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사무엘상

충심과 사심

은바리라이프 2009. 2. 12. 20:12

충심과 사심
[ 사무엘하 19:31 - 19:43 / 찬송가 424 장 ]
관찰질문
바르실래는 어떤 사람입니까?
유다 지파와 이스라엘 지파의 다툼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31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로글림에서 내려와 함께 요단에 이르니 32 바르실래는 매우 늙어 나이가 팔십 세라 그는 큰 부자이므로 왕이 마하나임에 머물 때에 그가 왕을 공궤하였더라 33 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34 바르실래가 왕께 아뢰되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사옵겠기에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 35 내 나이가 이제 팔십 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이 종이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주 왕께 아직도 누를 끼치리이까 36 당신의 종은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려는 것뿐이거늘 왕께서 어찌하여 이같은 상으로 내게 갚으려 하시나이까 37 청하건대 당신의 종을 돌려보내옵소서 내가 내 고향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그러나 왕의 종 김함이 여기 있사오니 청하건대 그가 내 주 왕과 함께 건너가게 하시옵고 왕의 처분대로 그에게 베푸소서 하니라 38 왕이 대답하되 김함이 나와 함께 건너가리니 나는 네가 좋아하는 대로 그에게 베풀겠고 또 네가 내게 구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하여 시행하리라 하니라 39 백성이 다 요단을 건너매 왕도 건너가서 왕이 바르실래에게 입을 맞추고 그에게 복을 비니 그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40 왕이 길갈로 건너오고 김함도 함께 건너오니 온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이나 왕과 함께 건너니라 41 온 이스라엘 사람이 왕께 나아와 왕께 아뢰되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이 어찌 왕을 도둑하여 왕과 왕의 집안과 왕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가게 하였나이까 하매 42 모든 유다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대답하되 왕은 우리의 종친인 까닭이라 너희가 어찌 이 일에 대하여 분 내느냐 우리가 왕의 것을 조금이라도 얻어 먹었느냐 왕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 있느냐 43 이스라엘 사람이 유다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는 왕에 대하여 열 몫을 가졌으니 다윗에게 대하여 너희보다 더욱 관계가 있거늘 너희가 어찌 우리를 멸시하여 우리 왕을 모셔 오는 일에 먼저 우리와 의논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나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더 강경하였더라

35 I am now eighty years old. Can I tell the difference between what is good and what is not? Can your servant taste what he eats and drinks? Can I still hear the voices of men and women singers? Why should your servant be an added burden to my lord the king?
 

사심이 없는 바르실래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는 요단강을 건너는 다윗 왕을 환송하기 위해 나왔습니다. 그는 압살롬에게 쫓겨 요단강을 건너온 다윗의 일행에게 식량을 제공했고, 왕이 그곳에 머무는 동안 계속해서 그를 공궤했던 부호입니다. 이처럼 잊을 수 없는 은인인 바르실래에게 다윗은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서 자기도 은혜를 갚을 기회를 가지게 해달라고 청했습니다. 하지만, 바르실래는 자기의 많은 나이를 이유로 내세우며 왕의 고마운 제안을 간곡히 고사했습니다. 이것은 자기가 혹시라도 왕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습니다(35). 참으로 그는 지금까지도 사심 없이 왕을 공궤하였고, 앞으로도 왕이 부담 없이 선정을 펼치기만을 바라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한편, 바르실래의 아들 김함을 데려가는 다윗은 바르실래에게 놀라운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심 없이 봉사하고 하나님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부모는 자녀에게 가장 좋은 축복을 물려주게 됩니다.

자기 이익을 내세우는 지파들
드디어 다윗 왕이 요단강을 건너 본토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의 절차로 인해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크게 불평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다 지파가 자기 지파들과 의논하지 않고 왕의 도하를 독점하다시피 호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다 지파는 왕을 도둑질했다고 항의하는 이스라엘 지파들을 향해, 왕의 친족인 자신들이 왕을 호위한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이 일로 인해 왕에게 조금이라도 얻어먹은 것이 없으니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도리어 큰소리를 쳤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한 지파에 지나지 않는 유다가 무려 열 지파나 되는 자신들을 어떻게 멸시할 수 있느냐고 항의했고, 유다 역시 한 치도 양보 없이 더 강경하게 맞섰습니다. 이들은 다윗을 다시 모셔오는 좋은 일에서 자신들의 이익과 주장만 내세움으로 다툼을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는 원망과 시비가 없게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빌 2:14). 대부분의 경우 분쟁하는 사람은 아무리 영적으로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운다 해도 실제로는 가장 육신적인 이유 때문입니다(고전 3:3). 그러므로 신자는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갈 5:26).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은혜는, 자신의 궁핍을 결코 완전히는 인정하지 못하는 이러한 혼란스럽고 몽매한 필요를 완전히 어린아이 같이 즐겁게 받아들이는 자세, 자신이 전적으로 의존적인 존재임을 기뻐하는 자세로 바꾸어 놓습니다. 인간 본성이 자신의 마지막 보물로 집착하고 있는 환상, 즉 우리에게는 본연의 선이 있으며 하나님이 우리 안에 부어 주신 선을 우리 자신의 힘으로 유지한다고 믿는 거짓된 환상이, 사실 지금 우리를 행복하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는 마치, 발을 바닥에 둔 채 수영하려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한 발판을 버려야 비로소 파도에 온몸을 맡기는 끝내주는 경험을 할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자기 안에 본래의 자유와 능력과 가치가 있다는 최후의 주장을 버릴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와 능력과 가치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갖게 되는 것만이 진정 우리 것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며 따라서 ‘우리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 「네 가지 사랑」, C.S. 루이스, 홍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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