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압의 충고
다윗 왕은 거의 실성할 정도로 아들을 잃은 슬픔에 빠져있었습니다(4). 이에 요압은 왕에게 나아가 충고하고 있습니다. 그는 다윗이 지금 반역자를 위해 울고 있음으로, 목숨을 걸고 반역을 제압한 지휘관들과 용사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또 그는 ‘오늘 보니 차라리 압살롬이 살고 자기들이 다 죽었다면 왕이 더 좋아했을 것이 틀림없다’라고 빈정거렸습니다. 그러면서 요압은 지금 당장 나가 부하들을 위로하지 않으면, 한 사람도 왕의 곁에 머물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왕이 지금까지 당한 화보다 훨씬 심한 화가 미칠 것이라고 경고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에 왕은 일어나 성문에 앉았고, 백성들은 다시 생기를 찾게 되었습니다. 요압의 충고는 내용상으로 보면 인정에 이끌려 공의를 그르치고 있는 다윗에게 적절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충고를 하는 요압의 불손한 태도는 결코 올바른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특별히 왕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압살롬을 살해한 그가 일말의 뉘우침도 없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은 뻔뻔스러운 태도입니다. 때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 말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라도 상대방을 이해하는 사랑의 마음으로 겸손하게 권면해야 합니다(빌 2:1-3).
다윗의 처신
압살롬의 편에 섰다가 도망한 이스라엘은 다윗을 다시 그들의 왕으로 모시는 일을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의 친족인 유다 지파가 이 일에 가장 앞장서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유다의 장로들에게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오는 일에 나중이 되리요?’ 하는 전갈을 보냈고, 유다 출신의 반란군 군사령관 아마사에게 장차 요압을 대신하여 군대장관을 삼을 것이라는 맹세도 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유다의 민심은 급격히 다윗에게로 기울었고, 모든 유다 백성들은 요단을 건너기 위해 오는 왕을 맞이하기 위해 길갈로 모여들게 되었습니다. 이 같은 다윗의 처신은 자기 지파에 대한 인간적인 편애와 자기 아들을 죽인 요압에 대한 미움을 자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란의 최선봉에 선 유다 지파와 아마사에게 단 한마디의 책망도 없이 이 같은 특혜를 주는 것은 공의를 허무는 행위였습니다. 또한, 혈연에 치우친 이 같은 결정은 다른 이스라엘 지파들의 반감과 분열을 일으키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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