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뿔’ 가사노동, 영원한 족쇄인가 사랑의 희생인가? |
[2008-07-26 08:55:21] |
[뉴스엔 송윤세 기자]
프랑스의 여류 소설가 보부아르는 힘든 일을 매일 반복하는 주부의 일을 ‘시시포스의 형벌’에 비유했다.
시시포스의 형벌이란 그리스 신화 속에서 가장 현명하면서 교활했던 왕 시시포스가 신들을 모욕한 죄로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계속해 밀어올리는 영겁의 벌을 뜻한다. 그만큼 주부의 가사노동은 끝도 없이 힘들다는 것을 비유하는 것일까?
지난 주말 KBS 2TV 주말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 가사노동의 해방을 꿈꾸던 한자(김혜자 분)가 드디어 분가에 성공했다. 인터넷의 한 포털사이트에선 한자의 분가에 대해 ‘공감한다 VS 공감하지 않는다’라는 찬반 논란이 첨예하다.
한자의 분가가 ‘공감이 간다’는 입장을 보인 누리꾼들은 “같은 주부로서 전적으로 이해가 간다”, “평생 희생했으니 휴가요구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공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인 시청자들은 “혼자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행동이다”, “1년이나 휴가를 얻는다는건 비현실적이다”고 주인공의 행동에 대해 반박했다.
가사노동은 취사, 세탁 등과 같은 육체적인 노동뿐만 아니라 가계부의 정리나 식단짜기 같은 정신적 관리적, 노동도 포함된다. 극중 한자가 “단 1년 만이라도 다 놓고 나가 아침에 무슨 국을 끓일까, 저녁은 무슨 반찬을 할까? 이런 고민 없이 나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는 대사에서 40년을 한결같이 주부라는 자리에서 묵묵히 일했던 그녀의 노고를 엿볼 수 있었다.
물론 그녀의 가사노동은 엄마, 아내, 며느리로서 당연히 해야할 의무이다. 그녀의 노력과 희생으로 가족들은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가사노동이라는 게 열심히 일한다고 성과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조금만 소홀히 하면 금세 티가 나는 참으로 얄미운 일이다.
투자를 하면 금방 보상을 얻고 싶어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의 심리다. 그런데 퇴근도 휴가도 없는 가사노동을 40년간 해온 한자가 매너리즘이 극에 달해 뛰쳐나가겠다는 폭탄선언을 한 심정은 십분 이해가 간다.
또 지금은 폭풍같은 자녀들의 혼사문제도 치뤘고 자신의 일을 대체해줄만한 며느리도 있다. 한마디로 이제 살만하니까, 드러누울만한 자리니까 자신의 밀린 휴가를 요구한 것이다.
반면 “엄마, 며느리 역할이 그렇게 싫으면 애초에 결혼은 뭐하러 하고 자식은 왜 낳았냐?”고 한자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불만이 쌓이다 못해 뿔이 돼 어느날 활화산처럼 폭발해 이혼을 선언하기 보다 일년이라는 휴가를 통해 자신을 재충전하고 그 에너지를 다시 가족을 위해 쏟는 것이 오히려 더 현명한 대안이 아닐까?
원룸을 얻어 1년이란 장기 휴가를 떠나는 한자의 분가는 다소 과장된 면이 있지만 우리 어머니들의 속마음을 대변해줬다는 면에서 한자의 반란은 주부들의 공감을 얻기에 충분한 것처럼 보인다.
송윤세 knaty@news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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