유민들은 북쪽으로 이주해 새로운 도시를 만들었는데 그 도시가 하란이었다고 한다. 두 도시는 모두 달의 여신 '난나'를 섬겼다고 한다.

 

창세기 11장에서 데라와 아브라함은 우르를 떠나 하란에 머무른다. 원래는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했던 것 같은데 데리가 하란에 눌러앉는 바람에 데라가 죽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랍비들의 전승에 따르면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만들어 팔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어린 시절부터 '참 하나님은 이렇게 부어 만든 신상일 수는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날 아버지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우상들을 망치로 다 부숴버리고 가장 큰 신상의 손에 망치를 들려 놓았다.

외출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우상들이 다 부서진 것을 알고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아브라함은 '이웃에서 떡을 가져왔기에 신상 앞에 두었더니 신들이 서로 먹겠다고 소동을 벌이다가 결국 제일 크고 힘센 우상이 망치를 들고 다른 신상들을 모두 때려부수고 떡을 차지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아버지 데라가 화가 나서 '사람이 만든 흙덩이 신상이 어떻게 다른 신상을 때려부수고 떡을 먹을 수 있느냐?'고 호통을 치자 아브라함은  '생명이 없는 우상이 어떻게 사람의 생명을 길게 해주고, 복을 가져줄 수 있느냐'고 아버지에게 대답했다고 한다.

 

아브라함은 성경에 등장하는 최초의 히브리인이다.

강을 건너간 사람, 자신이 살던 고향과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새로운 세상을 찾아 떠난 사람이다.

고대 사회에서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강을 건너는 히브리인들에게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정체성의 위기라는 것이 온다. 어렸을 적 함께 놀았던 친구와 더이상 소통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현존하는 세계 속에 자리잡게 되는 것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뿌리가 잘려나간 아픔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

  

여행이 자유롭지 않은 폐쇄된 사회일 수록 나그네에게 더욱 적대적이다. 고대 세계는 여행이 자유롭지 않았고 그만큼 나그네에게 적대적인 세상이었다.

아브라함이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장면에서 많은 사람들은 그의 용렬함을 탓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장면에서 아브라함의 연약함보다 당시 애굽사회가 얼마나 나그네에게 적대적이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아브라함이 사라를 자신의 아내라고 소개했더라도 그들은 사라를 빼앗아갔을 것이다. 어쩌면 정말 아브라함은 죽었을 지도 모른다.

아내를 빼앗긴 경험은 아브라함만의 경험은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억울하게 재산을 뺏기고, 아내를 뺏기고, 누이를 뺏기는 일은 밑바닥 인생을 살던 히브리인들에게는 그리 특별하지 않은 보편적인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모세의 이야기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2008년 초 K국에서 문장로님을 뵙고 온 적이 있다.

한국에서 20년 넘게 YWAM 직장인 DTS를 개척하셨고, 지금은 선교지에서 그 사역을 하고 계신다.

자녀가 셋 있는데 세 분 모두 의사다. 그 중 두 분은 선교사로 헌신하셨고 한 사람은 국내에서 잘나가는 외과의사였다. 그런데 한 자녀가 선교지에서 사고로 순교하자 한국에 남아있던 마지막 자녀가 동생의 자리를 메우겠다며 선교사로 가셔서 자녀 셋을 모두 선교사로 보내셨다.

본인도 70대 중반에 한국 사역을 정리하고 K국에 오셔서 사역하고 계시다. 78 세의 노인이 하루에 너댓시간씩 러시아어 공부하고, 한시간반씩 운동하며 건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계시다. 자주 정전이 되고 난방도 끊어지는 아파트에서 홀로 사시면서 선교를 하신다. 

K국에서는 하루 한사긴씩 KBS 위성방송이 잡히는데 한국어를 듣고 있는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장로님 말씀을 들으면서 눈물이 핑 돌았던 기억이 있다.

아! 선교란 이런 것이구나. '80이 다 된 노인이 스스로 히브리인이 되기로 자처하여 고향과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다른 문화 속에서 낯선 나그네로 살아가며, 그들에게 다가가고 싶어하는 것이 선교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돌아왔다.  

 

아브라함은 75세에 가나안을 향해 떠났다.  

어쩌면 아브라함은 전쟁을 경험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우르가 멸망당하던 그 전투에서 아브라함의 동생이자 롯의 아버지인 하란은 죽었는지도 모른다. 데라는 가족을 데리고 하란이라는 도시로 갔고, 아브라함은 하란도 떠나 가나안으로 향한다.

그들은 전쟁 유민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아브라함이 살던 우르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발달되어 있던 지역이다. 그러나 전쟁의 와중에서 자신이 살아온 문명에 대한 절망감을 안고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며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난 것이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처럼, 그리고 문장로님처럼 75세에도 새로운 일을 시도할 수 있는 열정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 나이에 꼭 선교사로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