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사무엘상

사람에게 물어보면 안되는 이유”

은바리라이프 2009. 2. 13. 17:37

사람에게 물어보면 안되는 이유”

< 사무엘하 16:20-17:4 >

아버지를 쫓아낸 압살롬은 이제 다윗을 죽이기 위한 방법을 찾습니다. 그것을 위해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망합니다.

아히도벨에게 묻는 다윗

16:20 “압살롬이 아히도벨에게 이르되 너는 어떻게 행할 모략을 우리에게 가르치라”

압살롬은 아히도벨에게 묻습니다. 그의 가르침을 듣기 원합니다. 아버지의 가르침도, 하나님의 말씀도 배우려고 하지 않던 그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사람에게 묻습니다.

다윗에게서 배우는 삶은 늘 하나님께 묻는 태도입니다.

시글락에서 아말렉에게 약탈을 당했을 때도 하나님께 묻습니다. 당연한 일도 묻습니다(삼상30:8).

사울이 죽은 후에 블레셋 땅에서 당연히 유다 땅으로 가야 하지만 먼저 하나님께 묻습니다(삼하2:1).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된 후 블레셋이 쳐들어 왔을 때도 작전을 펴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묻습니다(삼하5:19, 2),

다윗은 상황이 달라도 늘 하나님께 묻습니다.

다윗도 사람들과 의논하고 아히도벨의 도움도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최종적으로는 늘 하나님께 묻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방법만이 절대적으로 선합니다.

사람의 방법은 함정이 있습니다. 아무리 똑똑해도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고전1:25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사람에게만 물어보면 안되는 이유가 이렇습니다.

한 치 앞도 못보는 것이 사람입니다. 이렇게 똑똑한 아히도벨은 스스로 목메고 죽는 상황이 올 줄을 알지 못했습니다.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것이 인생에게 무엇을 묻겠습니까?

그러니까 사람들끼리만 의논하는 것이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기도하는 시간이 많으면 일하는 시간이 단축됩니다. 기도하는 시간이 짧으면 시간을 오히려 잃습니다.

넘을 수 없는 선을 넘는 압살롬

사람에게 물어보면 안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은 죄인이기에 악한 방법을 찾습니다.

아히도벨의 모략이 얼마나 악한가를 보여주는 말씀이 나옵니다.

아히도벨은 압살롬에게 다윗의 후궁들과 동침하도록 했습니다(16:21).

왜 이런 짓을 합니까? 강해지기 위해서입니다.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비도덕적이고 패륜적인 일을 합니다.

내가 더 강해지고 내가 더 높아지고 내가 더 많이 갖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지 할 수 있는 것이 세상의 방법이고 사람의 지혜입니다.

얼마나 옳은가, 의로운가, 정당한가는 따지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강해질까만 생각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방법입니다. 아버지를 욕보인 압살롬은 결국 망합니다.

야곱의 열 두 아들들 중 복 받은 아들이 유다입니다. 그가 복된 지파를 형성했습니다.  다윗이 유다 지파입니다. 유다가 복 받은 중요한 이유는 자기를 희생해서라고 아버지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창44:33).

그러나 야곱의 장자 르우벤은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그는 자기 욕심을 위해 아버지의 여인과 통간했습니다(창35:22). 그래서 그는 야곱에게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창49:2-4).

압살롬이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손대서는 안될 아버지의 것을 자기 것으로 삼습니다.

비겁한 방법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가르친 또 하나의 악을 봅시다.

17:1,2 “아히도벨이 또 압살롬에게 이르되 이제 나로 하여금 사람 일만 이천을 택하게 하소서 오늘 밤에 내가 일어나서 다윗의 뒤를 따라 2저가 곤하고 약할 때에 엄습하여 저를 무섭게 한즉 저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이 도망하리니 내가 다윗 왕만 쳐죽이고”

밤에, 곤하고 약한 다윗을 치겠다는 것입니다. 이기기 위해서는 비겁한 방법을 쓰는 것입니다. 치사하고 비겁해도 목적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합니다. 페어플레이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는 이유가 비겁함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 출애굽 후 광야에서 피곤하고 힘들 때 뒤에서 약한 자들을 쳤기 때문입니다(신25:17-19). 하나님이 이들과 대대로 싸우시고 이 아말렉을 도말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출17:14-16).

하나님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는 분입니다(사42:3). 약한 자를 격려하시고 붙들어주시고 힘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약한 자를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행위입니다. 약한 자를 뒤에서 치는 비겁한 행동을 하나님이 싫어하십니다.

사람은 이기는 방법만 찾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옳은 방법을 말씀하십니다.

압살롬이 똑똑한 사람 아히도벨에 물어본 것은 다 이렇게 악한 것입니다.

죄인의 특징은 생각이 악하다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악합니다(창 8:21).

사람에게 묻기 전에 하나님 앞에 엎드립시다.

또 이미 우리에게 심어주신 양심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입시다. 양심은 하나님의 뜻을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거나 양심의 판단을 좇으십시오.

건강한 양심은 바른 소리 합니다. 바른 방법을 제시합니다. 양심을 잘 활용하면 양심은 더욱 건강하게 기능합니다. 그러나 양심에 반하는 일을 자꾸 하면 양심도 그 기능을 잃습니다. 

양심에서 뻔하게 답을 주는데도 사람에게 묻는 이유는 사람들이 동의해 주면 용감하게 죄를 지으려는 것입니다.

양심에 걸려도 자꾸 묻습니다. 그러면서 동의해 주는 사람이 많으면 용기가 생깁니다. “그래 사람들 다 그렇게 살잖아” 그러면서 해서는 안될 일을 합니다.

사람에게 묻는 것은 여론을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하나님께 묻고 양심을 따라 삽시다.

늘 이렇게 부담스러운 설교를 해서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부담스러운 설교에 은혜가 되신다면 하나님이 반드시 최종적 승리자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당장은 십일조가 많아지지 않아도 건강한 영성 가지고 산다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자자손손을 건강한 다윗의 가문처럼 세우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