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사무엘상

후새와 아히도벨

은바리라이프 2009. 2. 17. 16:09

 

성경이야기 | 김용환

 

다윗 왕에게는 두 사람의 군사전략가가 있었다. 아렉 사람 후새와 길로 사람 아히도벨. 그들은 다윗 왕에게 충성을 다할 뿐만 아니라 탁월한 지혜로 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인재 중 인재다. 특히 아히도벨의 모략은 하나님께 물어 받은 지혜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었는데, 마치 삼국지의 제갈량을 연상케 한다.
그런데, 어느 날 후새와 아히도벨의 길이 나누어지는 갈림길이 나타났다. 다윗 왕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했을 때, 두 사람은 갈라졌다. 아히도벨은 하나님이 다윗 왕을 버린 것으로 보고 압살롬을 새로운 주인으로 섬겼다. 후새는 다윗 왕을 여전히 하나님의 종으로 보았기에, 압살롬의 거사를 반역으로 보았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가?
먼저, “아히도벨은 왕의 모사가 되었고, 아렉 사람 후새는 왕의 벗이 되었고”(대상 27:33)라는 말씀을 주목해 보자. 모사는 직분이고, 벗은 마음의 관계를 말한다. 다시 말해, 후새는 왕과 마음을 주고받는 사이였다. 둘 사이에 옳음과 그름은 별 의미가 없다. 아히도벨은 벗이라는 말이 없고 그냥 모사였다고 한다. 그는 왕과 마음의 관계는 맺어지지 않은 사람이었다. 직분을 열심히 행하지만, 또 한편으로 왕의 옳음과 그름을 마음에서 감시하는 기능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다윗 왕이 우리야의 아내와 범죄한 데에서부터 왕을 판단한 것으로 보여진다. 왕의 아들 암논이 이복동생 다말을 범하고, 그 일로 후에 다말의 오빠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는 일이 일어났다. 그런데다가 드디어 압살롬이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려고 일어났을 때, 그것을 다윗 왕을 향한 하나님의 저주와 징벌로 보았다.
‘다윗, 당신은 이제 끝났다. 하나님이 더 이상 돕지 않는다’
시편에서 다윗은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시 3:2)라고 말했는데, 많은 사람 중에 아히도벨이 있었던 것이다. 아히도벨은 다윗에게 속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와 다윗 사이에는 ‘옳은가, 그른가’가 말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후새를 보자. 다윗 왕은 후새에게 ‘나를 따라오면 내게 누를 끼칠 것이니, 압살롬에게 가서 나를 위하여 아히도벨의 모략을 패하게 하라.’(삼하 15:33,34)고 말했다.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압살롬은 후새가 아버지의 충신인 걸 잘 알고 있었다. 거짓이 탄로 나면 그대로 목숨을 잃는다. 게다가 배신한 아히도벨이 압살롬의 신임을 얻고 있는데다, 그의 완벽한 모략을 파한다는 건 그야말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죽으라는 소리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말하는 다윗 왕도 후새에게 부담이 없었고, 그 말을 따르는 후새도 왕에 대해 부담이 없었다. 친구였기에 마음이 같았던 것이다. 후새도 다윗 왕이 저지른 범죄를 모르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고 범죄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일로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마음을 돌이킨다면 도리어 복이 된다. 다윗 왕은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그대로 받았고, 하나님 앞에 마음을 분명히 꺾었다. 그는 정말 하나님의 종이다’
둘 사이에는 하나님만 존재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연결된 마음의 관계를 중시하고 옳고 그름은 무시한다. 만일 옳음이 작용하고 있다면, 다윗은 후새에게 압살롬에게 가서 아히도벨의 모략을 폐하라고 할 수 없었다. 후새도 그 말을 듣고 ‘나보고 죽으라고? 미쳤다고 그 말을 듣냐? 당신이나 하지’ 하고 거절했을 것이다.
더욱이, 다윗 왕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후새는 하나님이 자신을 돕는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엉뚱한(?) 모략을 제시해서 아히도벨의 좋은 모략을 파했다. 그제서야 아히도벨은 알아챘다. ‘아뿔싸! 하나님이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시는구나! 내가 정말 착각했구나!’ 그런 마음이 들었지만, 아히도벨은 다윗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왕이여, 내가 정말 어리석었고 큰 죄를 저질렀나이다. 불쌍히 여기소서!”
은혜와 긍휼을 구한 것이 아니라 나귀에 안장을 지워 아비 집에 가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왕에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마음을 꺾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것이다. 그는 중심에 자기가 세워진 사람, 스스로 주인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암 3:3)
후새와 아히도벨은 오랫동안 다윗을 섬기는 같은 길을 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마음의 중심이 다름을 드러내셨다.
마음이 다른 것이 바로 죄다. 하나님이 우리를 죄에서 건지심은 우리와 벗이 되고 싶어서다. 마음의 관계를 가지고 싶으신 게다. 우리 자신을 꺾고 우리 마음과 생각을 버려야 그분과 마음이 같아지고 벗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