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Matthew) 씨 뿌리는 자의 비유(마13:1-18)
어느 날 예수께서 바닷가에 앉으셨을 때 많은 군중이 모여들었다. 이에 예수께서는 배 위에 올라가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한 농부가들에 나가 씨를 뿌렸다.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져서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다. 어떤 씨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져 흙이 깊지 않으므로 곧 싹이 나왔으나 해가 돋자 뿌리가 없으므로 타버려서 말랐다.
또 어떤 씨는 가시덤불에 떨어졌는데 가시나무가 자라 그 기운을 막았다. 그러나 어떤 씨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로 무성하여 100배, 60배, 30배의 열매를 맺었다." 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묻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설명하셨다. "누구든지 하늘 나라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할 때는 사탄이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아 버린다.
길가에 떨어진 씨는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또 돌밭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곧 기쁨으로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오면 곧 넘어지는 자를 가리킨다. 그러나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켜 인내로 결실 하는 자를 가리킨다. 그 사람은 100배, 60배, 30배의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림설명 / 학개의 삽화 : 씨를 뿌리는 사람을 묘사한 <로맹의 기도서>의 삽화. 15세기. 파리국립도서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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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1-52 일곱 가지 천국비유
- 마태복음에서 기록한 비유 중에 두 비유(씨뿌리는 비유와 해석 막4:1-9, 13-20, 눅8:5-15, 겨자씨 비유 막4:30-32, 눅8:18-19)는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서에서도 기록하고 있는데 누룩비유(눅8:20-21)는 누가복음에서도 발견되고 그리고 네 가지 비유는 마태복음에서만 나타난다(가라지 비유와 해석, 감추인 보화, 극히 값진 진주, 그물 비유).
- 13:1-23 씨 뿌리는 자의 비유
- (1) 길가와 돌밭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비유를 말씀하실 때 비유의 방법을 종종 사용하셨다.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는 어려운 진리를 일상 생활에서 흔히 경험하는 일들과 비교하여 쉽게 가르치시려고 하는데 있다. 그러나 이 비유는 믿음으로 듣고 깨닫는 자에게는 진리 이해에 있어서 그 명료성과 심오성을 더해주는 것이지만 불신하여 깨닫지 못하는 자에게는 진리를 허락하지 않으시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마 13장에서 일곱 가지의 비유를 말씀하시는데 그 첫 번 째가 바로 본문의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이다.
여기서 씨는 '하나님의 말씀', 복음, 진리 등을 상징하고 '씨를 뿌리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 또는 복음 전도자, 등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길가, 돌밭, 가시떨기, 좋은 땅 등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마음의 상태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길가에 떨어진 씨는 새들이 먹어 버렸다고 하셨는데 여기서 새는 사단 을 가리키고 있다. 길은 많은 사람들이 밟고 다니는 곳으로서 이는 세속적 교훈, 장로들의 유전, 철학 등으로 이미 다져져 복음을 받아들여 지킬만한 마음의 바탕이 되어 있지 않는 상태를 뜻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들은 복음을 들어도 그들의 교만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해 버린다는 것인데 이는 사단이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시다.
천국은 세속적 지식이나 이성적 사유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믿음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돌밭 petrwvdh(페트로-데-) 토양이 깊지 않아서 씨가 발아를 했다가도 뿌리가 없어 볕이 뜨거우면 곧 말라죽는 밭이다. 흙이 엷게 덮인 돌이나 바위투성이의 밭, 이런 밭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쉽게 발견되는 토양이다. 이는 복음을 듣고 기쁘게 받아들이나 그 복음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생겼을 때에 믿음의 뿌리가 없으므로 쉽게 믿음을 버리는 심령을 가리키는 것이다.
위에 ejpi;(에피) 씨를 뿌리기 전에 이미 가시의 씨가 뿌려져있었음을 보여준다.(2) 가시 떨기
예수께서는 세 번째로 가시떨기 위에 떨어진 씨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셨다. 이 가시떨기와 같은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 심령 속에서 잘 자라게 하나 가시 떨기도 함께 자라게 함으로서 말씀의 성장을 가로막아 질식하게 하는 경우를 가리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가시떨기를 세상의 염려와 재리에 대한 유혹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다.
세상의 염려는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하는 의식주에 대한 걱정이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걱정을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는 불신자들의 삶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의식주에 대한 염려는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는 새를 먹여 살려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없는 데서 오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세상 염려는 하나님의 감화력을 약화시켜 신앙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시떨기가 된다.
재리의 유혹은 물질적 가치에 대한 집착과 추구로 신자의 영적 필요를 소외시킴으로서 영혼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시떨기가 된다. 재물은 인간으로 하여금 부유해질수록 축적욕을 가중시키는 반면 그 인격에서 관대성을 감소시키고 그 자리에 비정한 마음을 채워놓는다. 신앙에 있어서 이 '가시떨기'인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은 앞에서의 돌밭인 환난과 핍박보다도 더 위험한 것이다. 왜냐하면 환난과 핍박은 외적요인 이지만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은 내적 요인이기 때문이다.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가 얼마동안 성장하다가 가시떨기에 의해 그 성장이 중단되고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신앙적인 장애를 극복하지 못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현상이다. 신앙은 이 세상에서 하늘나라에 가기까지 지속되어야하는 생명활동이므로 결코 일시적으로 있다가 없어지거나 단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지속적으로 성장해야 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온전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하기까지 꾸준히 성장해야 한다고 하였다(엡 4:13).
신앙의 지구력 그것은 결실을 위한 성령의 능력이다.(3) 좋은 땅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결실을 맺는다고 하셨다. 그것은 말씀을 듣고서 깨닫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듣는 말씀이 아니라 깨닫는 말씀이다. 말씀을 깨닫는 마음은 믿는 마음이다. 정직하고 진실된 마음이다. 순수하고 선한 마음이다.
이러한 마음은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내적 사역을 방해하지 않기 때문에 말씀의 성장에 옥토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성령의 은혜는 이러한 마음 속에서 말씀이 잘 성장하여 결실 하도록 길가와 같은 굳은 마음과 돌밭과 같은 장애 요소를 제거해 주고 가시떨기와 같은 세속적 염려와 물질적 탐욕을 정화시킨다. 성령의 감동은 말씀이 결실 하도록 수욕과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인내력을 갖게 하고 항상 끊임없는 열정으로 헌신하게 만든다. 성령은 말씀을 통하여서 좋은 땅과 같은 마음 속에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함으로서 (갈5:22-23) 신자를 성결되게 하고 그 신앙적 인격이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역사 하신다. 이처럼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된다.
열매를 많이 맺는 `좋은 땅'으로서의 모범이 된 신자는 교회 역사상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신약 성경에서 우리는 베드로와 바울을 그 대표적인 인물로 꼽을 수가 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영생의 말씀으로 이해했으므로 그리스도의 대사도요 수제자가 될 수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예루살렘과 온 유대 땅에 세우는데 중심 역할을 함으로서 신약 교회의 위대한 초석이 되었다. 신약 교회의 성장과 발전을 말할 때 결코 베드로를 빼놓을 수가 없다. - 13:24-30, 36-43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
- (1) 좋은 씨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는 교회 안에 선악이 함께 공존하는 실상을 가리키신 말씀이다.
이 비유에서 좋은 씨를 뿌린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키고, 밭은 세상이며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예수께서는 설명하셨다. 그리고 '가라지'를 심는 자는 마귀이고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며 추수 때는 세상 끝이고 '추수꾼'은 천사들이라고 설명하셨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좋은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켰으나 여기서는 '좋은 씨'가 천국의 아들들로 설명되고 있다. 그리고 좋은 씨를 이 세상인 밭에 뿌리는 사람은 '인자' 곧 그리스도 자신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단순히 대속 사업만을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씨를 뿌리기 위해서 오셨다. 이것은 구속 사역과도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구속 사역이 아무리 훌륭하고 위대한 것이라 할지라도 씨 뿌리는 일, 즉 대속 사역의 은혜를 받을 자들을 선택하는 일이 없이는 무의미하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삼 년 공생애 기간을 가지셨고 이 때에 좋은 씨앗을 뿌리셨다. 예수께서 뿌린 씨앗은 매우 좋은 씨앗이어서 예수께서 승천하시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복음의 결실을 맺었다.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 즉 성도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좋은 씨가 정선된 씨앗이듯이 성도는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선택한 자들이다. 좋은 씨가 유익한 씨앗이듯이 성도는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선한 자들이며, 좋은 씨가 혹한에도 잘 견디듯이 성도는 박해와 환난 가운데서도 잘 인내한다.
그리고 좋은 씨가 생명력을 가지고 있듯이 성도는 성령에 의하여 중생하고 생명의 부활을 하는 자들이다. 이처럼 좋은 씨는 하나님 아버지에 의하여 선택되어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하여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이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건설을 위한 가장 좋은 씨앗들이다.(2) 가라지 zizavnia(지자니아) 이것은 검은 빛이 나며 독이 있었다. 이것이 처음 났을 때는 좋은 밀처럼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을 [미치광이 밀]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가라지를 뿌리는 자'는 마귀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39). 이 마귀는 하나님의 종들이 자고 있는 사이에 곡식 밭에 가라지를 뿌리는 자들이다. 원래 마귀는 에덴 동산에서부터 가라지를 뿌렸던 자이다. 에덴 동산의 가라지는 하와였다. 다시 가인은 아담 가정의 가라지로 뿌려졌으며 아브라함의 가정에서는 이스마엘이, 이삭의 가정에서는 에서가 가라지로 뿌려졌다. 가인은 아벨과 함께 자랐으며 이스마엘은 이삭과 함께 자랐고 에서는 야곱과 함께 자랐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마귀는 열 두 사도들 가운데 가룟 유다를 가라지로 뿌려 다른 사도들과 함께 자라게 하였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을 자라게 할 때에 마귀는 그 속에 가라지를 뿌려 놓아 곡식과 함께 자라도록 지금도 역사하고 있다.
참 신자와 거짓 신자를 신자들 자신은 잘 구분하지 못하나 하나님과 하나님의 종들은 분간할 수가 있다(27).
이처럼 마귀는 그리스도의 사도로 광명의 천사로 의의 일꾼으로 위장하는데 능한 자이다. 신령한 교회는 성령에 의하여 중생한 참 성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는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며 인정하시는 무형 교회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유형 교회는 중생한 참 성도와 중생하지 아니한 거짓 성도가 함께 공존하는 교회이다. 이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에서 바로 가라지는 이 유형 교회 안에서 중생하지 못한 성도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들은 평소에는 그 본색을 잘 드러내지 않으나 결정적인 시기가 오면 거짓 스승, 거짓 목자, 거짓 그리스도로 그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들 교회 안에 있는 적들은 교회 박의 적들보다 더 위험한 존재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보호색으로 위장하고 있으면서 그 해독을 암암리에 교회 안에 퍼뜨리기 때문이다. 그들은 교회의 믿음과 사랑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분쟁을 일으키며 참 성도들이 희생과 봉사를 할 때 그들은 이권을 장악하고 자기 이익을 도모한다.(3) 추수 때까지 연기되는 가라지 심판
이 비유에서 주인은 종들이 가라지를 뽑겠는가하고 물었을 때 추수 때까지 그냥 두라고 대답하고 있다. 교회의 주인은 그리스도 시며 그 종들은 하나님의 종들을 가르키고 추수 때는 그리스도께서 심판하시기 위하여 재림하시는 때이다.
하나님은 그 때까지 유형 교회 안에 참 성도와 거짓 성도들을 공존하도록 섭리하시고 계신다. 왜냐하면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39절 원수 ejcqro;"(에크드로스) 엑도-미워하다에서 유래된 말로 증오하는 원수를 말한다. 이 단어가 나타나는 곳은 마13:25, 28, 39, 롬12:20, 고전15:26, 갈4:16, 약4:4 이다. - 13:31-35 겨자씨 비유
- 겨자씨는 볼펜으로 점을 찍어 놓을 정도로 모든 씨 중에서도 가장 작은 씨이다. 그런데 이를 밭에 심으면 4∼5m나 되는 큰 나무로 자라나 피곤하고 지친 새들이 찾아와 깃들어 안식을 얻는다. 성경에서 큰 나무는 큰 왕국을 상징한다.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인다는 것은 수많은 나라와 백성들이 그리스도의 천국 안에 들어와 영적 쉼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겔17:23, 31:6).
겨자씨 한 알의 비유는 하나님의 역사는 처음 시작은 작고 미미하지만 그 안에 생명이 있어 인류 역사에 큰 영향력을 미칠 만큼 크게 자란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외적인 성장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역사는 처음부터 크고 장엄하게 시작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75세의 아브라함 한 사람에게 믿음의 씨를 심으심으로 복음 역사를 시작하셨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역사는 점점 자라나 후에는 큰 민족을 이루게 된 것이다. - <자료>
- 본래 이 비유는 마가복음과 Q자료에 다 들어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비유의 주요 특징들은 두 형태의 비유에 있어 비슷하다. 그러나 마태와 누가는 마가와 달리 다음과 같은 점들에서 공통점을 보이고 있어 이것이 Q자료의 특징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1) 새가 "가지들"에 둥우리를 친다는 언급(마가에서는 그늘이 강조됨)
2) 겨자씨 식물을 "나무"라고 말하고 있는 점
3) 겨자씨 비유가 누룩 비유와 연결되어 있는 점마태복음에서의 "대조"와 "성장"이 강조되는 점
"밭에 심어지고"(성장)
"모든 씨 보다 작은 것"(대조)
"자라면"(성장)
"나물보다 커서"(대조)
"나무가 된다"(성장과 대조)복음서 기자들은 예수의 본래 비유에 반영되어 있는 "성장"과 "대조"의 요소를 각기 자기 상황에 따라 비유의 요점을 강조하고 있다.
마가는 대조를
누가는 성장을
마태는 대조와 성장을 둘 다 강조하는 방향으로 기록하고 있다. - 13:44-52 감추인 보배와 진주 비유
- 예수께서 말씀하신 보배에 관한 비유는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고 자기 소유를 팔아 산다는 선택의 비유이다. 좋은 것의 발견과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즉 바꾸는 결단을 요구하신다.
- 13:53 배척 당함
- 예수를 배척한 사람들은 바리세인들 뿐만이 아니라 고향과 친척 중에도 있었다. 예수를 너무나 잘 알고있는 고향사람들은 그를 육체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즉 어린 모습부터 보아 왔기 때문에 그를 메시야로 받아들이데 장애가 되었던 것이다. 친척 중에는 막6:3에서 나타난 예수 누이의 남편들, 곧 처남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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