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대선지서

겔 12장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해서 망한다 (찬 271, 377)

은바리라이프 2009. 3. 4. 18:15

겔 12장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해서 망한다 (찬 271, 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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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루살렘에서 다시 포로로 살고 있던 그발 강가의 델아빕에 (육이 아니라 영으로) 돌아온 에스겔은 말로는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행위 메시지를 전하게 된다(1~16). 이들은 귀가 있어도 듣지 않고 눈이 있어도 보지 않는 패역한 백성인 것이(1)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부르실 때 말씀하신대로였다(3:5~11). 하나님께서 이런 패역한 백성에게 말이 아니라 행위 메시지를 주시는 이유는 혹시 그들이 이것을 보고 깨닫는 것이 있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3). 에스겔이 명을 받은 행위 메시지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대낮에 짐을 꾸려서 마치 포로로 붙잡혀가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극화하는 것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짐을 꾸렸고 해가 저물 때에 자기 집의 담을 헐어 몸이 나갈만한 구멍을 내고 짐을 가지고 나가되, 얼굴을 가리고 땅을 보지 말며 나가야 했다(4~7).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렇게 행했다. 이를 보고 있는 에스겔의 아내 그리고 적지 않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 것이었을까? 하나님께서는 이튿날 묻는 자들에게 그 행위 메시지의 의미를 설명하라고 명하셨다(9~10). 그 의미는 예루살렘이 그렇게 멸망하게 될 것이고 왕 시드기야는 에스겔이 했던 것처럼 예루살렘 성벽으로 몰래 도망하려 하지만, 결국은 바벨론 군대에 붙잡혀서 눈이 뽑히고 땅을 보지 못하고 포로로 붙잡혀올 것을 예언하고 경고한 것이다(10~13). 결국 예루살렘과 유다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운명은 칼과 기근과 온역에 죽거나 살아남아 포로로 잡혀와서 그들의 죄악상을 자백하게 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결국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일은 그들이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것이다(15, 16, 20).

2. 두번째 행위 메시지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떨면서 음식을 먹고 놀라고 근심하면서 물을 마시는 것이었다(17~20). 이것은 예루살렘의 거민들이 바벨론의 포위를 받고 두려움과 근심 속에서 한 시도 놓이지 못하게 되고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될 것을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3. 이 두 가지 행위 메시지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반응은 ‘선지자의 말은 하나도 이루어지는 것이 없으며, 언젠가 이루어질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먼 훗날의 이야기다’라는 것이었다(22, 27).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이런 말을 하지 못하도록 선지자의 예언은 반드시 이룰 것이며 속히 이루어질 것이라는 대답을 주신다(23, 25, 28).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대하는 이런 태도의 배후에는 거짓 선지자들의 영향이 적지 않았음을 지적하신다(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런 거짓 선지자들과 그들의 예언이 다시는 있지 않도록 그들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제 그들을 향한 심판의 메시지가 에스겔을 통해서 주어지게 될 것이다(13장).

4.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이스라엘 백성이 패역하다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 때문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 때문이었다. 다른 모든 것이 다 온전하게 갖추어졌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판단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한, 이스라엘 백성이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이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사도 베드로도 말세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언제 그 일이 이루어지겠느냐’고 불신의 반문을 하게 될 사람들이 있음을 말씀하였다(벧후 3:3~4).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당신의 마음 속 정직한 반응은 어떤가?

5.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부드럽고 순종하는 마음 주셔서 말씀에 따라 행하고 서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을 경외함으로, 주님의 모든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고 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