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과 아벨 이야기는 두번째 타락이야기이다.
첫번째 타락 이야기인 선악과 이야기에서 죄는 인간의 내면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거절하는 것이었다면 두번째 이야기에서 죄는 인간의 내면에서 튀어나와 인간관계를 파괴시키고 마침내 타인을 살해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가인과 아벨이 각자의 소산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는데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아들여졌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동물 제사를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인데 가인이 곡식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열납되지 않은 것이라고 하지만 레위기의 여러 제사중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가 분명히 있다. 그리고 제사법이 히브리 민족에게 전달되는 것은 모세 시절이다. 따라서 모세보다 먼저 살았던 가인과 아벨은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거절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아벨과 그의 제물은 열납되었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열납되지 않았다'라는 기록을 통해 예배 드리는 자와 그의 제물과의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점만을 밝히고 있다.
성경이 가인의 삶을 명확히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인에게 어떠한 인격적 결함이 있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이 기록을 통해 기독교에서 예배자와 헌물은 둘 다 받아들여질만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만은 명확하게 된다. 하나님은 아무리 많은 제물을 가지고 오더라도 그것을 가져오는 자의 삶이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것이 아니면 제물을 거절하신다는 것이다.
고대의 다른 종교들에서 인간의 의와 경건함은 신에 대한 태도에 달려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인간의 의는 신과의 관계가 아닌 타인들과의 관계, 세상 속에서의 삶과 연관되어 있다. 가인의 제물이 거절당한 이유는 하나님과 관계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타인들과의 관계 혹은 세상 속에서의 윤리적인 삶과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물을 받아들이지 않자 화가 난 가인에게 하나님은 '네가 선을 향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 앞에 엎드리게 된다. 죄는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리라(창 4:7)'는 말씀을 하신다.
죄가 문앞에 엎드린다는 말은 집 앞에 있던 악마상들을 가리킨다.
우리 문화에도 마찬가지지만 고대 근동의 문화에서 집 앞에는 외부로부터 오는 귀신과 액을 쫓는 악마상들이 세워져 있었다. 부적도 동일한 역할을 한다. 인생과 세상의 문제와 화는 밖에서 들어오기 때문에 그것이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그런데 본문은 그러한 문화현상을 조금 비틀어 놓았다. 집 앞에 악마상이 있기는 있는데 그 악마상이 '너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악마상이 바깥을 보고 있지 않고 가인을 바라보고 있다. 이는 문제가 밖에서부터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서부터 밖으로 튀어나오고 있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인간은 늘 문제가 외부에서부터 발생한다고 믿고 싶어한다.
'부모를 잘 만났더라면, 돈이 좀 더 많았더라면, 공부를 좀 더 했더라면, 그 때 그 사람에게 속지만 않았더라면...'하면서 자신에게는 전혀 문제가 없고 언제나 외부에서 문제가 발생한다고 믿고 싶어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의 내면을 들여다보라'고 말씀하신다.
내면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거절한 인간은 자신이 인생과 세상의 주인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모든 것을 자기 중심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자기에게 유익하면 선이고 자기에게 악하면 무조건 악으로 몰아붙인다. 그래서 자기 기준에 맞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생명일 지라도 망설임 없이 없애버린다.
인간의 내면에서 시작된 죄가 이제 인간관계와 세상 속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 죄의 시작과 관련된 신화에는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와 창세기의 타락이야기들을 비교해서 읽어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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