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모세오경

타락이야기3 : 네피림 이야기

은바리라이프 2009. 6. 7. 13:40

타락이야기3 : 네피림 이야기

안정현 2008-07-04 17:45:01 주소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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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타락이야기는 창세기 6장의 네피림 이야기이다.

4장에서 가인과 아벨 이야기 이후에는 5장까지 족보가 이어지고, 6장에 들어서야 네피림 이야기가 나온다.

네리핌 이야기는 타락이야기의 결정판이다. 그 이전에도 인간의 타락은 있었으나 6장에 이르러서야 하나님께서 자신이 지으신 세상을 향해 탄식하시고 심판을 계획하시게 된다. 

 

6장 2절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고 되어 있다. 이곳에서 '하나님의 아들'은 누구이고, '사람의 딸'은 누구인지가 의문의 대상이 된다.

본문에 대한 몇가지 설명이 있다. 먼저 하나님의 아들들은 셋의 자손을, 사람의 딸들은 가인의 자손을 의미한다고 설명해 왔지만, 왜 경건한 셋의 후손이 타락한 가인의 후손들보다 악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두번째로 '하나님의 아들'은 천사들을, 사람의 딸들은 인간을 의미한다는 설명이 있다. 그러나 영적인 존재가 결혼하고 자손을 낳을 수 있겠는가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었고, 예수님도 부활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천국에서는 천사들처럼 결혼하지 않는다'고 선언하셨기에 현재 이 이론을 지지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세번째 설명은 하나님의 아들들은 '왕의 아들들'을 의미하고 사람의 딸들은 '일반 백성의 딸들'을 의미한다는 설명이다. 본문에서 하나님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엘로힘'은 우리 하나님으로 번역될 때도 있고, '이방신, 천사, 법관, 왕'등으로 번역될 때도 있다. 번역의 원칙은 엘로힘(복수주어)이 단수동사와 쓰일 때는 우리 하나님을, 복수 동사와 쓰일 때는 이방신이나 왕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본문의 주어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므로, 하나님(엘로힘) 이라는 단어 자체는 동사를 취하지 않는다. 따라서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방신이나 왕으로 번역될 여지가 있다. 물론 원문에는 정관사가 붙은 '하 엘로힘'으로 성경의 다른 본문들에서는 '우리 하나님'을 의미하는 데 쓰인다. 그러나 정관사를 그대로 받아들여 '그 왕들의 아들들'로 번역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따라서 세번째 설명을 받아들일 경우 '왕의 아들들이 일반 백성들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로 해석된다.

인간의 내면에서 시작된 죄가 성장하여 인간관계를 파괴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사회구조에까지 침투하기 시작한다.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마음껏 억압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돈과 땅과 사람(여자)까지도 자기가 원하는대로 취하고, 그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신화를 만들어내는 그런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세상을 심판하시는 시점은 이 때이다. 죄가 사회구조화 되어서 변화의 가능성이 없어질 때 그 때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신다.

 

노아 시절에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지만 그 이후에도 '세상에 대한 심판'이라는 모티브는 사라지지 않고 지속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난 후에는 '땅이 사람을 토해낸다'는 사상이 발전한다. 히브리 사람들에게 이것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것 만큼이나 명확한 명제였다.

왜 그들은 양심의 가책없이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던 땅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을까?

바로 '땅이 사람을 토해낸다'는 사상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죄를 지으면, 땅이 더러워지고, 땅에 죄가 가득하면 그 땅이 거민들을 토해낸다는 것이다.

이 법칙은 히브리 사람들 자신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히브리 사람들의 나라가 망한 이유도 그들의 죄 때문에 땅이 그들을 토해낸 것이라고 믿었다. 

 

땅이 사람을 토해낸다는 사상은 오늘날까지 적용이 가능하다. 

로마가 멸망한 이유로 토지개혁의 실패를 꼽는다. 로마가 주변 여러나라를 성공적으로 통합하게 되면서 많은 국유지가 생기고 이를 개인들에게 불하하여 농사를 짓게 했는데 소수의 상류층들이 너무 많은 토지를 불하받았다. 그리고 넓은 땅에서 노예들을 이용한 대규모 농업을 통해 식량의 대량생산 되었고 이는 농산물 가격의 폭락을 가져왔다.

이는 소규모 자영농의 몰락으로 이어졌고, 이에 개인이 불하받을 수 있는 땅의 규모를 제한하자는 법률이 제안되었는데 그것이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의 실체이다. 그러나 두 형제 모두 살해당하면서 토지개혁운동은 표류하게 되고, 임시 방편으로 군대를 모병제로 바꾸면서 대량의 실업자들을 떠안았으나 이는 군대의 질적 저하를 가져오게 되고, 결국 로마는 멸망을 향해 걸어가게 된다. 로마는 승자독식의 양극화 때문에 멸망을 맞게 된다. 조금만 발걸음을 멈추고, 부자들과 모든 계층들이 자신들의 욕심을 조금만 양보했더라도 나라가 망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는 너무 개인적이고 감정적, 도덕적 차원의 문제인 경향이 있다.

어느 청년의 말처럼 '야동이 나쁘면 부패도 나쁘다' 강단에서 개인의 도덕적 연약함을 공격하는 경우는 많지만 사회구조적 죄에 대해서는 입다무는 경우들이 많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회구조가 타락할 때 하나님은 땅을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시계는 몇 시를 가리키고 있을 지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