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대선지서
겔 33장 말씀을 들었다면 이제 당신 영혼은 당신의 몫이다 (찬 256, 372)[내려받기]1. 이제 33장부터 시작해서 에스겔서는 마지막 부분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에 앞서 하나님께서는 33장에서 에스겔 선지자를 재위임하시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처음에 에스겔이 하나님께로부터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을 때, 파숫군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다시 하심으로써 그렇게 하신다. 3장과 차이가 있다면 3장에서는 에스겔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주신 메시지였지만, 여기서 이 메시지는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전해져야 하는 메시지로 주셨다는 점이다(2). 이 메시지를 통해서 이제 백성들은 수년간 에스겔을 통하여 들었던 메시지에 대하여 자신들이 어떤 책임을 가지게 되는지를 알게 하시는 것이다. 에스겔 선지자는 지금까지 파숫군으로 신실하게 하나님의 경고를 백성에게 전달하였다. 이제 백성들의 차례다. 그들이 에스겔을 말을 듣고 회개하고 돌아올 것인가, 아니면 그 말씀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면서 그대로 살다가 영원한 죽음의 길로 들어갈 것인가는 이제 그들의 몫이다. 그 내용이 10~22절에 강조된다. 백성들은 놀랍게도 자기들의 죄와 허물을 인정하고 있다(10a). 그런데 문제는 자기들의 죄를 인정하는 것은 좋았는데, 이제 자기들은 그 죄 때문에 결국은 망하게 될 것이라고 체념해버린 것이다(10b). 하지만, 에스겔 선지자의 경고는 사실상 악인을 향한 경고 뿐 아니라 돌이켜 하나님께로 오는 자들을 향한 소망의 메시지라는 것을 그들은 알아야만 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은 모든 악인이 돌이켜 구원을 얻는 것이다(11). 그들이 비록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사실만을 믿고 악을 행하다가는 그들이 악 가운데에서 죽을 것이다(12).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에게 주어진 보장을 하나님과 별개로 여기고 살아가기 때문이다(13).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믿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신뢰함으로 살 수 있다. 하나님은 평생에 행한 의와 죄를 달아보시고 많은 쪽에 점수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어떤 태도를 가지고 돌이켰는가에 관심이 있으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그대로 순종했는가의 여부가 바로 죽고 사는 길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것이 공평하지 않은 처사라고 말을 했다(17,20). 하나님은 은혜를 말씀하시지만, 백성들은 공평으로 대답하고 있다. 이것이 오고 오는 모든 시대의 죄인들이 참으로 의롭고 공평하신 하나님께 대하여 가지는 불평이다. 자기가 하나님보다 옳고 하나님을 판단하는 자리에 있으니 어찌 하나님의 은혜로운 말씀이 은혜로 들려질 수 있겠는가?2. 포로된지 12년 10월 5일에 드디어 예루살렘 함락 소식이 바벨론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해졌다(21). 아마도 성이 1년 6개월간을 포위되어 버티다가 결국은 함락되고 피비린내나는 살륙을 겪고서 착고에 채워져 걸어서 바벨론까지 포로로 붙잡혀온 첫 무리들로부터 얻은 소식일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오는 길에서 죽었겠는가? 이 소식은 에스겔 자신에게만이 아니라 바벨론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해졌다. 이 소식이 에스겔 선지자 자신에게 미친 결과는 그의 참 선지자됨이 입증되었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고국에서 예언을 했던 예레미야 선지자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참됨이 입증되었다고 하더라도 결코 그것은 반갑고 기쁜 일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정말 일어나기를 원치 않았던 일이 결국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일로 인하여 에스겔 선지자의 입은 활짝 열리게 되었다(22). 3. 정말 놀라운 일은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제 정말 소망이 다 끊어져버린 듯 한데도, 파괴된 예루살렘의 잿더미 위에 불이 아직 꺼지지도 않았는데 그 폐허가 된 이스라엘 땅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은 옛날에 아브라함 한 사람에게도 이 땅을 하나님이 주셨었는데, 이제 우리는 이렇게 많으니 당연히 하나님이 이 땅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겠느냐는 것이다(24). 이 비참한 폐허에서 그런 작위적인 소망이라도 붙잡아야만 살 소망을 가질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에스겔 선지자는 그런 비참하고도 그릇된 소망마저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뜨려주어야만 했다. 위로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하나님은 희망적인 위로가 아니라 그들의 남은 소망마저 꺼뜨리고 마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아닌 다른데서 얻는 모든 소망과 위로가 있다면 그것이 곧 우상숭배이고 악이기 때문이다. 4. 이제 에스겔 선지자는 사람들의 화제의 초점이 될만큼, 그의 참됨이 입증되었고 더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사람들이 담 곁에, 집 문에 모이기만 하면 에스겔 이야기를 했고 에스겔 선지자의 말씀을 들어보자고 말했다는 것이다(30). 사람들은 에스겔 선지자에 대하여 그는 음악도 잘하고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잘 부른 자라고 추켜 세우기까지 했다(32). 어떤 선지자가 어떤 설교자가 이런 사람들의 말을 기쁘게 듣지 않겠는가?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경고하시기를, 그들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해서가 아니라는 현실을 직시할 때 그것이 기분 좋을 일만은 아니라고 알려주신다(31b, 32b). 그들은 말씀을 듣겠다고 에스겔 선지자에게 나아오지만, 입으로는 사랑을 드러내도 마음에서는 자기 이익만 챙기고 있다는 것이다. 또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결국 순종하는 삶은 없다는 것이다. 이것처럼, 선지자를 좌절케 하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설교자에게 있어서 자신의 메시지를 좋다고 하면서 결코 변화되지 않는 영혼들을 볼 때처럼 좌절하고 낙심하게 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에스겔 선지자는 여전히 사람들의 인기를 모으는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주는 연예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어야 했던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걸어가야 하는 길인 것이다.5. 당신의 태도는 무엇인가? 혹시 하나님을 당신의 잣대로 재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혹시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당신의 이익의 잣대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한다고 하면서도 그 말씀 앞에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순종은 어디에 있는가? 여전히 하나님 외에 헛된 것에 소망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에게 이미 들려졌다면, 이제 당신 영혼에 대한 책임은 당신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6.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저희 영혼에 대한 책임이 저희에게 주어짐을 알게 하시고 그 말씀 앞에 정직하게 순종하는 은혜를 늘 허락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