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사무엘상

배신을 노래하는 다윗의 詩의 의미. 압살롬의 죽음.

은바리라이프 2009. 2. 17. 15:06

배신을 노래하는 다윗의 詩의 의미. 압살롬의 죽음.




아히도벨은 본래 다윗왕의 謀士
(모사)
였다.

그의 말은 영향력이 대단하여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처럼 믿고 따랐다.
[삼하 16:23]
그 때에 아히도벨의 베푸는 모략은 하나님께 물어 받은 말씀과 일반이라 저의 모든 모략은 다윗에게나 압살롬에게나 이와 같더라
[공동번역]
그때 사람들은 하느님께 나가 말씀을 받듯 아히도벨의 의견을 받아 들였다. 다윗도 그러했지만 압살롬도 그러하였다.

그는 압살롬이 왕이되어 자신을 부르자 다윗왕을 배신하고 압살롬의 모사가 된다.
[삼하 15:12]
제사 드릴 때에 압살롬이 사람을 보내어 다윗의 모사 길로 사람 아히도벨을 그 성읍 길로에서 청하여 온지라 반역하는 일이 커가매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이 많아지니라.
[삼하 15:31]
혹이 다윗에게 고하되 압살롬과 함께 모반한 자들 가운데 아히도벨이 있나이다 하니 다윗이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하니라.

압살롬은 아히도벨에게  왕권을 어떻게 강화하고 무슨 일을 먼저 해야할지를 묻는다.

그러자 아이도벨은 다윗왕이 남겨두고 간 후궁들을 범하라고 일러주는데 그러면 다윗왕을 싫어하는 백성들이 좋아 할거라고 말한다.

다윗왕의 생애는 끝없는 배신의 연속이다.
그는 시편에서 아히도벨의 배신을 들어서 장차 메시야가 배신을 당할 것을 노래했다.
아히도벨이 다윗을 배신하는 사건은 지혜천사가 하나님을 배신하는 것에 대한 地上的(지상적) 재연이며 장차 가룟유다가 메시야 예수를 배반할 것에 대한 그림자적 사건이 된다.

[시 41:9] .
나의 신뢰하는바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공동번역]
흉허물없이 사귀던 친구마저 내 빵을 먹던 벗들마저 우쭐대며 뒷발질을 합니다.
[시 55:12-14]
나를 책망한 자가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진대 내가 참았으리라.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가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일진대 내가 그를 피하여 숨었으리라.
그가 곧 너로다. 나의 동류, 나의 동무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 우리가 같이 재미롭게 의논하며 무리와 함께 하여 하나님의 집안에서 다녔도다
[공동번역]
나를 모욕하는 자가 원수였다면 차라리 견디기 쉬웠을 것을, 나를 업신여기는 자가 적이었다면 그를 비키기라도 했을 것을. 그러나 그것은 내 동료, 내 친구, 서로 가까이 지내던 벗, 성전에서 정답게 어울리던 네가 아니냐. 홀연히들 사라져 버려라.

위 두 詩句는 아히도벨이 다윗을 배신한 것을 노래하지만 실상은 천사가 하나님을 배신하는 象徵詩(상징시)이다.  (가룟유다가 걸어간길)

하나님의 맏아들 그리스도와 지혜천사는 하나님 안에서 道의 쌍태와 같은 존재이다.
천상에서 지혜천사는 맏아들을 맏아들로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의 지혜를 뽐내다 교만하여 타락하였다. 다윗의 시는 지혜천사와 맏아들 그리스도가 道伴(도반)이요.동료였음을  비유하는 말씀으로 하나님은 다윗의 詩를 통하여 천상에서의 지혜천사의 배신을 폭로하고 있다.
   나는 이것을 보았다.

예수께서도 가롯유다가 배신했을 때 이 시구를 인용하였다.
[요 13:18]
내가 너희를 다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원수가 내 집안 식구라고 한 것처럼 道의 배신행위를 할 자는 가장 가까운 자임을 암시하고 있다. 

다윗에게 아히도벨은 가장 가까운 자로 가롯유다와 같은 배신자였다.

아히도벨은 다윗이 심어둔 모사 후세와의 지혜대결에서 패하므로 낙향하여 목매어 자살하게 되는데 예수를 배신한 가롯유다와 같은 입장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삼하 17:22-23]
다윗이 일어나 모든 백성과 함께 요단을 건널새 새벽에 미쳐서 한 사람도 요단을 건너지 못한 자가 없었더라 아히도벨이 자기 모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기집에 이르러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매 그 아비 묘에 장사되니라.
[마 27:3-5]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이 두 성구를 봐도 아히도벨과 가롯유다는 동격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사단마귀가 더 이상 이용할 가치가 없으므로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하게 함이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떠날 때에 두가지 은밀한 일을 행한다.
하나는 제사장 사독과 그 아들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고 따라나서자 다시 돌아가라 명하는 일이다.
[삼하 15:24-25]
사독과 그와 함께한 모든 레위 사람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다가 내려놓고 아비아달도 올라와서 모든 백성이 성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더니 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궤를 성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얻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다윗이 사독으로 하여금 법궤를 다시 돌려보낸 것은 그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거라는 믿음의 표시인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을 어떻게 연단하시며 자신은 그 연단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 연단을 잘 견디면 다시 예루살렘 성으로 돌아올 것을 믿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아렉사람 후세가 다윗을 좇기를 원하지만 압살롬 밑에 남아서 신하가 되라 명하는 일이다.
이는 후세를 통하여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한 노련한 병법에서 나온다.
[삼하 15:33-35]
다윗이 저에게 이르되 네가 만일 나와 함께 나아가면 내게 누를 끼치리라. 그러나 네가 만일 성으로 돌아가서 압살롬에게 말하기를 왕이여 내가 왕의 종이니이다. 이왕에는 왕의 부친의 종이었더니 내가 이제는 왕의 종이니이다 하면 네가 나를 위하여 아히도벨의 모략을 패하게 하리라.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이 너와 함께 거기 있지 아니하냐. 네가 궁중에서 무엇을 듣든지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고하라

다윗의 예견은 그대로 이루어진다.
압살롬이 다윗을 치기 위해서 아히도벨의 의견을 듣고 후세의 의견도 듣게 되는데 압살롬은 후세의 책략을 듣게 되므로 아히도벨 지혜를 이기게 되며 제사장 사독에게 압살롬의 비밀을 제공하여 다윗의 생명을 보전시킨다.

압살롬에게도 종말은 다가온다.
아비의 하체를 드러난 패룬아에게 하늘이 용서를 하겠는가?
압살롬은 후세의 책략에 따라 다윗을 치게 되는데 패하여 도망을 하다 다윗의 군장 요합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
[삼하 18:9-16]
압살롬이 다윗의 신복과 마주치니라.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 번성한 가지 아래로 지날 때에 압살롬의 머리털이 그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저가 공중에 달리고 그 탔던 노새는 그 아래로 빠져 나간지라. . . .  요압이 가로되 나는 너와 같이 지체할 수 없다 하고 손에 작은 창 셋을 가지고 가서 상수리나무 가운데서 아직 살아 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찌르니 요압의 병기를 맡은 소년 열이 압살롬을 에워싸고 쳐죽이니라

다윗은 명을 내려 압살롬을 죽이지말라 명하였었다. 왜일까?
[삼하 18:5]
왕이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소년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접하라 하니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모든 군장에게 명령할 때에 백성들이 다 들으니라. 이에 백성이 이스라엘을 치러 들로 나가서 에브라임 수풀에서 싸우더니.
[삼하 18:12]
그 사람이 요압에게 대답하되 내가 내 손에 은 천개를 받는다 할지라도 나는 왕의 아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우리가 들었거니와 왕이 당신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하여 이르시기를 삼가 누구든지 소년 압살롬을 해하지 말라 하셨나이다.

위 성구에서 다윗의 父性愛(부성애)를 느낄 수 있다 .
그는 비록 아비를 죽이려는 아들이지만 그를 용서하고 사랑하였다.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압살롬의 이름을 부르며 슬퍼한다.
[삼하 18:33]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의 뿌리가 자기에게 있음을 알고 있다.
그는 우리야의 아내와 통간하고 충신 우리야을 죽게함으로 인하여 아들의 반역사건이 일어남을 통감하고 있었기에 아들을 미워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죽이지 말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압은 다윗의 명을 어기고 압살롬을 창으로 찔러 죽인다.
요압은 압살롬을 죽여 다윗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요압은 먼저도 아브넬을 암살하여 다윗의 저주를 받은 자였는데 왕명을 어기고 압살롬을 죽여 자기의 무공을 자랑하였다.

다윗은 죽을 때에 유언을 하는 중에 솔로몬에게 요압을 반드시 죽이라 하는데 그 이유는 태평성대에 개인의 감정을 앞세워 무고한 피를 흘린 까닭이었다.
[왕상 2:5-7]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장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저가 저희를 죽여 태평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로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 백발로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요압은 다윗의 오랜 군장으로 수많은 전쟁에 참가하여 많은 공을 세우나 다윗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자였으며 아도니아가 반역할때에 참여하였다가 제단 뿔을 붙잡고도 죽임을 당하게 된다.
[왕상 2:28-29]
그 소문이 요압에게 들리매 저가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단뿔을 잡으니 이는 저가 다윗을 떠나 압살롬을 좇지 아니하였으나 아도니야를 좇았음이더라.  혹이 솔로몬왕에게 고하되 요압이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단 곁에 있나이다 솔로몬이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며 가로되 너는 가서 저를 치라.

아무리 무공이 뛰어나 공을 세운다해도 왕의 마음을 헤아릴 줄 모르는 자는 충신이 아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알고 그 뜻대로 행하였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자는 아무리 많은 일을 행하여도 의미가 없다.  요압은 제단뿔을 잡고도 죽임을 당한다.


 
삭제 수정 답변 목록보기
 
  장자가 아니면서 왕위를 계승하는 솔로몬
  형 암논을 죽이고 아버지를 반역하여 스스로 왕이되는 압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