겔 14장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회개함으로만 나아갈 수 있다 (찬 21, 315)
[내려받기]
1. 어느 날 이스라엘의 장로 두어 사람이 에스겔에게 나아와 그들의 장래에 있을 일들과 특별히 예루살렘의 운명에 대해서 물었던 것같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조국 유다와 예루살렘이 정말 멸망할 것인가, 아니면 자기들이 다시 조국으로 돌아가서 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것을 묻기 위해서 선지자 에스겔에게 나아오는 그 장로들의 내면이 어떤 것인지를 하나님은 먼저 지적하신다. 하나님께 묻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러 나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우상을 섬기는 삶을 뻐젓이 살아가면서 아무런 두려움 없이, 거리낌 없이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할 수 있다면 거기에 하나님은 응답하시지 않으실 것이다. 그들의 태도는 마음에 우상을 두고 죄악을 행하면서도 위급한 때에 ‘자기를 위해서’ 하나님을 찾는 태도이다(7).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이 비록 기도하러 나오고, 선지자에게 물으러 나온다고 할지라도, 쳐서 심판을 행하실 것이다(8). 선지자들은 이렇게 자기들에게 나아오는 자들을 향해서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주려는 유혹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유혹 조차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9).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그 어떤 일도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지만, 하나님이 죄의 원인이라고 말하거나, 죄인이 자기의 죄에 대하여 책임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10). 선지자 자신의 죄악 만이 아니라, 그에게 물으러 온 사람의 죄악도 함께 다 갚아져서 그들은 함께 멸망하게 될 것이다.
2. 포로로 붙잡혀와 있던 사람들의 관심사는 또한 남아있는 자녀들의 운명이었다. 아마도 느부갓네살이 유대인들을 포로로 잡아올 때 부모와 자식을 강제로 분리하여 데려온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유대에서나 바벨론에서 유대인의 반란을 막고자 하는 조치였을 것이다. 그래서 포로로 잡혀온 많은 부모 세대들은 멀리 조국에 있는 자녀들의 운명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반적인 원리로 시작한다. 유대가 아니라 ‘어느 나라’이든지 하나님은 이렇게 행하실 것이라는 말씀이다. 범죄한 나라에는 하나님께서 기근과(13), 사나운 짐승과(15), 칼과(17), 온역으로(19) 심판을 하실텐데, 그 심판이 일어날 때에는 비록 구약의 위대한 의인들인 노아와 다니엘과 욥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자기 생명만을 건질 수 있을 뿐이지, 자기 자녀도 건지지 못할 것이다(14, 16, 18, 20).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칼과 온역,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를 다 쏟아부으셔서 심판을 행하실 것이다(21). 질문을 가지고 나온 장로들에게 에스겔을 통해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은 자비가 아니라 심판이었다.
3. 그런데 그 때 예루살렘이 멸망하면서 죽음을 면하고 사로잡혀오게 될 자녀들이 있게 될텐데 사람들은 그들의 행동과 소위를 보게 된다면 하나님의 심판이 이유없이 내려진 것이 아니며 당연한 것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22~23). 자기들이 보아도 이 타락한 2세들의 행위가 악해도 너무 악하다고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하나님의 심판을 이런 방식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 위로가 될 것이다.
4. 성경 특별히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역사적으로 전해주고 있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심판에서 시작하여 가나안에 있던 모든 족속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잔혹함, 그리고 후에는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까지 말이다. 주님께서도 오셔서 심판날에는 소돔과 고모라가 오히려 아무 것도 아니었다고 느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10:15). 신약성경은 주님이 오실 때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말씀하고 있다. 성도들은 그 날에 하나님의 심판은 지극히 의롭고 참된 것이라는 사실을 다 깨닫고 즐거이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것이다(계 18:20). 하나님의 심판이 성도의 위로가 될 것이다. 지금이야 어찌 이 말씀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본문을 통해서 생각할 것은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는 회개함으로만 나아올 수 있다’는 기본적인 진리이다. 죄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죄와 회개함을 오늘날과 같이 강조하지 않는 시대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오늘 이 본문은 경고가 되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버젓이 죄를 짓고 살면서 경건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는지 생각해보라. 당신은 어떠한가?
5.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 마음에 진정으로 죄악을 미워하고 회개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해서 예비하시고 베풀어주시는 그 풍성하신 은혜를 입고 살게 하여주옵소서. 마지막 날에 임하게 될 심판이 있음을 알고 우리 마음 속에 우상을 몰아내고 오직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누리고 살아가는 은혜를 허락하여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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