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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뽑기와 투표

은바리라이프 2008. 9. 6. 12:41

제비뽑기와 투표
제비뽑기는 미신적 요소 많아…투표는 신성한 개인 권리 의사 표시
입력 : 2005년 11월 15일 (화) 00:47:59 [조회수 : 955] 황규학 ( 기자에게 메일보내기

교회에서 회의를 하다 보면 여러 가지 표결 방법을 사용한다. 투표·기립·거수·발성(가부)의 방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적인 표결의 방법조차 사용하지 않을 때와 표결의 방법을 구분하지 못하고 혼선하여 장로교의 민주적인 정신을 살리지 못할 때가 많이 있다. 그러다 보니 제비뽑기를 하자는 얘기들이 솔솔 나오고 실제로 어떤 교단에서는 총회 임원 선출 시 제비뽑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종교개혁 이전의 전근대적인 방법으로, 장로교회의 표결 방법이 아니다. 그것이 성경적인 것이라기보다 성경의 시대에 사용했던 표결의 방식인 것이다. 즉 제도가 정착되기 이전의 전근대적인 것이며, 당시 사회에 가장 적절한 민주적인 방법 중의 하나일 것이다.

제비뽑기는 원시적인 표결 방법, 우리 시대는 제도화된 표결 방식이 적절

성경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서 새롭게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다. 제비뽑기는 기독교가 제도화 되기 이전의 원시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하나의 인선 방식이다. 엄격히 말하면 제비뽑기보다 더 성경적이 되려면, 대제사장이 우림과 둠밈이 달린 제사장복을 입고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할 것이다. 직접적인 하나님의 계시를 받기 때문에 보다 더 성경적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시대에 맞게 보다 합리적인 방법을 통해서 제도화된 표결의 방법을 허락하신 것이다. 구약시대는 당시 시대에 적절한 대제사장을 통해서, 신약시대는 제비뽑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종교개혁 이후에는 보다 제도화된 투표라는 표결 방식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다.

제비뽑기는 성경적인 것이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당시의 표결 문화

장로교는 대의정치의 효시로 항시 민주적인 표결 방법을 사용해왔다. 그것이 투표·기립·거수· 발성의 표결 방식이다. 하나님은 역사의 시행착오를 통해서 제비뽑기를 거쳐 보다 발전되고 제도화된 가장 적절한 민주적인 표결 방법을 허락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표결 방법을 지혜롭게 사용하지 못하고 충분히 숙지가 되지 못한 상태에서 시행할 경우, 어려운 상황에 빠지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렇다고 과거의 '제비뽑기'나 '제사장 계시 받기'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우리 시대에서 제비뽑기는 어렸을 때 동네에서 둘러앉아 '설탕으로 만든 무늬 과자'를 뽑을 때(일명 '뽑기')나 사용하는 것이다.

표결에 부작용이 많이 있다고 해서 제비뽑기와 같은 원시시대에서나 가능한 것을 성경적인 것이라 하여 돌아가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에 '무당'이나 '뽑기 아저씨'의 영역이지 우리의 영역이 아니다. 신앙적이고 성경적이라면 왜 목사 인선 시 수백 명씩 지원하는데 제비뽑기를 하지 않는가? 맛디아를 선출하듯이 기도하고 제비뽑기로 해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대부분의 청빙위원회는 이력서를 보고 자신이 배우고 경험한 이성의 영역을 최대한 활용한다. 총회장 선거 시도 입후보자의 연설을 듣고 잘 고려해서 투표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분별력, 성경에 입각한 판단력, 양심에 근거한 투표를 해야지 주로 무당들이 사용하는 제비뽑기 방식을 다시 채택한다면 장로교나 개신교를 미신의 종교로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은 종교개혁을 효시로 민주정치가 싹트게 했고 이 원리에 입각하여 근대 이후 사회 계약설에 근거한 민주국가를 태동시키면서 만인이 공평하게 참석하여 사람을 선출할 선거 제도를 허락하신 것이다. 여성의 참정권도 19세기 말에서나 가능해진 것이다.

기저귀 발언을 해서 논란을 빚은 합동 측의 총회장이 '제비뽑기'로 당선된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당선된 사람이 왜 비신앙적이며 성차별적인 발언을 하며 세상에 파문을 던지는가? 제비뽑기는 그만큼 위험 부담이 있다. 제비뽑기를 할 경우, 하나님의 뜻이 임하면 가장 좋은 방법인데, 불행하게도 하나님이 만든 거룩한 율법에 사단이 틈을 타듯 그 제비뽑기에도 사단이 틈을 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제비뽑기가 하나의 운이거나 미신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즉 무당이 제비뽑는 것으로 되는 것이다. 현대에서 제비뽑기가 가장 왕성하게 행해지는 곳이 무당집이다. 무당이 제비뽑기의 전통을 잇고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제비뽑기가 성경에 나온다고 해서 성경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면 사도행전에 물건을 서로 통용하는 공산주의가 나온다고 해서 공산주의를 성경적이라 말할 수 있는가? 루터도 천동설을 주장했지만, 천동설이 성경에 나온다고 해서 그것이 성경적인가? 성경에 나오는 것과 성경적인 것을 구분해야 한다. 즉 성경에 나오는 당시 문화의 한 면이 나왔다고 해서 그 원시적인 문화를 성경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성경의 원칙과 성경의 문화를 구분해야 한다. 하나의 수단이나 방법을 목적이나 원칙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제비뽑기는 당시 문화의 한 단면으로서 나름대로 하나님의 뜻을 구분하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제비뽑기도 틀릴 가능성이 있어서 그들은 간절히 기도를 한 상태에서 행한 것이다. 그만큼 당시에도 제비뽑기는 위험한 선출 방법이라는 것이다.

투표는 자기 양심과 신앙, 이성이 함축적으로 나타난 개인 권리의 의사 표시이다. 이것은 누구도 막거나 왜곡시키며 침탈해갈 수 없는 신성한 행위인 것이다. 굴곡된 양심은 투표 행위조차 파손시키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한 이성과 양심의 행위와 판단력을 송두리째 앗아버리는 미신적 요소인 제비뽑기를 초현대와 민주적인 제도가 정착된 사회 속에서 행하는 것은 제도 자체를 전근대적인 것으로 돌려버리는 행위이다. 우리는 양복을 입고 자동차를 타고 예수의 정신과 원칙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지, 예수의 슬리퍼와 허름한 옷을 입고 그의 정신을 잇는 사람들이 아닌 것이다.

제비뽑기를 한다면 교회 헌법에서 정치나 권징 시 재판이 왜 필요하겠는가? 누가 죄를 지었다면 증거도 필요 없이 요나를 선택하듯 제비뽑기를 해서 골라 그 사람을 출교시키든가 권징을 하면 될 것이다. 목사 선출도 제비뽑기로 하면 될 것이다. 모든 직분자들을 다 제비뽑기로 하면 된다. 이것처럼 돈 안 들고 간편하며 갈등 없는 완벽한 제도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제비뽑기할 때 공중권세 잡은 악령이 역사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율법에도 역사하는데 제비뽑기에도 역사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우리는 양심과 이성이 굴곡되었다고 해서 전근대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현행 주어져 있는 자신들의 권리 표시인 표결 문화의 본질을 잘 깨달아 합리적인 표결 문화가 잘 정착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최종편집 : 2005년 11월 18일 (금) 11:4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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