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사무엘상

“자기 무덤을 파는 사람”

은바리라이프 2009. 2. 13. 17:43

“자기 무덤을 파는 사람”

< 사무엘하 16:4-14 >

다윗의 피난길에 고통을 더해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사울이 속한 베냐민 지파 사람인 시므이입니다.

시므이의 저주와 비겁함

시므이는 피난 가는  다위을 향해 온갖 저주를 합니다(7,8절).

그는 사울의 집 사람이었습니다(5절). 사울이 다윗의 그렇게 괴롭혔는데 그 사울의 집 사람 시므이는 다윗이 곤경에 빠졌을 때 또 저주하며 괴롭혔습니다. 사울 집안의 좋지 않은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 두 번 하고 끝내는 저주가 아닙니다.

5절에 “연하여”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가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 계속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13절에 보면 “따라가면서” 저주합니다.

거기다 돌을 던지며 티끌을 날립니다.

6절 “또 다윗과 다윗 왕의 모든 신복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13절 “저를 향하여 돌을 던지며 티끌을 날리더라

그렇지 않아도 곤비한 다윗과 및 그와 함게 한 사람들은 더욱 곤비해졌습니다.

14절 “왕과 그 함께 있는 백성들이 다 곤비하여 한 곳에 이르러 거기서 쉬니라”

다윗이 왕위에 있을 때는 감히 이런 짓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다윗을 두려워하며 숨어 지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힘을 잃었다고 해서 비겁하게 저주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19장에서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을 해결하고 복귀할 때는 가서 엎드려 살려달라고 애원합니다(19:18-20).

얼마나 비겁합니까? 힘이 없을 때는 짓밟고 힘이 있으면 비굴하게 엎드리는 사람입니다.

약한 자는 붙들어주고 격려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힘이 있으면 그 힘으로 약한 자를 붙들어 주는 것입니다. 지친 사람은 격려하고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만일 정말 해야 할 말이라면 힘 있는 자 앞에서도 죽기를 각오하고 말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헤롯에게 옳은 소리 하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비겁한 시므이는 다윗이 힘이 없을 때 비겁하게 저주하다가 비굴하게 무릎 꿇었습니다.

무덤을 판 시므이

이런 시므이의 결말은 어떻습니까?

이렇게 자기가 저주하던 다윗이 다시 회복되는 것만으로도 그는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그는 결국 심판을 받습니다.

시므이는 저주한 다윗이 잘되므로 결국 자기 무덤을 판 것입니다.

시므이의 결말을 보겠습니까?

열왕기상 2장에서 솔로몬에 의해 처단됩니다. 결국 그 죄 값을 치르는 것입니다. 다윗은 죽으면서 솔로몬에게 시므이의 처리를 부탁합니다.

솔로몬은 시므이에게 거주 제한 명령을 내립니다(왕상2:36-38). 그런데 3년 후 그는 도망간 종을 잡기 위해 예루살렘을 벗어났다가 그것으로 인해 죽습니다(왕상2:46).

다윗을 저주하던 시므이는 죽고 시므이가 저주하던 다윗은 복받아 그 아들 솔로몬에 의해 나라는 더욱 견고해집니다.

다윗의 태도

그런데 이런 시므이의 저주를 받았던 다윗의 태도는 어떠합니까?

다윗의 용사들이 시므이를 단 번에 처리하려고 했습니다(9절).

그러나 다윗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시므이를 통해 저주하시는지 어떻게 알겠냐는 것입니다.

10절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11절,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 두라”

또 아들도 나를 죽이려고 하는데 하물며 시므이야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11절 “또 아비새와 모든 신복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그리고 하나님께 맡깁니다.

12절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내가 억울함을 당한다면 감찰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자세하게 살피시고 기억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걱정이 없습니다. 혹시 악이 이기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살아계시기에 걱정할 것 없습니다.

그런 그는 승리합니다.  뒤에 왕권을 회복하였기에 승리한 것이 아닙니다. 시므이의 저주 앞에서 믿음의 자세를 보인 그는 이미 승리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세

우리는 축복하며 살아야 합니다. 입에 저주를 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원수라 할지라도 축복하고 기도해주어야 합니다(마5:44, 눅6:27-28, 마10:12-13).

심지어 우리는 원수가 넘어져도 기뻐해서는 안됩니다.

잠언 24:17,18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18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기뻐 아니하사 그 진노를 그에게서 옮기실까 두려우니라”

저주하는 것은 스스로의 무덤을 파는 것입니다.

시편 109편은 다윗의 사랑을 악으로 갚는 자들에게 고통을 겪으면서 지은 시입니다.

그 시에서 저주를 좋아하는 자의 결국을 이렇게 말합니다.

17,18절 “저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 아니하더니 복이 저를 멀리 떠났으며 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 하더니 저주가 물같이 그 내부에 들어가며 기름같이 그 뼈에 들어갔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축복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합니다.

아울러 한 가지 덧붙인다면 축복받으려고 애씁시다.

사람들이 나를 축복할만한 그런 삶을 삽시다. 나를 보는 사람들이 축복하고 싶은 그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을 상기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복의 근원으로 부름 받았습니다(창12:2).

그리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보장이 있습니다.

창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다윗을 향한 시므이의 저주는 다윗에게 해를 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저주하는 시므이를 심판하실 뿐입니다.

축복하며 삽시다. 저주는 우리가 해야 할 몫이 아닙니다. 축복하며 행복한 그리스도인으로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