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 사무엘하 15:24-34 >
압살롬을 피해 도망가는 다윗의 모습을 봅니다. 처량한 다윗입니다. 그는 급하게 피난을 합니다(14절). 맨발로 울면서 얼굴을 들지 못합니다(14절).
그는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잃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잃지는 않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일이 돈도 잃고 하나님도 잃거나 건강도 잃고 신앙도 잃는 경우입니다. 다윗은 모든 것을 다 잃어도 하나님을 잃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회복이 가능했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성으로 도로 메어가라
다윗의 피난길에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나와 함께 가려고 기다렸습니다.
24절 “사독과 그와 함께한 모든 레위 사람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다가 내려놓고 아비아달도 올라와서 모든 백성이 성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더니”
그러나 다윗의 태도는 의외였습니다.
25절 “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궤를 성으로 도로 메어 가라”
오히려 다윗은 그 언약궤를 도로 성으로 메어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을 그냥 성에 머물러 있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요, 승리의 상징물과 같은 언약궤를 돌려보내는 다윗의 태도는 의외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을 왕이 거할 성읍으로 삼은 후에 제일 먼저 언약궤를 모셨습니다. 언약궤를 모시므로 그는 예루살렘을 거룩한 성읍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그가 피난길에 언약궤를 모시는 것 얼마나 귀하고 다행스러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제사장들에게 도로 성으로 모셔가라고 말합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다윗은 자신의 죄로 인해 피난 가는 길에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가 함께 초라해지기를 원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두 가지 고백을 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기대입니다.
25절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얻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은혜를 얻으면 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그 궤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이 아닙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26절 “그러나 저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하리라”
하나님이 만일 자기를 버리신다면 그는 그것조차도 하나님의 선하신 일임을 인정하겠다는 자세였습니다.
진정한 신앙은 위기 시에 드러납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 그가 어떤 태도인가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에 내게는 손해가 되고 고난이 와도 선한 일임을 고백하는 그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높이는 것입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이 다시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또 하나 중요한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기도의 힘을 보여주는 말씀이 나옵니다.
다윗이 피난 하는 길에 다윗의 모사였던 아히도벨이 압살롬 편에 선 것을 알았습니다.
31절 “혹이 다윗에게 고하되 압살롬과 함께 모반한 자들 가운데 아히도벨이 있나이다”
지금까지 다윗 곁에서 다윗에게 똑똑한 머리로 큰 힘이 되어왔던 아히도벨이 압살롬 편이 되었다는 소식은 도망하는 다윗의 가슴을 떨리게 만드는 일입니다. 다른 어떤 사람보다 아히도벨의 배신은 큰 아픔이었습니다.
너무나 다윗을 잘 아는 아히도벨, 그가 압살롬 편이라면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다윗은 금방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 소식을 듣자 바로 기도합니다.
울면서 도망가는 절망적인 시간을 맞았지만 기도는 지속될 수 있었습니다. 기도까지 막히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답답하고 갑갑한 상황에서도 기도의 줄이 끊어지지 않는다면 살길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기도의 줄을 놓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31절 “다윗이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기도의 형식을 갖추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급하게 길을 가면서 간절함을 담아 한 마디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응답되고 압살롬의 반역은 뒤집힙니다.
하나님의 즉각적인 응답이 옵니다.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사람이 나타납니다.
바로 후새라는 다윗의 친구입니다.
32절 “다윗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루턱에 이를 때에 아렉 사람 후새가 옷을 찢고 흙을 머리에 무릅쓰고 다윗을 맞으러 온지라”
기도를 끝내자마자 하나님께서는 후새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할 사람을 보내셨고 다윗에게 그를 사용할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다윗은 후새에게 예루살렘에 가서 압살롬을 돕는 자처럼 행동하게 합니다.
33,34절 “다윗이 저에게 이르되 네가 만일 나와 함께 나아가면 내게 누를 끼치리라. 그러나 네가 만일 성으로 돌아가서 압살롬에게 말하기를 왕이여 내가 왕의 종이니이다 이왕에는 왕의 부친의 종이었더니 내가 이제는 왕의 종이니이다 하면 네가 나를 위하여 아히도벨의 모략을 패하게 하리라”
17장에 가면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계획대로 다윗을 좇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친구 후새의 말로 인해 아히도벨을 모력은 시행되지 못합니다. 압살롬이 아히도벨보다 후새의 모략을 더 낫게 여기므로 아히도벨의 아주 뛰어난 계획이 실패로 돌아갑니다.
17:14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의 모략은 아히도벨의 모략보다 낫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모략을 파하기로 작정하셨음이더라”
하나님 없는 똑똑함은 결국 스스로를 무너지게 합니다. 아히도벨은 다윗의 기도대로 무너집니다.
아히도벨의 최후가 나옵니다.
17:23 “아히도벨이 자기 모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기 집에 이르러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매 그 아비 묘에 장사되니라”
똑똑한 아히도벨은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압니다. 자신의 계획을 믿어주지 않은 압살롬이 결국 망할 것을 압니다. 그런 그는 이제 다윗이 회복될 것을 알았기에 다윗을 배신한 자신이 살아 있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기를 기도했던 다윗의 기도는 이렇게 성취됩니다.
다윗은 아히도벨의 머리를 빌려 쓰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다윗과 아히도벨이 대결하면 누가 이길 것인지 분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하는 다윗이 오히려 똑똑한 아히도벨을 이기는 것은 세상의 원리와 다름을 보여줍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뛰어난 지혜와 경륜이 있어도 의를 떠난 자가 결국은 스스로 함정에 빠집니다. 자기 꾀에 자기가 빠집니다.
똑똑한 보다는 진실함과 의로움이 훨씬 낫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의지합시다. 그분께서 하시는 모든 것이 선하므로 그 분만 의지하면 모든 것이 열립니다. 급할 때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기도하며 그 분을 의지하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적절하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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