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는 크게 1-11장까지의 원역사와 12-50장까지의 조상들의 이야기로 나뉜다. 원역사는 세상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이고 조상들의 역사는 히브리 민족의 시작 이야기이다. 창조 이야기는 원역사의 첫 시작 이야기이다.
성경의 창조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동의 다른 창조이야기들과 병행하여 읽어야 한다. 모세는 단순히 세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원역사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신화란 고대 사람들이 자신들을 이해하던 방식이다. 신화는 사람들의 삶을 규정하고 사회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오늘날에도 인도사회는 수많은 카스트로 구성되어 있고, 그 카스트는 신화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오경은 근동의 신화들에 대한 히브리인들의 반박과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주는 글로 이해해야 한다. 모세 시절 이집트에 어떠한 신화들이 존재했는지, 그리고 그러한 신화들이 출애굽 1세대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정확하게 분별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근동의 신화들이 거의 비슷한 구조이고 수천년동안 변하지 않고 내려왔으므로 그들과의 비교를 통해 창세기 이야기의 독특성들을 살펴보려 한다.
모세 오경이 BC 15세기 정도의 기록이라면 그보다 1000년전의 기록들이 현재에도 남아 있는데 가장 중요한 기록들은 수메르 토판들이다. 요즘에는 이런 종류의 책들이 많이 나와 있으므로 교양 삼아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나 '수메르 신화'같은 책이 그나마 좋고, 나머지는 별로였던 것 같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창조 이야기에 의하면 옛날에는 신들만이 살았다고 한다. 작은 신들은 수로와 운하에 쌓인 흙을 퍼내야 하는 노동을 감당했으며 큰 신들은 놀고 먹으며 편하게 쉬었다. 작은 신들의 노역은 점점 더 힘겨워졌으며 불평불만에 가득 차게 되었다. 신들은 자신들이 파놓은 흙더미 위에서 투덜거리다가 마침내 연장에 불을 지르고 흙 나르는 바구니를 불태웠다. 그리고 큰 신의 집을 빙 둘러싸고 야유를 퍼부었다.
겁에 질린 큰 신들은 덜덜 떨며 그 연유를 물었다. 감당하기 힘든 노역 때문에 죽을 지경이라는 작은 신들의 후소에 큰 신들의 마음이 움직여 대책을 논의했다. 지혜의 신이 일어나 작은 신들의 노동을 대신할 인간을 만들어 그들에게 멍이를 지우자고 말했다. 큰 신들은 작은 신들 가운데 반란을 도모한 주동자를 색추하여 그를 처형하고 그의 피와 점토를 섞은 다음 그 위에 침을 뱉었다. 이렇게 해서 사람이 만들어졌으며 인간에게는 혼이 있다고 믿었다. (조철수:수메르 신화 중 일부 발췌)
이 신화에 따르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존재한다. 신의 자녀들과 인간들이다. 신과 신의 자녀들인 왕과 영웅들은 놀고 먹기 위해 존재하고, 인간은 그들을 섬기고 노동하기 위해 창조되었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의 시기와 사회에서 인간들은 끊임없이 계급을 나누고, 그 계급을 정당화하기 위해 신화들을 만들어 왔다.
모세의 창조이야기는 이러한 신화들에 대한 도전과 반박의 의미를 지닌다. 창세기 1:26-28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며 세상을 통치하고 다스리기 위해서 창조되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 즉 신의 자녀들로 창조되었다. 모든 사람은 의미와 가치와 목적을 가지고 창조되었다. 이는 왕과 노예가 평등하고, 남자와 여자가 근본적으로 평등하다는 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사상이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 그에게 요청하신 것은 단 한가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것이었다.
성경은 인간의 목적이 신들을 섬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체, 즉 인간 자신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데 가치와 목적이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그 자체가 목적이고 교회이며 하나님 나라이다. 하나님 나라는 인간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존재한다.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내면에서 완성되어지며 생명이 자라 번성하듯 인간 자신으로부터 뻗어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인간은 신들을 섬기기 위한 수단과 도구가 아닌 목적으로 창조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서로를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 인간을 수단이나 도구로 대하는 순간 우리는 길을 잃은 존재가 된다.
생태학 첫 시간에 가르치는 내용 중에 '세상에 잡초는 없다'는 말이 있다. '잡초'라는 이름을 가진 풀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누군가가 자신의 목적을 가지고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다른 풀들을 잡초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농사에 방해되는 모든 풀을 잡초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인간 사회에도 이것이 적용되어진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경제적 능력이 없는 노인, 고아, 과부, 정신지체 장애우들을 '잡놈'으로 여기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늙어서 그런 '잡놈'이 되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연금에 가입하고 저축을 한다. 그러나 연금과 저축이 우리가 '잡놈'이 되는 것을 막아줄 수 있을까?
북미 인디언들은 다운증후군에 걸린 아이들을 '신의 선물'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아이가 한번 웃을 때마다 그 아이의 해맑은 미소를 통해 세상이 밝아진다고 믿었다고 한다. 다운증후군에 걸린 아이들이 더불어 살 수 있는 사회, 히브리인들이 더불어 살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히브리인들의 소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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