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주석강해/사무엘상

좋은 사람 아히마아스

은바리라이프 2009. 2. 12. 20:09

좋은 사람 아히마아스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는 빨리 가서 승전의 소식을 왕께 알릴 수 있게 해달라고 요압에게 청했습니다. 그는 얼마 전 목숨을 걸고 후새의 전갈을 다윗에게 전했던 바로 그 인물입니다(삼하 17:16-17). 그러나 요압은 아히마아스 대신 구스 출신의 종을 보내어 이 소식을 전하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압살롬의 죽음을 전하는 전령을 기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히마아스는 재차 청했고, 요압은 ‘너는 왜 달려가려 하느냐 이 소식으로 말미암아서는 너는 상을 받지 못하리라’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밝히기까지 했습니다. 그럼에도, 아히마아스는 한사코 다윗에게 갈 수 있게 해달라고 매달렸습니다. 그가 상도 없는 이 일을 그렇게 하고자 했던 이유는, 아들의 죽음이라는 비보를 듣게 될 다윗 왕의 아픔이 느껴져서, 조금이라도 그의 심적 충격을 덜 수 있기를 바라서입니다. 이 같은 중심은 아히마아스가 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다윗이 ‘그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 오느니라’라고 한데서 좀 더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허락을 받은 아히마아스는 지름길로 전력 질주하여 구스 사람보다 한발 먼저 왕께 도착했고, 왕의 기분을 북돋기 위해 압살롬의 죽음에 대해서는 함구하고(29), 오직 승전의 소식만을 전함으로 왕의 마음을 격려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28).

공의가 없는 사랑
하지만, 아히마아스의 노력은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구스 사람을 통해 압살롬의 죽음을 알게 된 다윗은 크게 오열했습니다. 그의 슬픔은 아들을 빗나가게 하고 결국 죽게 만든 자기의 잘못에 대한 자책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슬픔은 너무 지나쳤고, 결국 반란을 진압한 군사들은 마치 패잔병이나 도주자들처럼 숨을 죽이고 성읍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사실 압살롬의 반역을 초래한 가장 큰 요인도 인정에 치우쳐 공의를 잃어버리는 이 같은 다윗의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다말을 범한 암논에 대해서도 책망하지 않았으며, 암논을 죽인 압살롬에 대해서도 책망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같은 다윗의 태도는 아도니야의 반역까지 불러오게 됩니다(왕상 1:6). 공의가 함께하는 사랑이 자녀를 건강하게 합니다. 십자가가 구원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그 속에 완전한 사랑뿐 아니라 완전한 공의가 함께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