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사무엘상

<본문> 사무엘하 16장 15절-17장 4절

은바리라이프 2009. 2. 17. 15:54

<본문> 사무엘하 16장 15절-17장 4절

16장 15-19절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던 압살롬은 예루살렘으로 무혈입성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인 다윗 왕이 예루살렘을 떠나 피신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윗 왕은 예루살렘을 떠났지만 여전히 다윗 왕의 세력들은 남아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바로 후새라는 사람이었는데 다윗 왕의 친구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다윗을 위해 예루살렘에 남아 압살롬에게 거짓 충성을 다짐합니다.
 그러자 압살롬은 다윗과 절친한 후새를 못 믿겠다는 듯이 이렇게 말합니다. 17절, “네가 어찌하여 네 친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 압살롬은 자신의 아버지 다윗을 가리켜 ‘후새의 친구’라는 제3자적인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로 보건대 그는 더 이상 다윗을 아버지로 여기지 않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비의 마음은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압살롬이 전쟁에 패해 요압에 의해 죽음을 당했을 때 아버지 다윗의 슬픔은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18장 33절,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남남인 것처럼 말해도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대드는 자식을 향해 ‘내 아들’이라 늘 마음에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아버지 하나님 또한 우리가 매번 죄를 짓고 속을 썩여도 우리를 자녀로 대하시는 가운데 책망하시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16장 20-23절
20절입니다. “압살롬이 아히도벨에게 이르되 너는 어떻게 행할 계략을 우리에게 가르치라.” 명실공히 명령을 내려야 하는 왕의 입장에 있는 압살롬인데도 그의 참모 아히도벨에게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묻습니다. 이런 점에서 압살롬은 왕이 되어선 안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다윗은 예루살렘을 떠나면서 예루살렘 성에로 다시 돌아올 것에 대해 이미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히도벨은 압살롬에게 먼저 아버지 다윗 왕을 욕보이는 짓을 하도록 이끕니다. 아버지 다윗의 아내나 다름없는 열 명의 후궁들과 동침함으로 압살롬과 아버지 다윗 사이가 결정적으로 멀어지게 되어, 압살롬을 따르던 자들이 더 이상 다윗 왕의 영향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리는 의도가 깔려 있었습니다. 이제 다윗 왕은 더 이상 주인이 아니며, 압살롬이 새로운 주인이라는 것을 만 천하에 공포하면, 압살롬을 지지하던 사람들의 입지가 더욱 강화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아버지의 여인과 동침하는 일은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는 일입니다(레 18:7-8). 르우벤도 서모와 동침한 것으로 인해 장자권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아히도벨은 목표를 위해서는 어떤 것도 감행하는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자였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첫 번째 계략을 쫓아 그대로 행했습니다. 심지어, 예루살렘 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다 장막을 치고 거기서 대낮에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이 일을 벌였던 것입니다. 이 같은 행동의 결과는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았던 다윗에 대해 하나님께서 징계를 실현하셨음을 보여줍니다(삼하 12:11~12). 또한 압살롬에게는 앞으로의 그의 실패를 예견하게 해주는 악한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또 하나, 전쟁과 직접 관련이 별로 없는 이 일이 벌어짐에 따라 다윗과 그의 일행은 도망가는 시간을 어느 정도 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쿠데타를 일으켜 예루살렘을 장악한 압살롬과 그의 군대가 신속하게 처리해야 하는 과제는 다윗 왕의 무리를 빠른 시일 내 추적하여 와해시키는 일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압살롬이 다윗의 후궁 열 명과 동침하는 데 어느 정도 시일을 보내게 된 것은 아히도벨의 탁월한 언변술에 말려들었기 때문이라고 본문은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23절, “그 때에 아히도벨이 베푸는 계략은 사람이 하나님께 물어서 받은 말씀과 같은 것이라. 아히도벨의 모든 계략은 다윗에게나 압살롬에게나 그와 같이 여겨졌더라.” 다윗 또한 아히도벨의 말이라면 귀기울여 들었던 것을 보더라도 이제 갓 자칭 왕이 된 압살롬을 말로 주무르기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우리가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 옆에서 모사꾼이라 할 만큼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히도벨처럼 탁월하고 설득력은 있지만 모략 자체가 악랄하고 윤리성에 위배된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거절할 수 있는 영적 용기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한 순간에 잘못된 모사꾼의 말에 휩싸여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죄악의 나래로 빠져든 압살롬의 점철을 밟지 말아야겠습니다.

17장 1-4절
아히도벨은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한 회의 가운데 오늘밤 기습 공격을 제안했습니다. 이미 계속되는 도망의 여정으로 다윗의 군대 자체가 무질서하고 지쳐있을 것이기에, 진을 치고 전투하기보다 국지적인 기습공격이 다윗의 무리들을 두려움과 혼란에 빠뜨릴 수 있을 것이고, 무리들이 와해되어 이리저리 도망가게 되면 다윗 왕 주변도 소홀하게 되어 그를 죽이는 일은 쉬워질 것이며, 백성들 또한 압살롬에게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작전이었습니다. 그러자 회의에 참석한 모두가 그 말에 동의하였습니다.
 아히도벨 또한 이 같은 계획을 성공시킬 자신이 있었습니다. 이미 압살롬에게 충분한 군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오랫동안 다윗과 함께 일하며 그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다윗의 군대는 어린아이와 부녀자들까지 함께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기동력이 매우 떨어져 있었을 것이므로 12,000명이나 되는 정예부대로 급습하면 그를 능히 죽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다윗이 주둔했던 바후림은 예루살렘 가까이에 있는 베냐민 지파 땅이었으므로 예루살렘에서 밤새 쳐들어가면 쉬고 있는 다윗 군대를 위기에 몰아넣을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했을 것입니다.
 아히도벨은 아이러니하게도 신속하게 다윗을 추적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압살롬에게 다윗의 후궁들을 취할 것을 권유하였습니다. 그래서 압살롬은 이 일을 위해 많은 날을 허비했을 것입니다. 다윗을 빨리 쫓아가 그를 잡기 위해서는 이런 주장을 하지 말았어야 했을 것입니다.

 아히도벨은 비록 언변이 뛰어나 압살롬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응답처럼 확신을 가지게 해주었지만 궁극적인 그의 계략들은 악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한 사람의 잘못된 영향력 있는 조언이 공동체를 위기 가운데 몰아넣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오늘 본문은 잘 드러내줍니다. 한 국가를 경영하는 일에도 무엇보다 도덕성이 근본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한 가족이나 공동체를 이끄는 자로서 다윗과 같이 그 가족을 살리고 공동체를 진정 위하는 아비의 심정이 있는 자 그가 이 시대에도 필요합니다.

<오늘의 기도>
아히도벨은 이전에 다윗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다윗의 적이 되어 다윗을 무너뜨리는 데 누구보다도 앞장서고 있습니다. 그의 계략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에 비해 후새는 한번 섬기고자 마음먹은 다윗 왕을 위해 오늘도 자신의 안위도 돌보지 아니하고 적의 심장부에 뛰어들어 살신성인하고 있습니다.
 주님, 오늘도 우리 앞에는 압살롬의 길과 다윗의 길이 놓여져 있습니다. 타협하면 내 눈앞에 평탄한 길이 보이는 쉬운 쪽이 있고, 다른 한 편에는 세속화된 이 시대 속에서 때로는 바보처럼 일편단심 말씀대로만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 길이 있습니다. 다윗처럼 위기 속에서도 타협하지 않고 늘 말씀 안에서 결정하고 행동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