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사무엘상

시55:12~23/아히도벨

은바리라이프 2009. 2. 17. 15:16

55:12 나를 책망한 자가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진대 내가 참았으리라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가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일진대 내가 그를 피하여 숨었으리라
13 그가 곧 너로다 나의 동류, 나의 동무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
14 우리가 같이 재미롭게 의논하며 무리와 함께 하여 하나님의 집 안에서 다녔도다
15 사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임하여 산 채로 음부에 내려갈지어다 이는 악독이 저희 거처에 있고 저희 가운데 있음이로다
16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17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18 나를 대적하는 자 많더니 나를 치는 전쟁에서 저가 내 생명을 구속하사 평안하게 하셨도다
19 태고부터 계신 하나님이 들으시고 (셀라) 변치 아니하며 하나님을 경외치 아니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리로다
20 저는 손을 들어 자기와 화목한 자를 치고 그 언약을 배반하였도다
21 그 입은 우유 기름보다 미끄러워도 그 마음은 전쟁이요 그 말은 기름보다 유하여도 실상은 뽑힌 칼이로다
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23 하나님이여 주께서 저희로 파멸의 웅덩이에 빠지게 하시리이다 피를 흘리게 하며 속이는 자들은 저희 날의 반도 살지 못할 것이나 나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압살롬이 반역했을 때 다윗의 측근 중 한사람으로서 다윗을 반역한 사람은 아히도벨이었다.
아히도벨은 아주 뛰어난 지략가로서 그가 한 말은 마치 하나님께 받은 말씀처럼 정확했다(삼하16:23)

아히도벨의 아들 엘리암과 손녀사위 우리아는 다윗의 30인 용사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다윗이 자기 손녀와 간음하고 그것을 숨기기 위해 그 남편이었던 우리아를 죽게 만들었다.
그런 다윗을 응징하기 위해 어쩌면 아히도벨은 압살롬을 따라 다윗을 배반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다윗은 이런 아히도벨을 참을 수가 없었다.
너무 기가 막혀 말도 할 수 없다는 다윗의 푸념을 12,13절에서 볼 수 있다.
다윗은 아히도벨을 평소에 얼마나 아꼈고 친밀히 했는지 모른다.
14절은 이를 잘 나타내준다. 다윗은 이런 아히도벨이 산채로 매장되라고 저주하면서 아히도벨을 악하다 했고 자기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니 구원해 주실 거라 말했다.

어찌 보면 이런 다윗의 모습이 가증스러워보인다.
아무리 왕이라지만 치명적인 죄를 범한 죄인 주제에 무슨 할 말이 있다고 아히도벨을 악하다하며 하나님을 향해 기도할 수 있단 말인가.
너무도 뻔뻔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명백하게 하나님 앞에서 배워야할 것이 있다.
주님은 마7:3에서 형제의 눈 속의 티를 보면서 어찌하여 네 눈 속의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셨다.
티는 작은 허물을, 들보는 큰 허물을 가리키지 않는다.
티는 자범죄를, 들보는 원죄를 가리킨다.

다윗의 범죄는 그 크기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그건 티이다.
하지만 아히도벨의 죄는 들보이다.
그것은 형제를 판단하고 정죄하며 심판하려는 원죄이다.
원죄는 자기 기준에 따라 선악을 판단하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가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원색적인 죄요 들보이다.

명분이야 아히도벨이 옳았지만 그는 원죄와 동일한 판단의 죄를 지었다.
물론 티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징계를 하신다.

하지만 우리는 내게 범죄한 형제에게 심판이 아닌 사랑을 보이고 징계도 사랑가운데서 행해야 한다.
다윗은 아히도벨에게 그리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